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 춘향가 (동초 김연수창 판소리 다섯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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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가 [춘향가]를 만들 당시 전승되고 있던 소리와 창본을 통해서 그 원천을 살펴보면, 똑같은 부분은 김여란과 정광수의 창본이 가장 많다. 비슷한 부분은 [옥중화], 김여란, 정광수, 이국창(이동백) 창본의 순이다. 없는 대목은 박봉술, 조상현, 장자백 창본의 순으로 많다. 똑같은 부분과 비슷한 부분을 합하면 김여란, [옥중화], 정광수, 이국 창, 장자백 창본의 순이 된다. 이는 김연수가 서편제에 속하는 정정렬 바디를 배워, 이를 근간으로 [춘향가]를 만들 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소설본 중에서는 [옥중화]가 가장 닮았는데, 이는 [옥중화]가 신소설로 개작되어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옥중화]의 경우 비슷한 대목은 대단히 많은데도 아주 똑같은 부분이 하나도 없는데, 이는 아마도 [옥중화]가 소설이어서 그대로는 판소리로 부를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김연수 바디 [춘향가] 사설의 특징으로는 다음과 같은 점을 들 수 있다. 우선 서두 부분에 춘향의 출생담이 있으며, 춘향이 선녀로서 천상계에서 하강한 것으로 되어 있다(謫降 話素)는 점이다. 적강화소의 첨가는 신재효의 남창 [춘 향가]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옥중화] 계열에서는 거의 유형화되어 나타난다. 이 점은 영웅 소설의 구조를 차용한 것인데, 판소리가 평범한 인물을 등장시켜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보면, 오히려 과거의 영 웅소설로 퇴보한 흔적을 보여준다.
결연 부분에서는 이도령과 춘향이 편지 왕래를 통해서 만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점, 이도령과 춘향이 춘향모 몰래 첫날밤을 보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두 가지는 정정렬 바디만의 특징이다. 따라서 이 부분은 완전히 정정렬 바디를 수용한 것이다. 이도령이 춘향 만날 시각을 기다리느라 조바심이 나서 해소식을 묻는 대목도 이국창, 정광수, 김여란의 사설이 비슷하나, 김연수의 것은 정정렬 바디와 가장 닮았다.
이별 부분에서는 오리정 이별이 첨가되어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오리정 이별이란 춘향이가 오리정까지 나가 신표를 교환하고 헤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이별을 두 번 하는 것이 되어 이별 부분이 길어진다. 이는 당시 청중 들의 슬픈 가락 선호 현상에 부응한 것인데, 정정렬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수난 부분의 ‘옥중가’는 한경석의 더늠을 수용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한경석은 고종 때의 명창으로 김창환의 후배라고 하므로, 이 ‘옥중가’가 가장 현대적인 ‘옥중가’라 하겠다. 또 임방울의 더늠으로 유명한 ‘쑥대머리’ 도 들어 있다. 임방울과 김연수는 대단한 맞수였다고 하는데, 맞수의 더늠까지 포함시킨 것을 보면, 김연수는 좋은 소리라면 무엇이든지 채택하는 개방적인 태도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신연맞이’ 대목은 진양조 장단으로 되어 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다른 [춘향가]의 경우에는 모두 이 대목을 자진모리로 부르는데, 특별히 진양조로 부르는 것은 이 대목을 김연수가 진양조로 새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대목을 진양조로 부르는 이유에 대해서 김연수는 “ 어서 가서 춘향 볼 욕심에 마음은 장히 급허지마는, 사또의 행차라 점잔을 빼시느라고, 진양조로 내려오든 것이었다 .”라고 함으로써, 나름대로의 상황을 설정하고 있다. 사설은 정광수의 것과 같아서 서편제 소리를 계승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음악에서는 김연수만의 개성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김연수의 이면 해석의 독특함을 보여준다고 하 겠다.
재회 부분에서는 남원 읍내 과부들이 등장(等狀)을 드리는 대목이 다른 바디에는 없는 부분이다. 이는[옥중화]에만 있는 대목이므로, [옥중화]에서 차용한 것이 분명하다. [옥중화]는 소설이기 때문에 음악은 김연수가 작곡한 것으로 생각된다. 어사 출도 이후에 이도령이 밤에 춘향 집에 나가 춘향과 함께 보내는 대목과 춘향이 정실부인이 되는 대 목은 [옥중화]에만 있기 때문에, 이 대목도[옥중화]를 차용해서 김연수가 작곡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상과 같은 검토 결과, 김연수의 [춘향가]는 정정렬 바디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소설본으로서는 [옥중화]에서 많은 부분을 차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좋은 대목은 유파나 바디를 불문하고 차용한 결과 그야말로 더늠의 보 고가 되었다. 김연수의 바디[춘향가]는 어느 한두 바디만을 오롯이 전승하지는 않았으며, 당시 현존하던 거의 모든 소리를 원천으로 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