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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진 - Deluxe Girl

그리움에 부식된 낮은 목소리, 쉽게 사라지지 않는 위로, 잔향의 기타리스트 신재진의 홀로서기

작은 위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까? 사랑할 때는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헤어진 후엔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고… 아버지를, 미처 다 이루지 못한 꿈을, 이제서야 부르는 노래를…

결국 그 그리움의 근원은 사랑일 것이고, 진부하다고 여겨지면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창작의 원천 또한 사랑일 것이다. 신재진의 ‘Deluxe Girl’ 역시 사랑과 그리움에 대한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 중 희극이 아니었던 사랑.

지독한 그리움으로 일상을 맴도는 떠나버린 사랑에 대한 처절하고도 슬픈 독백이면서, 찌질리즘에 입각한 궁상맞은 짝사랑에 대한 소심하고도 청승맞은 변명들이 아름다운 노래가 되어 한 장의 E.P 에 담겨져 나왔다. 지독한 그리움에 숨가쁜 당신에게 작은 위로라도 되기를 바라면서…

신재진.
모던록 밴드 ‘잔향’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었던 신재진은 2005년부터 자신만의 노래를 가지고 약 100 여 회의 공연을 이어왔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의 자판기 앞에서, 서교동 지하보도에서, 홍대 프리마켓과 서울프린지페스티발, 그리고 홍대 인근의 여러 클럽들에서…

싱어-송라이터 신재진은 직접 프로듀서가 되어 전체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음악적 역량을 보여준다. 또한 '골든팝스'의 조호균을 비롯하여 많은 음악 친구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음악은 더욱 풍성해지고 완성도가 높아졌다.

Deluxe Girl.
영국의 네오포크가 한국의 대중들에게도 제법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젠 그리 낯 선 장르의 이름도 아니다.
신재진의 E.P앨범 ‘Deluxe Girl’은 크게 네오포크의 자장 안에 놓여있는 것으로 보인다.

섬세한 감수성이 돋보이는 동명 타이틀 곡 ‘Deluxe Girl’은 사랑할수록 그 존재감이 점점 커져 가는 대상에 대한 조용한 고백이다. 사랑이라는 단어조차 절제함으로 그 존재는 더욱 붙잡을 수 없는 환상적 이미지가 되어버렸다. ‘그대는 나의 Deluxe Girl’이라고 내 뱉는 순간 사랑하는 대상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호화롭고, 특별한’ 무엇으로 격상된다. 그것이 어쿠스틱 기타의 반복적인 리듬과 가녀린 느낌의 현을 타고 몽환적 그리움으로 주위를 감싸고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우아한 사랑노래의 특별한 향기가 눈에 보일듯한 ‘Deluxe Girl’. 우연히 타게 된 택시의 라디오에서 흘러 나와도 내릴 곳을 지나칠 만큼 마음을 잡아 끄는 힘이 있다.

‘제프 버클리’가 리메이크 했던 ‘레오나드 코헨’의 'Hallelujah’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두 번째 트랙 ‘아버지’는 망자(亡者)에 대한 그리움이 경건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 노래는 솔직한 노랫말로 진심을 전하고 있어서 듣는 이로 하여금 짙은 감상에 빠져들게 한다.

소주 한 잔 마시고 내뱉는 넋두리처럼 그리움을 노래한 ‘그댄 슬픔 모르길’을 지나고 나면 ‘아버지’의 연주곡 버전인 ‘이제서야 부르는 노래’가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고 싶게 만든다.

다섯번째 트랙 ‘조건’은 귀에 착 감기는 멜로디 라인을 통해 가장 친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전한다. 어쿠스틱, 나일론, 일렉트릭 기타가 만들어 내는 조화도 편곡과 균형면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아마 기타리스트로서의 신재진이 보일 수 있는 장점으로 들린다.

여섯번째 트랙 ‘강남 블루스, 강북 로맨스’는 전체적인 구성상 보너스 트랙처럼 느껴지는데 재치 있는 편곡과 노랫말이 다른 트랙과 달라 재미있는 감상이 될 듯 하다.

행복이라는 조건.
새로운 아티스트의 새로운 음악을 듣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고른 완성도를 지녔을 때는 더욱 그렇다. 진심이 느껴지는 음악은 언제나 흐믓하다. 음악으로 위로를 건네는 새로운 음악인의 탄생은 대중과 한국 음악계에 행복이라는 조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움에 지쳐있다면 신재진의 노래와 함께 차 한 잔 나누어 보시길…

“그리워하는 무뎌진 나의 마음 따위야 참아내면은 그만이지만,
또 다른 사랑 배워갈 그대 많은 날들엔 행복이라는 조건 하나만…” -‘조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