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ey M - Th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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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디스코의 아이콘,
전세계를 뜨겁게 달군 불멸의 혼성 유로댄스 그룹,
보니 엠(Boney M)의 다시는 없을 초호화 컬렉션!! [The Collection]
Biography: The Long and Winding Road
80년대 한국의 젊은이들을 뜨겁게 달궜던 것은 롤러장과 보니 엠(Boney M)이었다. 당시에 수많은 유로 댄스그룹, 그리고 디스코 밴드들이 있어왔지만 그 중에 아직도 효력을 발휘하며 아이콘화 된 팀은 아마도 보니 엠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 경로가 어찌됐건 아직까지도 진행되고 있는 보니 엠에 관한 스토리는 단락의 제목에서 이미 짐작 가능하듯 결성시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복잡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이 정도로 복잡하고 독특한 바이오그라피를 가진 밴드는 드물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적당히 흥미롭기 때문에 슬슬 이 이야기를 경청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앤쏠로지 성향의 컬렉션이기 때문에 그들의 긴 바이오그라피를 따라가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서독의 유명 프로듀서 프랭크 패리언(Frank Farian)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팝/디스코 그룹인 보니 엠은 1남 3녀의 오리지날 멤버로 구성되어 있다. 리즈 미첼(Liz Mitchell), 마샤 바렛(Marcia Barrett), 마지 윌리암스(Maizie Williams)를 비롯한 세 명의 여성과 청일점인 바비 패럴(Bobby Farrell)로 이루어진 보니 엠은 버블검 팝을 연상시키는 멜로디와 중독적인 리듬의 곡들을 히트시켜왔다. 독일은 물론 유럽, 아프리카, 미국, 그리고 아시아에서 뜨거운 사랑을 받았는데, 현재에는 아바(Abba)와 함께 가장 대표적인 유럽의 혼성 팝 그룹으로 각인되어 있는 상태이다.
프랭크 패리언은 사실 성공하지 못한 가수였다. 그는 활동하던 도중 흑인 음악 성향을 가진 곡들을 만들게 됐는데 백인이었던 그가 프론트맨으로 나서기에는 무리가 있는 프로젝트였다. 프랭크 패리언은 1974년 12월에 다시 스튜디오에 들어가 서인도 제도에서 받은 영향을 고스란히 담아낸 싱글 [Baby Do You Wanna Bump?]를 녹음하고 크레딧에 무작정 "Boney M" 이라고 적어놓는데, 이것은 그가 즐겨보던 호주의 형사물의 캐릭터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자국인 독일은 물론이거니와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호응을 얻기 시작하면서 실체가 없는 그룹 보니 엠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은 증폭되었다. 패리언은 결국 퍼포먼스를 위한 팀 멤버를 '고용'하게 된다. 마지 윌리암스와 그녀의 자메이카 친구인 쉴라 보닉(Sheyla Bonnick), 그리고 마이크(Mike)라는 댄서와 함께 첫번째 공연을 펼쳤는데 후에 쉴라와 마이크가 팀을 나가면서 마지 윌리암스가 다시 아루바 출신의 바비 패럴을 데리고 오고 후에 자메이카 출신의 마샤 바넷이 합류하면서 팀의 형태가 서서히 잡혀간다. 멤버가 갖춰 지기 이전에 클라우디야 배리(Claudja Barry)라는 멤버도 잠시 있었는데 립싱크에 싫증난 그녀는 팀을 탈퇴하고 자신의 솔로 앨범을 발표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리즈 미첼이 팀에 영입되고 우리가 알고 있는 보니 엠이 무척 복잡한 경로를 통해 완성된다.
패리언은 본격적으로 보니 엠의 첫번째 앨범인 [Take the Heat Off Me]의 작업을 시작한다. 마샤 바렛은 이미 녹음을 진행하고 있었고 마지 윌리암스의 보컬은 아직 녹음을 할만한 성질이 못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유일한 남자 멤버인 바비 패럴에게도 [No Woman No Cry]를 불러보게 시켰지만 이에 만족하지 못한 패리언은 결국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녹음하기로 한다.
앨범 공개 이후 서서히 관중들이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각종 텔레비전 쇼와 클럽에 출연하면서 이름을 알려나가고 결국 이들 공전의 히트넘버인 [Daddy Cool]이 독일 차트 1위에 랭크 되면서 앨범 또한 놀라운 판매고를 보인다. 이후 1977년에는 두 번째 정규앨범인 [Love for Sale]을 발표하고 [Ma Baker], 그리고 [Belfast] 등의 곡들이 선전하면서 라이브 밴드와의 투어를 계획하게 되는데, 이것은 마지의 첫번째 밴드였던 블랙 뷰티풀 피플(The Black Beautiful People)에서 착안한 [The Black Beautiful Circus]라는 이름으로 진행된다. [Love for Sale]와 [Take the Heat Off Me]는 영국의 앨범차트에서도 그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다.
1978년은 보니 엠에게 가장 중요한 해로 기억되고 있다. 그들의 싱글인 [Rivers of Babylon]이 엄청난 판매를 기록하면서 전 유럽차트 1위를 석권했으며 또한 미국에서도 서서히 그 인기가 확인되기 시작됐는데 빌보드 핫 100 차트에 무려 5곡이 랭크 되면서 그 인기가 입증된다. 뒤이어 예약판매만으로 발매 이전에 이미 플래티넘을 기록했던 앨범 [Nightflight to Venus]가 공개되며 역시 [Rasputin]과 같은 곡이 큰 성공을 거두며 싱글 [Mary's Boy Child/Oh My Lord]는 영국의 넘버원 크리스마스 차트로 등극하기도 한다.
보니 엠은 러시아(구 소련)에서 공연한 첫번째 서방 그룹이기도 하다. 냉전으로 인해 분위기가 좋지 못했던 1978년도에 소련의 초청을 받고 가수로서는 처음으로 공연을 펼친 바 있는데 "라스푸친"을 타이틀로 한 [Rasputin]은 당연히 공식적으로는 금지곡이기도 했다. 어쨌든 러시아 공연을 발판으로 보니 엠의 인기는 아시아까지 확장된다.
당시 바비 패럴이 패리안의 보컬을 립싱크 하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었고 그 후에 마지 윌리암스 역시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알려졌다. 패리안은 그녀의 목소리는 이런 종류의 음악과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독일의 십대 잡지인 브라보(Bravo)지의 인터뷰에서 언급했다고 한다. 사실 퍼포먼스가 중심이었던 이 당시 디스코, 유로 댄스 씬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사실이었는데, 몇몇 사람들은 이런 방식을 비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류의 편성은 패리안이 10년 후에 만들었던 밀리 바닐리(Milli Vanilli)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하지만 바비 패럴과 마지 윌리암스는 투어에서 직접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단지 스튜디오 레코딩을 하지 않을 뿐이었다.
1979년, 보니 엠은 네 번째 앨범인 [Oceans of Fantasy]를 발표한다. 역시 [El Lute], [Gotta Go Home], 그리고 국내에서는 무한도전의 [하나마나 송]으로 다시금 열기가 불붙은 [Bahama Mama] 등의 히트곡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특히 앨범에 수록된 [No More Chain Gang]과 같은 곡들은 흑인의 자유를 위한 노래로 백인음악과 흑인음악이 적절히 믹스된 그들의 색깔을 잘 보여주는 노래로 알려졌다. 보니 엠의 노래를 만들고 노래도 부르는 패리언은 백인이었는데 심보가 뒤틀린 몇몇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두고 백인에게 착취당하는 흑인들이라고 비아냥 대기도 했다고 한다.
1980년에 첫번째 베스트 앨범인 [The Magic of Boney M. - 20 Golden Hits]를 공개한다. 앨범에는 두 곡의 신곡 [My Friend Jack]과 [I See a Boat on the River]를 수록하고 있는데 앨범은 당연히 등장하자마자 UK 차트 1위로 등극한다. 그들의 다섯번째 앨범은 사실 1980년에 발매될 예정이었지만 레코딩 세션이 계속 늦어지면서 결국 1981년 9월에야 공개됐다. 내부의 문제 끝에 다섯번째 앨범 [Boonoonoonoos]가 공개되지만, 발매 이후 바비 패럴이 '해고'되면서 이들의 프로모션에 지장이 생긴다. 곧 이어 그 해 여름부터 만들어졌던 [Christmas Album]이 발매되는데 이것은 원래 프랭크 패리안이 리즈 미첼의 솔로앨범으로 기획됐던 프로젝트였다고 한다.
1982년에 레기 치보에(Reggie Tsiboe)가 새로운 남자 멤버로 가입한다. 이후 84년에 일곱번째 정규앨범 [Ten Thousand Lightyears]가 공개되며 [Kalimba de Luna]와 [Happy Song]과 같은 곡들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후에 바비 패럴은 다시 팀으로 돌아오는데 1985년에 패리안이 점점 팀에 흥미를 잃어갈 무렵 그들의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인 [Eye Dance]를 발표한다. 밴드는 10여년의 활동을 자축하면서 공식적으로는 해체를 선언한다.
1987년 말, 바비 패럴은 마지 윌리암스와 리즈 미첼을 설득하여 투어를 다니기로 하는데 마샤 바넷은 투어에 오르지 않았으며 그 이유는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게다가 바비는 프랭크 패리안이 없는 새로운 보니 엠의 앨범을 만들 것을 계획하기도 한다. 하지만 앨범은 리즈 미첼의 솔로앨범 형식으로 발매됐으며 리즈 미첼은 마지 윌리암스와 1년 여 동안 투어를 다닌다.
1988년 10월, [Greatest Hits of All Times - Remix '88] 앨범으로 인해 다시 재결성하게 되는데 리즈 미첼은 솔로활동을 위해 1989년 봄에 팀을 나가며 그 자리에 마들린느 데이비스(Madeleine Davis)가 대체된다. 그들은 패리안의 동의 없이 [Everybody Wants To Dance Like Josephin Baker]라는 싱글을 녹음하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프랭크 패리안은 그들에게 '보니 엠'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 멤버들이 녹음했던 노래는 당시 공개를 중단하게 되며 하며 패리안은 홧김에 보니 엠이라는 이름으로 [Stories]라는 싱글을 새롭게 공개하는데 리즈 미첼과 레지 치보에 이외의 새로운 두 명의 여성을 추가 시켰다. 그리고 두 번째 리믹스 앨범인 [Greatest Hits of All Times - Remix '89 - Volume II]가 뒤이어 발매된다.
1993년 발표된 그들의 베스트 앨범 [Gold]가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을 당시, 마샤 바렛은 플로리다에서 암 치료를 받고 있었다. 마샤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그들만의 공연을 시작했다. 리즈 미첼은 새로 모은 세 명의 멤버들과 월드 투어를 다녔고, 마지 윌리암스도 옛 친구들과 함께 그녀만의 보니 엠 라인업을 만들어 활동 했고, 바비 패럴도 새로운 세 명의 여성 멤버들과 투어를 다니기도 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만 어쨌든 무척 재미있는 상황이다.
2006년 리즈 미첼이 그녀의 라인업으로 이루어진 라인업이 일반적으로 투어를 하고 있었을 때 마샤 바렛은 두 장의 솔로앨범을 발표했고 마지와 바비가 만든 각자의 보니 엠도 꾸준히 투어를 했다. 그 와중에 바비 패럴은 자신이 직접 새로 녹음한 보니 엠의 히트 넘버들을 발매하기도 했으며 마지 윌리암스도 크리스마스 앨범을 발표한다. 그리고 그 와중에 보니 엠의 노래들로 이루어진 뮤지컬인 [Daddy Cool]이 2006년 10월, 런던에서 막을 올린다.
2007년에는 보니 엠의 앨범들이 보너스트랙과 함께 4월과 9월에 거쳐 모조리 재발매 되며 1981년도 자메이카에서 펼친 라이브를 담은 DVD인 [Fantastic Boney M. - On Stage and on the Road]와 새로운 버전의 크리스마스 앨범 역시 공개된다.
이들이 각자 활동하고 있는 보니 엠은 아직도 꾸준히 투어를 펼치고 있다. 바비 패럴의 보니 엠은 2007년 5월 이스라엘에서 공연했으며, 리즈 미첼의 보니 엠은 러시아의 상트 빼째르부르크 공연을 비롯해 보니 엠의 30주년 기념 투어를 독일에서 하기도 했다. 마지 윌리암스의 보니 엠은 로얄 알버트홀에서 공연 했으며 아프리카의 HIV/AIDS 퇴치 공연에도 참여했다. 바샤 바렛의 보니 엠은 2007년 10월에 남오세티아 공화국과 러시아, 그리고 리투아니아에서는 2007년 12월 31일의 만 6천명의 군중 앞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들이 보니 엠이라는 이름을 각자 사용하면서 투어를 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가속화 됐다. 보니 엠을 만들었던 프랭크 패리안의 경우, 보니 엠 이후 리즈 미첼의 작업들을 도와주었는데 난데없이 바비 패럴의 딸인 자닐랴 패럴(Zanillya Farrell)과 패럴의 전 부인인 야스민 아야드-사방(Yasmina Ayad-Saban)이 2007년 1월에 '보니 엠 프로덕션'이라는 이름을 자신만의 것으로 돌리는 법적인 절차를 밟고 보니 엠이라는 이름의 권리를 새롭게 갱신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각 멤버들, 그리고 음반사간의 법적 공방은 종결되지 않은 상태이다.
The Collection: 2008
사실 이미 1991년도에 [The Collection]이라는 타이틀로 베스트 성격의 싱글 컬렉션이 발표된 바 있지만 이번의 경우에는 아예 스케일 자체가 다르다. 무려 세 장으로 이루어진 본 컬렉션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노래들부터 색다른 버전으로 공개된 트랙, 그리고 CD로는 복각되지 않았던 12인치 바이닐 싱글버전 등을 무차별 담아내고 있다. 보니 엠의 베스트 성격의 컴필레이션이 지겨웠던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이번 컬렉션은 아예 그 ‘차원’이 다른 셈이다.
CD별로 분류해 보자면 첫번째 디스크는 70년대의 곡들을, 두 번째 디스크는 80년대,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디스크는 우리가 알고있던 버전보다 훨씬 긴 러닝타임의 12인치 싱글에서 새롭게 마스터링한 오리지날, 혹은 익스팬디드 버전을 담고 있다.
워낙에 다 인기 있는 곡들이기 때문에 특별한 몇몇 트랙들을 언급하려 한다. [Rasputin]의 경우에는 7인치 싱글 버전을 새롭게 마스터링 한 음원을 담고 있는데 이전에 CD로 복각됐던 적이 없었던 트랙이며 [Ribbons of Blue] 또한 7인치 싱글 버전이지만 이 곡은 1993년에 발표됐던 베스트앨범 [More Gold - 20 Super Hits Vol. II]에 이미 수록된 적이 있는 버전이다. [New York City]는 싱글 [Sunny]의 비사이드 트랙에 있던 곡으로 2007년 리 이슈 버전의 [Take The Heat Off Me] 앨범에 수록된 바 있었다.
전세계를 열광시킨 [Daddy Cool] 또한 CD로는 처음 복각된 버전을 담고 있다. 7인치 싱글에 수록된 버전으로 86년에 녹음된 좀 더 길고 약간은 다른 구성을 가진 트랙이 바로 그것이다. [Malaika] 또한 7인치 싱글에서 갓 복각한 트랙을 담고 있으며 [Boonoonoonoos]의 경우 오리지날 7인치 마스터테이프가 실종된 바람에 한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에디트 버전을 수록하고 있기도 하다. [Going Back West], [Gadda-Da-Vida], [Bang Bang Lulu], [Somewhere In The World] 등의 곡들이 대부분 앨범에 수록된 버전이 아닌 7인치나 12인치 싱글에 수록된 버전들을 담고 있다. [Dreadlock Holiday]는 1987년에 다시 녹음한 버전을 수록하고 있기도 하다.
세 번째 음반은 실로 댄스 피플들을 위한 파트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보통이 7, 8분 이상의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으며 아무리 짧아도 5분대 이하의 트랙이 없다. 우리가 알고 있던 히트곡들, 이를테면 [Happy Song] 이나 [I See A Boat On The River], 그리고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커버 곡인 [My Chérie Amour]등의 넘버들의 긴 버전을 담고 있다. 곡들은 무한 반복되며 DJ들의 믹싱에 도움이 되도록 단순한 비트로 꾸준히 전개되는데 더 이상 턴테이블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 익스팬디드 버전들이 무척 소중하게 느껴질 것 같다.
비록 80년대 젊은 나날을 보낸 세대가 아니더라도 보니 엠에 관한 영향은 현재도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무한도전에서 박명수가 유행시킨 8비트 유로 댄스가 후에 이들의 [하나마나 송]을 만드는 교두보의 역할을 했는데, 앞에서 이미 언급한 대로 [하나마나 송]은 보니 엠의 [Bahama Mama]를 개사한 노래이기도 하다. [Happy Song]과 같은 곡에 등장하는 아이들이 부르는 차밍한 멜로디라인과 보이스 톤은 현재 저스티스(Justice)와 같은 디스코에 입각한 일렉트로닉 뮤지션들이 고스란히 차용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DJ DOC의 히트곡 [Run To You]가 보니 엠의 [Daddy Cool]을 사용한 사례는 무척 유명하다. DJ DOC가 후에 보니 엠의 허가를 받지 않고 사용하면서 그들의 곡에서 나오는 어마어마한 수익이 모두 보니 엠에게 가게 됐으며 하물며 일본의 DJ 오즈마(DJ Ozma)가 DJ DOC의 버전을 거의 그대로 커버한 [Run To You]에 대한 수익 또한 모두 보니 엠에게 들어간다고 한다. 혹시나 모르는 분들이 계실까 봐 노파심에 설명을 드리자면 [Run To You]의 인트로 베이스라인이 바로 보니 엠의 곡에서 샘플링한 것이다.
현재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 등을 프로듀싱하고, 여러 리믹스와 중요한 행사에서 스핀 하면서 전성기를 구사하고 있는 마크 론슨(Mark Ronson) 또한 보니 엠의 곡을 샘플링하기도 했다. 고스트페이스 킬라(Ghostface Killah)와 네잇 독(Nate Dogg)이 피쳐링한 힙합 튠 [Ooh Wee]에 보니 엠의 곡 [Sunny]의 스트링 부분을 샘플링해 쓰기도 했는데 처음 그 곡을 들었을 당시에 나는 살소울(Salsoul) 패거리들의 것을 채집했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보니 엠의 곡에서 훔쳐온 것이었다.
굳이 이런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일렉트릭 부갈로 스타일의 곡들과 90년대 중반에 쏟아졌던 유로 댄스 트랙들에서도 보니 엠의 영향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물론 몇몇 소울 팬들이라던가 아프로-훵크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 80년대의 레잇 훵이 보니 엠과 같은 음악과 비견되는 것을 경계하는 부류도 있는데, 내 생각에 이것은 시각의 문제인 것 같다. 레잇 훵, 혹은 고전적인 아프로-사운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서인도 제도라던가 유럽에 거주하는 흑인들에 대한 문화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이런 움직임들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보니 엠의 방식은 물론 아프로-아메리칸들의 시각에서는 무척 쉽고 가볍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문화의 차이일 뿐이지 어느것이 우월하고 어느 것이 저급하냐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좀 더 구수한 레잇 훵을 좋아하느냐, 아니면 밝고 가벼운 유로 댄스를 좋아하느냐의 차이는 그저 취향 차이일 뿐이다.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와 아프리카 밤바타(Afrika Bambaataa)는 서로를 인정했다. 이런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보니 엠은 –방법이 어찌됐건 간에- 현재 진행형이다. 아직도 법정 공방을 하고있으며 아직도 무려 열 여섯 명의 보니 엠 멤버들이 전세계를 누비고 있다. 한국에도 여러 번 왔다 갔다. 매 공연은 성황리에 진행됐으며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이례적으로 내한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80년대 롤러장을 불태웠던 어른들, 유로 댄스를 추는 박명수와 [무한도전]을 즐겨보는 학생들, 그리고 DJ DOC와 마크 론슨의 샘플링에 넋이 나간 젊은 친구들을 포함한 여러 음악 애호가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본 컬렉션이다. 오넷 콜맨(Ornette Coleman)의 박스세트 제목이 [Beauty Is a Rare Thing]이긴 했지만 만사가 꼭 그렇지 만도 않다. 왜냐면 가끔씩 우리는 너무 흔하기 때문에 그 매력을 감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한상철 (불싸조 http://myspace.com/bulssaz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