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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t Baker - The Last Great Concert 1&2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이 있다. 정말 기가 막히는 언어로서, 어차피 한번 왔다가 가는 것이 인생이랄진데 별다른 감정없이 시절 인연이 다해서 저 세상으로 갔다면 간단한 논조로 끝나겠지만, 쳇 베이커의 사망에 대해서는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상당한 미스테리와 함께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물론 매년 몇 명씩의 재즈계의 유명 뮤지션들이 우리 곁을 떠나고 있지만, 쳇 베이커의 사망은 그때 당시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우리나라가 올림픽 준비에 한창 분주했던 88년 '5월 13일 금요일 새벽 3시 10분경,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호텔 2층 방에서 미국의 유명한 트럼펫터 겸 싱어 쳇 베이커가 창 밖으로 추락하여 사망하였다. 추락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13일자 로이터 통신이 암스테르담 발로 전세계에 타전한 간단한 비보였다. 목격자도 역시 없었고, 다만 순찰하던 경찰에 의해서 트럼펫을 안고 추락사한 사람을 발견했을 뿐이다.

재즈계의 제임스 딘이라고 불리며 팬들에게는 '영원한 청춘'의 심볼로 각인되어 왔던 쳇 베이커는 웨스트 코스트재즈의 히어로로서 혜성같이 나타나서 재즈 팬들을 매료시켰던 트럼펫터이자 보컬리스트였는데, 석연찮은 죽음을 맞이한 파란만장의 생애가 그의 음악적 컨셉션에 강하게 용해되어 있는 거 같다.

체스니 헨리 (쳇) 베이커는 1929년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에 오클라호마주 예일에서 태어났다. 캘리포티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하이 스쿨 시기에 접어들면서 트럼펫을 불기 시작했다. 46년부터 48년까지는 병역 관계로 밀리터리밴드에서 활동하다가 제대 후 로스앤젤리스에 있는 엘 카미노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했다. 50년에서 52년에 걸쳐 또 다시 군에서 밀리터리 서비스를 마친 후 그는 챨리 파커와의 세션을 거치고 제리 멀리건의 제1기 피아노레스 쿼텟 멤버가 되어 활동하게 된다.

53년에는 자신의 그룹을 결성하여 릴리컬한 트럼펫 스타일을 과시하면서, 그의 스마트한 용모와 함께 일약 인기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59년 후반부터 60년대를 거치면서 그는 마약에 탐닉하여 투옥되는 등, 재즈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기도 했었다. 73년 여름 뉴욕으로 돌아왔지만 주로 유럽 각지에서 투어링 콘서트 내지는 레코딩을 했던 그의 활약상을 볼 수 있다. 86년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투어링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지만 일본을 방문하여 대도시 순회 공연을 절찬리에 수행하여 일본 팬들에게 그의 존재를 확인하기도 했다. 88년 3월에는 쳇 베이커의 반평생을 영화화하기도 했는데, 'LET'S GET LOST'라는 제명으로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국내에는 미개봉 영화이지만 모노크롬으로 쳇의 불우했던 삶을 간결한 터치로 영상화하고 있다. 매니어들 사이에는 꽤 공감을 얻은 작품이었다.

이 앨범은 이런 분위기 속에 유럽투어링 콘서트의 일환으로 실시한 독일 공연인데, 실제로는 88년 4월 27일부터 28, 29일에 걸쳐 3일간 개최되었다. 그 중에서 4월 28일 하노버의 푼크하우스 콘서트를 실황 녹음하여 두장의 앨범으로 정리한 것이다. 6곡의 빅 밴드 세션, 퀸텟에 의한 곡이 2곡 포함하여 총 14곡을 2장의 음반에 수록하였다. 먼저 VOL.Ⅰ인 'MY FAVORI TE SONGS'가 'THE LAST CREAT CONCERT라는 부제로 선행 발매되었다. 훙 VOL.Ⅱ인 'STRAICHT FROM THE HEART'를 내놓으면서 '신이 내려주신 은총이 VOL.Ⅱ의 등장'이라고 찬사를아끼지 않고 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콘서트를 마친 꼭 2주 후에 쳇은 유명을 달리했기 때문이라라.

전체적인 앨범 구성이 프로듀싱의 짜임새를 강력하게 이끌어 가고 있다. 85년부터 이 레이블의 창업주인 홀스트웨버와 함께 실제로 엔야를 리드하던 프로듀서 마티아스 윈켈만의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 작품이다. 그의 가슴 아픈 작업이 얼마나 처절했으면 이 앨범 말미에 '쳇 베이커는 이 콘서트가 끝난 2주후에 암스테르담에서 사망했다'라는 간결한 문구로 슬픔에 대신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재즈 스탠더드와 오리지널을 뮤지션에 경도됨이 없이 순수한 음악적이 배려에 이 앨범의 매력을 더하고 있다. 지휘자 디테르글라비쉬니히가 이끄는 'NDR 빅 밴드'와 '하노버 방송 교향악단'이 함께 하며, 쳇의 서정미를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백킹을 하고 있다. 세심한 배려와 섬세함 편곡이 발굴이다. 쳇의 수많은 앨범 중에서 엄선한, 쳇이 가장 서노한 레퍼터리를 총망라하고 있다. 어느 한 곡이 훌륭하고 어는 곡이 조금 모자란다라는 선별 의식을 일거에 구축하는 연주는 쳇이 이미 경지에 다다르고 있다는 묵시적인 표현일 것이다.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이 진정 쳇이 사랑한 곡들이다. 또 그만이 할 수 있었던 지고지순의 콘서트였다. 그의 수많은 앨범을 접해 보았지만 이 앨범만큼 훌륭한 연주와 연주 스케일이 방대하다는 면에서 단연 압권이다. 무엇보다 진정으로 훌륭하다는 것은 연주와 보컬이 조화롭게 다가오기 때문이 아닐까? 필자는 단언할 수 있다. 이 앨범이야말로 쳇 베이커가 남긴 최고의 걸작이자 베스트 앨범이라고.

'MY FUNN VALENTINE'을 들으면 모골이 송연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트럼펫트로서의 원숙함에 더하여 보컬리스트로서도 그만의 독특한 개성에 깊은 맛을 가미하여 애조를 띤 보이스 칼라를 팬들 앞에 과시하고 있는데, 다시 말해 보컬리스트로서의 쳇의 노래는 중성적이면서도 앙뉘(ENNUI)한 특별한 무드를 조용히 유도하고 잇다. 지극히 유니크하며 개성적인 표현이다. 이러한 독자적인 스타일은 과거에 있어서 퇴폐적이랄까, 게이의 푸념 같은 노래라는 평판도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 그가 부른 노래의 본질적인 매력이 다시금 재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점은 전문 보컬리스트에 비하면 목소리가 탁월하지 않았던 쳇의 단점을 독자적인 개성으로 카버하고 있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기타를 백킹으로 쳇의 트럼펫이 직선성 강하게 테마를 연주하면 어느새 피아노가 자리하고 오케스트라가 그 위를 덮는다. 정말 장엄이란 말이 적절치 않을까도 생각해 보지만, 역시 언어의 한계를 스스로 느끼고, 가슴으로 듣는, 아니 느끼는 음악으로 자리매김한다. 많은 뮤지션들이 오케스트레이션을 백으로 하여 연주하였지만, 이처럼 하노버 방송 교향악단 만큼 연주할 수 있는 악단은 진정 드물다. 지휘자의 정서와 감성이 쳇과 일치하는 것이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명곡 'ALL BLUES'를 위시하여 델로니어스 몽크의 'WELL YOU NEEDN'T, 죠지 거쉬인의 'SUMMERTIME' 등 데이브 브루벡, 죤 루이스, 새미 칸, 제롬컨, 호기 카마이클이라는 뮤지션들의 명곡들을 망라하고, 리챠드 로저스의 곡을 3곡, 마일스 데이비스의 2곡을 배려한 점은 그를 흠모하며 즐겨 연주할 정도가 아니라, 쳇은 웨스트 코스트의 마일스 데이비스라는 별칭을 항시 달고 다녔다. 특히 그의 트럼펫 연주는 중음대역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비브라토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이 점은 마일스 데이브스의 영향이 지대하다고 생각된다. 결국 주법과 스타일 양면에서 그는 마일스의 그 모든 것을 사랑했을지도 모르겠다. 또 퀸텟 연주에서도 아름다움 그 자체를 노래하고 있다. 특히 앨토 색소포니스트 허브 겔러는 50년대 초 웨스트 코스트 시절부터 호흡을 같이햇던 오랜 친구로 2곡에 참여하여 쳇의 연즈를 더욱 빛내고 있다. 앵콜곡 역시 ' MY FUNNY VALENTINE'으로 마감하고 있는데, 1집과의 비교 시청에 따른 별미를 만끽하기에 충분하다.

일세를 풍미했다고 하지만 쳇이 보여준 말년의 초라함과 패배주의만을 기억하는 팬들도 많다. 그럼에도 죽기 직전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게 있어서 삶이란 따분할 뿐이다' 얼마나 질곡의 세월을 살았으면 얼른 수긍이 가지 않는 그의 현학적인 대답은 범인으로서는 수용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해본다.쳇에게서 느끼는 재즈란 언어는 본능이요, 천부적으로 타고난 그만의재능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우리들이 먹고 자고 배설하는 일상사가 쳇에게는 재즈라는 일상으로 환치되어 있었던 것이리라.

수많은 녹음에 참여하면서 솔로로서 연주한 것과 세션 맨으로 참가한 것을 줄잡아 천여 작품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메이져다 마이나과를 괘념치 않고 재즈가 필요한 곳이나, 재즈가 있는 곳이면 그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에게 있어 재즈는 삶 그 자체였기에, 재즈와 더불어 살았고 끝내 천재의 결실을 이루지 못하고 이국 땅 암스테르담의 초라한 호텔에서 추락하여 싸늘한 시신으로 생을 마감하였는데, 이 역시 그의 예정된 하나의 삶의 수순이었는지 모르겠다. 권태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천국행을 선택했는지 확인할 길이없다. 그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쳇 베이커여 영원하라. 여기에 그대의 노래가 살아 있노라.

최 영수(음악평론가)

자료제공 : Good Mus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