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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폐인 (Papain) - 3집 / End And

폐폐인 3집
감성의 멜로디에 이젠 그루브까지 적극 받아들였다!  

2004년의 1집 [Youth], 2006년의 2집 [True Romance](2006)에 이어 2008년 드디어 폐폐인의 대망의 3집이 공개되었다.

2년만의 신작이라 어떻게 본다면 길지도 짧지도 않은, 극히 적절한 텀을 지나 나온 것이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폐폐인의 리더이자 컨트롤타워인 류키에겐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하고 싶은 게 많고 그래서 생각이 많아 목표점이 남보다 높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도저히 가만히 있질 못하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언 잠자는 시간마저 '인생의 낭비'의 부분이라 여길 만큼. 그들에겐 오로지 "You should be working!"이 그 어떤 것보다 지상의 대명제이자 과제이며 삶의 방식이다. 심지언 이걸 통해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낄 정도다. 류키에게도 마찬가지다. "넌 일(음악)을 해야 해!", 그리고 음악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더더욱 열심히 또 하고 또 해야 해!"라고 무수히 자기암시를 하며 스스로를 채찍해 가는 와중에 어느덧 2년이란 시간이 흐른 것이다.
       
폐폐인은 약 7년여 동안 500여회의 일반 공연과 170여회가 넘는 단독공연을 치르며 어느덧 무대음악, 공연씬의 고수가 되었다. 2집을 공개한 지난 2006년 이후 2년 동안 폐폐인은 언제나 그랬듯 공연을 통해 존재의 이유를 찾았다. 2007년 5월 일본의 츠바키와의 조인트 공연 및 8월에는 일본의 인기 스타였던 안전지대의 프로듀서 야마모토 요시키와 손잡고 'Paradise'를 디지털 싱글로 공개하며 또 다른 관심을 모았고 1천여 명의 관객과 호흡을 함께 한다는 취재 하에 '천인의 콘서트'라는 색다른 이벤트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외에 크고 작은 공연들을 셀 수 없이 많이 해치우며 "무대에서 태어나 무대에서 죽을 것"이라는 폐폐인 식 지론을 실천했던 것이다. 

그 와중에 리더인 류키의 음악 취향에 변화가 왔다. X재팬을 들으며 일본 음악 팬이 되었고 그외 루나씨, 라르깡시엘 등등 많은 일본 음악들을 들으며 자신의 감성을 다듬어간 류키. 그런데 이번 3집에선 일본과의 '감성적' 제휴를 어느 정도 바탕에 깔고 있는 상태에서 미국 쪽으로 그 감성을 본격 이동시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일본 음악 전반으로부터 영향 받아 감성적 멜로디에 대한 호소가 지배적이었던 1, 2집과는 달리 3집은 서구적 그루브 쪽으로 많이 다가갔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간 폐폐인의 음악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혁신의 몸짓이며 또 다른 의미에서의 업그레이드다.

원론적으로 볼 때 멜로디는 한 음악의 줄거리, 다시 말해 특정 음악에 대한 정서적 추억을 환기시키는 요소다. 반면 그루브 등의 리듬적 요소는 줄거리에 다양한 액센트 주기를 통해 몸짓으로 그걸 반영케 하는 '신명'의 영역이다. 이 두 요소 중 그 어떤 것도 우위를 가릴 수 없을 만큼 음악에선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지만 전자와 후자 중 어느 쪽에 좀 더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그 분위기는 180도 달라진다. 폐폐인의 경우 이번 신작에서 그루브의 요소를 대폭 받아들인 점이 신선하다.                 

이번 신작에서 폐폐인의 가장 큰 변화를 체감케 해주는 중요한 두 곡은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와 '프로포즈 대작전'이다.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선 놀랍게도 랩까지 시도하고 있고 프로포즈 대작전은 미국의 록그룹 마룬5(Maroon 5) 스타일을 연상케 한다. 심플한 코드프로그레션임에도 출렁이는 그루브는 이게 과연 폐폐인인가 싶을 만큼 큰 변화로 다가온다. 그런데 여기에 첫 곡 '오늘부터 우리는'의 댄서블함이 절묘한 삼위일체를 이루며 듣는 재미를 더한다.   
거기에 '가지마'를 통해 체임버팝 풍의 우아하고 열정적인 발라드마저 선보인다. 물론 이것은 첼로의 역할이 크지만 그만큼 류키 보이스의 호소력도 무시할 수 없다. 

안전지대를 제작한 일본의 유명 프로듀서 야마모토 요시키와의 친분, 그리고 폐폐인에 대한 그의 각별한 애정은 '하나의 사랑'과 'Paradise'에서 잘 나타나 있다. 특히 'Paradise'는 요시키가 편곡까지 한 것으로 '천공의 섬' 테마에 기초한 것이지만 원곡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했다. 경쾌하고 정열적인 로큰롤 트랙으로 "푸른 바다 향해 떠나요/세상 만사 다 잊어버리고 떠나요"라는 가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름 휴가를 떠나는 차 안에서 들으면 좋을 것 같다. 

류키는 매력적인 진성의 소유자다. 그럼에도 가끔씩 비음을 살짝 섞는 식의 가성은 일반 남자 싱어들의 보이스에선 쉽게 듣기 힘들만큼의 아름다운 색감을 내포한다. 더욱이 그의 창법엔 일본과 트로트의 정서가 고스란히 남아 정서적 애잔함과 서정미를 부각시키는데 일조한다. '잊혀진 사랑'은 이러한 한국적 정서가 잘 녹아있는 작품이다. 또한 '슬픈 얼굴'은 스트링스 효과를 극대화해 사운드 질감의 풍요로움을 더한 발라드로, 애절하면서도 컬러풀한 색감이 몸을 감싸는 트랙이다.

'오늘부터 우리는',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프로포즈 대작전' 등등 일련의 '젊은' 취향과는 달리 '십년이 지나도'는 또 다른 느낌의 회고적 정서다. 친구와의 변치 않는 우정을 노래하고 있는 이 곡은 3040 세대의 흉금마저 울릴 수 있을 법한 잔잔한 감동을 준다.  
'풀어줘'는 원래 마지막으로 녹음된 트랙이지만 앨범에서는 두 번째 곡으로 삽입되었다. 생활 속에서 겪는 스트레스와 답답함 등을 속 시원하게 풀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만큼 강한 비트의 록이면서도 비장미마저 감돈다.        
     
신작은 '하나의 사랑'과 'Paradise' 두 곡을 제외한 전곡을 류키가 썼다. 그런데 왜 앨범 타이틀이 'End And'일까?

이것은 새로운 폐폐인의 출발을 알리는 일종의 선전포고로 보인다. 보다 좋은 것을 받아들이고자 그간 폐폐인이 해왔던 방식(과거)을 폐기(End)하고, 그리고(And), 발전적인 새로운 것을 시도하겠다는, 다시 말해 '보다 업그레이된 폐폐인의 새 출발'의 상징적 의미 말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1, 2집에서 볼 수 없었던 전혀 다른 폐폐인의 모습이 3집에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신작은 폐폐인 음악세계의 방점이자 전환점이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와 감성의 소유자 류키가 이젠 애시드락 계열의 그루브까지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또 다른 출발을 알렸다면 4집은 과연 어떻게 어떤 식으로 진화했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신작은 5개월이 넘는 적지 않은 시간을 통해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작업되었다. 그럼에도 내 개인적으론 레코딩 전반까지 세련되게 잘 다듬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물론 폐폐인의 쉬지 않는 전진 전진 또 전진에 비한다면 이러한 아쉬움은 그저 옥의 티일 뿐이지만.

2008, 6, 23
글 / 조성진 (음악평론가, 월간 '핫뮤직'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