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ishead - Th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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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립합/ 브리스톨 사운드의 모든 것 Portishead (포티쉐드)
10년만에 발표하는 3집 앨범 [Third]
“『Third』는 10년만에 나온 음반이 아니다. 10년이 걸린 음반이다.” - Z.EE. (밴드 MOT 기타리스트)
단 두장의 정규 타이틀과 한장의 라이브 앨범으로 트립합의 대명사로 군림해온 포티쉐드(Portishead)!
10년이라는 시간동안 끝없는 음악적 고민 끝에 그들의 더 넓어진 음악세계를 담은 새 앨범 『Third』
변함없이 깊고 우울한 ‘베스 기븐스의 보컬과 인공적인 사운드의 비트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첫 싱글 ‘Machine Gun’
애드리안 우틀리(Adrian Utley)의 몽환적인 기타 사운드의 ‘We Carry On’
기타로 만들어내는 비대칭적 리듬을 앞세운 ‘Silence’등
오랜 시간 기다려온 팬들의 갈증을 채워 줄 11곡의 신곡을 수록한 또 하나의 역작!
전곡 한글 가사 번역 특별 수록!
트립합의 틀을 벗어난 비(非)대칭성의 확장, [Third]
10년 만에 나온 음반
영국 서남부, 바닷가 작은 도시의 이름을 딴 포티쉐드(Portishead)는, 그 이름과는 달리 트립합의 역사를 말할 때, 결코 빠뜨려서는 안 되는 거대한 이름이다.
1990년대 초반, 영국의 브리스톨(Bristol)을 중심으로 생겨난, 느리고, 어둡고, 우울한 일련의 음악이 있었다. 이 음악들은 특히 리듬과 샘플링 사운드라는 측면에 있어서 힙합(Hiphop)에 그 근간을 두고 있으나, 현저히 느린 템포(tempo)에 마치 약에 취한 듯 한 사이키델릭(psychedelic)함이 결합된 독특함으로 트립합(Triphop)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다.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에 의해 촉발된 트립합의 토양 위에서, 1994년 포티쉐드는 첫 앨범 [Dummy]를 발표했다. 탁월한 프로듀서이자 DJ인 조프 배로우(Geoff Barrow)의 복어 독처럼 한계에 근접한 사운드와 감각적인 샘플링 위에,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슬픈 목소리를 가진 듯 한 베스 기븐슨(Beth Gibbons)의 보컬, 재즈 기타리스트 애드리안 우틀리(Adrian Utley)의 세련된 기타 라인이 더해진 이 데뷔 앨범은, 트립합의 교과서라 불리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뛰어난 퀄리티를 자랑하며, 1995년 머큐리 음악상을 거머쥐고, 롤링 스톤지(誌) 선정 500대 명반에 이름을 올리는 등 평단의 극찬을 받았을 뿐 아니라, 미국에서는 밴드가 투어를 시작하기도 전에 15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대중적 인기까지 동시에 얻게 되었다.
하지만, 1997년 셀프 타이틀의 2집 [Portishead]와, 1998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라이브 실황 앨범 [Roseland NYC Live]를 이후로, 이렇다 할 공식적인 활동도 명백한 은퇴 선언도 없이, 묵묵히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공식 홈페이지는 개점 휴업 상태가 되었고, 새 앨범을 기다리는 팬들의 바람은 점점 희망으로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꿈 같은 것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2007년 후반, ATP 페스티벌 에서 아직 곡명도 채 정해지지 않은 다섯 곡의 신곡을 연주하면서, 세상 모든 소문의 근원지인 인터넷으로부터 포티쉐드의 새 앨범이 곧 나올 것이라는 말이 나돌기 시작했고, 2008년 4월 28일, 거짓말처럼 – 전작보다 더 무심한 타이틀을 달고 – 새 앨범 [Third]가 발표되었다.
이렇게, 일가를 이룬 아티스트가 오랜 공백 후에 새 앨범을 냈을 때는, 대체로 둘 중 하나다. 과거의 영광을 우려먹기 위해서 이거나, 혹은, 더 높은 예술적 가치를 위해 필연적으로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거나.
대칭성과 비 대칭성
대부분의 경우, 예술의 시작은 아마도 자연의 모사(模寫)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즉, 자연 상태로 이미 존재하는 구상적 요소의 묘사, 서사, 혹은 구체화를 인위적 도구 – 안료, 원근법, 문자, 필름 등 – 를 통해 이룩하는 것이 그 시작이라 하겠다.
그러나, 음악의 경우는 그 태생이 다르다. 음악의 가장 기본적 요소라 할 수 있는 리듬의 경우, 철저히 시간적 대칭성에 기반하며, 음계나 화성 또한, 진동의 비례에 대한 대수적 대칭에 기반하므로, 음악이란 본질적으로 추상적이며, 수학적이다. 이처럼, 자연 상태에 존재하지 않는 수학적 요소를 자연 상태에 – 공기의 진동의 형태로 – 존재하는 소리를 이용하여 표현한다는데 음악의 아이러니한 본질이 있다.
대칭적 요소들은 안정적이고, 아름다우며, 추구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둠이 있으므로 빛이 의미가 있듯이, 대칭적 요소는 비대칭적 요소에 의해 의미가 부여되고, 가치가 공고해진다. 예술가는 언제나 이러한 대칭과 비대칭 사이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며, 예술적 지표로 삼는다.
이렇게 밝혀진 균형점은 감상자에게 익숙해짐에 따라 정형화되고, 그 자체가 대칭적 요소로 인지된다. 이것은 감상자가 쉽게 – 즉각적으로 – 받아 들일 수 있는 아름다움이 되며, 물론,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형화된 비대칭성은 이미 비대칭적 요소로서의 역할을 상실하였으므로, 그러한 지점의 답습은 더 이상 균형점에 대한 창조적 탐사라고 볼 수 없다. 이 것이 예술가들이 끝없이 새로운 비 대칭성을 갈망하는 이유다.
이것은 트립합이 아니다
[Third]를 플레이어에 꽂으면서, ‘Mysterons’ 나 ‘Cowboys’ 에서와 같은 해먼드 오르간이나 로즈 피아노, 턴테이블 스크래칭을 기대한다면, 잠깐, 미리 경고해두지만, 이 음반은 트립합이 아니다. 여기에는 Hop리듬도, 샘플링도 재즈 기타도 없다. 첫 곡인 ‘Silence’ 부터 이 앨범은 더 이상 트립합이 아님을 강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 곡은 느리지도 않고, 심지어 베스의 노래는 곡이 시작하고 2분이 지나도록 나오지도 않는다. 그나마 비교적 브리스톨 사운드의 정서에 가까운 ‘Plastic’ 이나 ‘Hunter’ 와 같은 곡을 제쳐 두고 멤버들의 만장일치로 선택된 첫 번째 싱글 ‘Machine Gun’ 도 역시, 차라리 인더스트리얼(Industrial)에 가까울지언정 트립합이라 부를만한 요소를 찾아보기 힘들다.
리듬 트랙 전체에 컴프레서를 걸어서 꿈틀대는 심벌 사운드를 만들거나, 보컬 트랙 전체에 퍼즈를 걸어서 로우파이한 사운드를 만드는 등, 주로 존재하는 소리의 음향적 변화에서 비 대칭성을 추구했던 전작에 비해, [Third]에서는 음향적 변화뿐 아니라, 소리 자체의 사용법과 리듬, 조성, 구성 등에서 총체적 비 대칭성을 탐구하고 있다.
앨범 전체에서 상당수의 악기가 관습적 용도와 다르게 사용된다. 특히, 리듬을 만들어내는 용도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Silence’ 에서는 기타가 리듬악기의 역할을 하고 있고, ‘Nylon Smile’ 에서는 파형이 인공적으로 뒤집어진 소리가 리듬을 만들고 있다. ‘Machine Gun’ 은 낡은 건반에 내장된 드럼 머신을 링 모듈레이터(Ring Modulator)로 변조하여 리듬 악기로 사용하였으며, ‘Plastic’ 과, ‘We Carry On’ 에서도, 인공적으로 변조된 음원이 리듬을 새기는데 이용되는 등, 음반을 통틀어 이런 성향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한 음원의 비관습적 사용과 함께 이번 앨범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전작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면에 나선 리듬이다. ‘Machine Gun’ 과 같은 곡은 화성적 요소를 배제하고, 리듬과 보컬 위주로만 이루어져 있으며, 화성적 진행보다는 음향적 변화로 곡의 구성을 형성한다. ‘Nylon Smile’ 역시 리듬과 보컬 위주의 구성이다. ‘Silence’ 에서는 기타가 점진적으로 비대칭적 리듬을 연주하는 리듬악기로 사용되고 있으며, 전체적인 리듬 또한 8, 6, 6, 10박자로 반복적으로 변화한다. ‘Small’ 과 같은 곡마저도, 후반부로 가면서 3박자였던 곡이 3, 3, 3, 2박자로 변화한다. 반면, 화성 악기는 화성적 변화와 무관하게 반복적이거나, 파편적인 경우가 많다.
스펙트럼의 확장
주목할만한 부분은, [Third]의 음악적 스펙트럼이 전작에 비해 훨씬 넓어졌다는 점이다. 공간적 요소가 강한 곡 들도 있고, 철저하게 리듬에 집중하는 곡이 있는가 하면, ‘Deep Water’ 에서는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가 떠오르고, ‘We Carry On’ 에서 애드리안의 기타는 소닉 유스(Sonic Youth)를 연상케 한다. 또한, 브리스톨 사운드의 정서를 담고 있는 곡들도 여전히 눈에 띈다. 한 두 곡만 따로 떼놓고 들어서는 음반 전체의 성격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이런 넓은 스펙트럼을 관통하는 것은 변함없이 우울한 베스의 보컬이다. 그녀는 2002년 자신의 솔로 앨범 [Out of Season]을 발표하면서 얻은 경험으로, 이전의 앨범들보다 [Third]에서 훨씬 음악적으로 깊이 관여했다. 직접 작곡에 참여했으며, ‘Threads’ 에서는 기타 연주도 맡았다. 그러나, ‘Deep Water’ 와 같이 부드럽고 낙천적일 것만 같은 곡에서조차, 변함없이 그녀의 목소리는 한없이 슬프다. 가사 역시, 전작에 비해 다소 추상적인 면은 있으나, ‘Hunter’에서 ‘If, I should fall, would you hold me? Would you pass me by?’ 그리고 ‘Magic Door’에서 ‘I’m losing myself. My desire I can’t hide. No reason am I for.’와 같은 가사에서 보이듯, 여전한 슬픔의 정서를 전작과 공유하고 있다. 이것은 감상자가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며, [Third]의 당의(糖衣)다.
반면, 그 외의 모든 음악적 부분들은 새로운 균형점을 제시함으로써 전작과 거리를 두고 있다. 익숙하지 않은 탓에 듣는 즉시 아름다움을 느끼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그 지점이 가지고 있는 균형의 묘미를 깨닫는 순간, 기존에 알고 있던 것보다 더 한층 깊은 쾌감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균형점의 제시는, 과거의 영광을 우려먹기 위해서는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아마, 10년 전에 듣던 전형적인 트립합 사운드 그대로의 재현을 기대한 사람에게 [Third]는 무척 생경한 음반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음반은 트립합의 문법에 얽매이지 않고 음악적 스펙트럼을 확장하면서도, 여전히 포티쉐드의 색깔과 심지를 담아낼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다.
만약, 라디오 헤드(Radiohead)가 [Pablo Honey]와 [The Bends]를 내놓은 후, 10년 간의 공백 뒤에 새 앨범을 내놓았다고 상상해보라. 과연 과거의 영광을 우려먹기 위해 ‘Creep’ 과 같은 곡을 또 내놓았을까? 그 10년간 끝없이 음악적으로 고민하고 발전한 밴드라면 아마 여전히 [In Rainbows]와 같은 수준의 음반을 발표했으리라 믿는다.
라디오 헤드와 마찬가지로 포티쉐드 또한, 예술적으로 가치가 있는 새로운 균형점을 끊임없이 찾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그 특유의 완벽주의로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신중하게 탐사하고 있었을 뿐. 그러므로,
[Third]는 10년 만에 나온 음반이 아니다. 10년이 걸린 음반이다.
2008년 4월
Z.EE. (밴드 못[MOT] 기타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