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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k Drake - Family Tree (Island 50주년 캠페인)
<P>“지금도 설레이는 그 이름” Nick Drake (닉 드레이크) <BR>소문만 무성했던 그의 초기 미공개 작품들 [Family Tree]<BR>“사후 35년이 지난 지금, 그의 초기 습작들과 홈레코딩 음원들이 드디어 정식 발매된다!”</P> <P>엘리엇 스미스, 제프 버클리, 루퍼스 웨인라이트 등&nbsp;&nbsp; 음악계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들의 무한한 존경을 받은 요절한 천재 싱어송라이터 닉 드레이크.</P> <P>데뷔 전 작곡했던 초기 습작들, “Way To Blue”, ”Day Is Done” 등 정규 앨범 수록 곡의 다른 버전 트랙들, 누이와 함께 노래한 ”All My Trials”, 음악가였던 어머니 Molly Drake가 작곡한 “Poor Mum”, 닉 드레이크의 클라리넷 연주를 들어볼 수 있는 “Mozart’s Kegelstatt Trio” 등 그의 팬이라면 절대 놓칠 수 없는 27곡의 레어 트랙들이 꽉 차있다.</P> <P>‘어린 시절 가족사진을 포함한 희귀 사진들과 편지 등이 포함한 초호화 부클릿 포함! ’ <HR> <P></P> <P><STRONG>“당신과 나, 우리를 위한 선물”&#8211; Nick Drake [Family Tree]</STRONG></P> <P>나는 안다. 당신이 이 앨범을 길 가다 집어 들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떨리는 손으로 앨범을 트레이에 걸고 있을 당신을, 마지막 트랙이 끝날 때 즈음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지 않을 당신을.</P> <P>그렇다. 닉 드레이크(Nick Drake, 본명 Nicholas Rodney Drake)다. 트랜스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지금 왠 닉 드레이크냐고, 키보드로 교향곡을 만들어 내는 시대에 왠 포크냐고 비웃는 시각이 대부분일 테지만, 이 앨범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아직 닉 드레이크를 기억하는 당신, 바로 당신을 위한 선물이다.</P> <P>1974년 11월 24일 저녁,<BR>닉 드레이크는 친구들의 저녁 방문 이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 새벽, 그의 어머니는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었고, 당연히 아들이 평소처럼 콘 프레이크를 먹으러 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닉 드레이크는 곧 방으로 돌아갔고, 음악을 틀었다. 그리고 깊이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는 그가 평소 일어나는 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방에서 나오지를 않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방에 들어갔을 때 그는 조용히 누워있었다. 머리맡에는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시지프스의 신화(Mythe de Sisyphe)」와 소피아 라이드(Sophia Ryde)에게 보내는 편지가 한 장 놓여있었다. 소피아는 1주일 전에 그에게 이별을 통보한 상태였다. 어찌되었던 그는 죽었고, 부검이 행해졌다. 검시관은 사인이 항우울제의 일종인 ‘아미트리프탈린(amitriptyline)’과다 복용에 있다고 발표했고, 약물의 투여가 강제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자살이라는 결론을 냈다. 하지만 가족들은 당시 희망적이고 열의에 찾던 그의 상황을 근거로 이의를 제기했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12월 초에 장례식이 있었고, 50여 명의 지인들이 모인 가운데 27세의 닉 드레이크는 화장되었다.</P> <P>그리고 35년이 지난 지금,<BR>[Family Tree]는 닉 드레이크의 사후 35년에 맞추어 발매되는 미공개 트랙 모음집으로 데뷔 전에 녹음 된 음원들이다. 한 아티스트의 죽음 후에 컴필레이션 앨범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가 되었고, 더욱이 닉 드레이크의 경우 이미 이런 류의 앨범이 몇 차례 발매 되었는데 왠 호들갑이냐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앨범에는 전에 없던 세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 첫째, 단순한 미공개 트랙 외에도 데뷔 전 연습 삼아 녹음한 곡과 같은 습작 수준의 곡들이 실려 있다는 점. 둘째, 생의 마지막을 같이 보냈던 가족들과 함께한 트랙들이 실려있다는 점(앨범 타이틀부터 Family Tree &#8211; ‘가계도’ 아닌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정식 발매되는 닉 드레이크의 앨범이라는 점이다. 필자는 이 세 번째 특징으로 인해, 닉 드레이크 개인에 대해 보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그가 마지막에 누웠던 침대보 색깔까지 꿰고 있는 지독한 당신도 있을 테지만, 이 해설지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닉 드레이크를 알려줄 수 있는 첫 기회이기 때문이다.</P> <P>27년의 슬프지만 아름다웠던 그의 生</P> <P>닉 드레이크(이하 ‘닉’)는 1948년 6월 19일, 미얀마(Mynama)의 수도 양곤(Yangn)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로드니(Rodney Drake)가 운송회사에서 미얀마 파견 근무를 하던 중, 어머니 몰리(Molly Drake)를 만났고, 그곳에서 가브리엘(Gabrielle Drake)과 닉을 낳은 후, 고향인 워릭셔(Warwickshire)로 돌아왔다. 그곳은 영국 중남부의 한적한 농장 지대로, 런던 생활에 지친 닉이 안식처로 삼았던 곳이자, 그의 생을 마감한 곳이기도 하다.<BR>어린 시절, 닉의 가족들은 그에게 많은 음악적 영향을 주었다. 특히, 어머니 몰리의 경우, 어느 정도 활동을 했던 음악가로 이 앨범에는 그녀가 작곡하고 노래한 “Poor Mum”이 실려있다. 그의 누이 가브리엘 역시 다양한 재능을 가진 비범한 인물로, 후에 영국에서 꽤 인기 있는 배우로 성장한다. 닉은 이런 가정 환경에서 일찍부터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적 재능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청소년기의 닉은 음악과 스포츠를 사랑하는, 자신감 있는 학생이었다. 15살 때에는, 학교 오케스트라에서 피아노를 맡았으며, 색소폰과 클라리넷을 배우기도 했다(이 앨범에 수록된 “Mozart’s Kegelstatt Trio”를 통해 그의 풋풋한 클라리넷 연주를 확인해볼 수 있다). 또한 타 학교 학생들과 재즈/락 성향의 밴드 퍼퓸드 가드너(The Perfumed Gardeners)를 조직해 활동했는데, 이 밴드는 국내 자동차 CF에도 삽입된 “Song Bird”로 유명한 크리스 디 버그를 멤버에서 퇴출시키기도 했었다.</P> <P>닉은 1966년 케임브리지 대학(University Of Cambridge) 영문학과에 입학했지만 진학 직후부터 학업에 흥미를 잃었고, 대부분의 시간을 모로코와 프랑스 등지를 여행하는데 보냈다. 그 후로는 주위의 모든 것들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고, 방에 틀어박혀 줄담배를 피우며 음악을 듣고 연주하는 일에만 심취했다. 이러한 은둔자적 생활을 하는 중, 학교 동료이자 아마추어 음악가였던 로버트 키비(Robert Kirby, 이후 발표되는 닉의 앨범에서 arrangement를 맡았다, 이하 ‘로버트’)를 만나 음악적 영감을 얻었고, 미국과 영국의 포크음악을 접하게 되었다. 그는 당시 밥 딜런, 밴 모리슨, 팀 버클리 등의 음악에 심취해 있었는데, 특히 팀 버클리의 경우, 그의 아들 제프 버클리가 존경하는 뮤지션으로 닉을 꼽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런 연결고리가 신기하면서도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후 닉은 런던 근교의 클럽들에서 작은 공연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때, 페어포트 컨벤션(Fairport Convention)의 베이시스트 였던 에쉴리 허칭스(Ashley Hutchings)가 우연히 닉의 공연을 본 후, 그를 자신의 밴드 프로듀서인 조 보이드(Joe Boyd, 이하 ‘조’)에게 소개했다. 조는 아일랜드 레코드의 산하 프로덕션인 위치시즌(Witchseason Productions)의 사장이자 명 프로듀서로 영국 포크씬에서 꽤 이름을 날리던 인물이었다 - 그는 이후 닉의 둘도 없는 정신적 지주가 된다. 1969년, 닉은 조에게 4곡짜리 데모 테이프를 보냈고, 그 이후 4년 동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의 명반 3장이 연달아 발매된다.</P> <P>런던, 시작 - [Five Leaves Left]<BR>1969년 봄, 닉의 데뷔 앨범 녹음이 시작되었다. 닉은 학업을 포기한 채 런던으로 이사했고, 조는 직접 프로듀싱을 맡았으며, 페어포트 컨벤션의 멤버들이 세션으로 참가했다. 로버트 역시 런던으로 건너와 친구의 앨범작업에 참여했다. 그리고 1969년 9월, 훗날 영국 팝 역사상 최고의 데뷔앨범 중 하나로 평가되는 [Five Leaves Left]가 발매되었다. 록큰롤이 지배하던 시절에 오케스트라 편곡을 입힌 포크음악을 선보임으로써, 시대를 초월한 이성과 감성을 보여준 걸작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대중과 매체의 반응은 미약했고, 심지어 NME는 ‘유쾌하긴 하지만, 침투력과 사람을 잡아 끄는 소질이 부족하다’라는, 지금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평을 하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닉은 인터뷰와 촬영을 극도로 꺼려해 안 그래도 부족한 홍보 기회마저 날려버렸고, 결국 데뷔 앨범은 상업적 실패를 맞이했다.</P> <P>절망의 서곡 - [Bryter Layter]<BR>조는 1집이 너무 무겁고 목가적이었다고 판단, 다음 앨범을 당시 유행하던 스타일인 업-비트 재즈 분위기의 팝으로 만들기로 결심했고, 심약해진 닉은 그의 의견을 그대로 따랐다. 그리고 1970년 11월, [Bryter Layter]가 발매되었다. 사운드는 매끄러워졌으며, 오케스트레이션은 더욱 풍부해졌다. 하지만 이 앨범도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고, NME는 ‘포크와 재즈의 꼴사나운 결합’이라며 비꼬기까지 했다 &#8211; 훗날 이 앨범은 가디언(The Guardian)에 의해 역사상 가장 뛰어난 ‘얼터너티브’ 앨범으로 선정된다. 그는 이 실패로 강한 심리적 압박을 받기 시작했는데 설상가상으로 자신의 정신적 지주였던 조 마저 자신의 프로덕션을 매각하고 미국으로 떠나버려, 우울증 증세가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닉은 증세가 악화 될 수록 약물과 마리화나에 의지하게 되었고,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자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엄청난 양의 마리화나를 피워댔으며, 항우울제 복용은 도를 지나치고 있었다.</P> <P>어둠에서 탄생한 달빛 - [Pink Moon]<BR>아일랜드 레코드는 더 이상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1971년 겨울, 닉은 그의 전 앨범들에서 엔지니어링을 맡았던 존 우드(John Wood, 이하 ‘존’)를 찾아가 음반 녹음을 부탁했다. 레이블의 지원 없이 단 둘이 앨범을 녹음하기 시작했고, 녹음은 단 이틀 만에 이루어졌다. 닉의 최고 명반으로 평가되는 [Pink Moon]은 그렇게 탄생되었다. 닉은 이 앨범에서 기타와 피아노(그나마 피아노는 몇 소절 나오지도 않는다)로 모든 곡을 연주했다. 그렇게 녹음된 11곡은 하나같이 어둡고 짧았지만(11트랙이 겨우 28분이다), 신세타령이나 하는 단순한 신파와는 다른 품위를 가지고 있었다. 닉은 녹음을 마친 후, 마스터 테이프을 아일랜드 레코드 프론트로 가져갔다 - 이후 몇 주일 동안 그 테이프는 프론트에 머물러 있었다고 하는데, 세기의 명반이 사장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결국 1972년 2월, 그의 세 번째 앨범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지그재그(Zigzag)을 비롯한 몇몇 매거진이 그의 진솔함에, 그의 음악에, 그의 인생에 박수를 보내는 기사를 실었지만, 대부분은 ‘닉 드레이크? 관심없다’ 식의 반응을 보였고, 판매량 역시 전작들을 뛰어넘지 못했다.</P> <P>고향, 갱생과 죽음<BR>“어머니, 저도 집에 있기는 싫지만, 집이 아니면 어디서도 더 이상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아요” 음악계를 떠나기로 마음먹은 닉은 부모님의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친구의 집에 가서 아무 말 없이 바닥에 앉아 음악을 듣고, 담배를 피고, 술을 마셨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2~3일 지낸 뒤, 갑자기 사라졌다가 3개월 후에 다시 나타나고는 했다. 머리를 감지도, 자르지도 않았고, 손톱, 발톱 역시 다듬지 않았다. 닉은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했고, 결국 가족의 권유로 다시 정신 병원에 입원했다.<BR>그렇게 2년의 시간이 흐른 1974년 가을의 어느 날, 닉은 조용히 존을 찾아가 4번 째 앨범을 녹음하고 싶다고 말했다. 때마침 미국에서 돌아온 조도 기꺼이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모든 것은 희망차 보였다. 하지만 2년 만에 나타난 닉은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과도하게 신경질적이었으며, 심지어 기타연주와 노래를 동시에 하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정신적 지주였던 조와의 작업은 닉의 영혼을 서서히 깨워주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열정을 불태우려 하던 그 순간, 그는 27년의 힘겨웠던 삶을 조용히 마감했다.</P> <P>당시 닉의 죽음은 그리 큰 뉴스 거리가 아니었다. 프레스의 기사도, 다큐멘터리도 없었다. 하지만(대부분의 요절한 팝 스타들 처럼) 시간이 흘러 80년대에 이르자, 알이엠(R.E.M)의 벅, 큐어의 스미스같은 인물들이 그를 칭송하기 시작했다 - 심지어 큐어의 경우 그 밴드명 자체가 닉의 노래 “Time Has Told Me”의 가사에서 따온 것이다. 1990년대가 되자, 닉의 이름이 여러 신문, 잡지에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올뮤직가이드(AMG)에선 정규 앨범 3개 모두에 만점을 매겨놓았다. 닉은 대중들에게 신비롭고 어두운, 요절한 로맨티스트로 기억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가장 놀라운 사실은 2000년, 폭스바겐의 TV광고에 “Pink Moon”이 삽입되어 방송된 이후 단 한달 동안에 판매된 닉의 앨범의 양이, ‘슬프게도’ 지난 30년 동안 판매된 양보다 더 많았던 것이다.</P> <P>아직 끝나지 않은 노래</P> <P>닉은 그렇게 살다가 갔다. 어떻게 보면 ‘혜성 데뷔→방황→자살’의 음악인 엘리트 코스를 정확히 밟은 셈으로 그의 사후 인기가 그렇게 이상한 현상인 것만은 아니다. 또한 무성의한 공연(이것은 사실 그가 사용한 군집화음 주법에 의한 문제로, 닉은 기타로는 행하기 어려운 이 기법을 변칙 튜닝을 통해 연주해 보컬과의 절묘한 불협화음을 앨범에서 선보였으며, 심지어 실제 공연 중 곡 중간에도 튜닝이 바뀌는 부분에서는 연주를 멈추고 튜닝을 변경한 후 이어 나가기도 했다), 약물 중독, 시적인 노랫말, 기행 등의 요인이 사후 그를 단순한 가수 이상으로 추앙 받게 만드는 데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실제 몇몇 아티스트들은 위와 같은 요인으로 과대평가 받았으며, 어떤 아티스트들은 이러한 메커니즘을 아는 팬들에 의해 과소평가 받아왔다. 닉은 한국에서 후자의 대접을 받아왔다. 많은 60~70년대 포크음악 팬들이 닉을 그리 높게 평가하고 있지는 않는데, 이는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과 여린 감수성을 단순히 ‘신파적 유행을 이끌어낸 젊은이’ 정도로만 해석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닉의 음악을 오랜 시간 들어온 청자라면, 혹은 이 글을 통해 닉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된 팝 팬이라면, 그렇게 성급한 판단을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BR>이번 앨범은 닉의 살아생전 그와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특별한 앨범이다. 대부분의 수록곡들은 그의 대학 시절부터 음악의 동반자였던 로버트와의 작업에 의해 녹음된 것들이고, 평생 닉의 조력자 역할을 했던 존에 의해 리마스터링 되었다. 어머니인 몰리가 부른 곡들은 놀랍고도 깊은 음악적 완성도를 보여주며(서두에서 언급한 “Poor Mum”외에도, 닉의 곡을 몰리가 부른 “Do You Ever Remember?” 역시 놓쳐서는 안될 트랙이다), 가브리엘과 닉이 함께 부른 “All My Trials”는 그녀의 매혹적인 목소리로 인해, 흡사 니코(Nico)와 닉의 듀엣을 듣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BR>하지만 이 앨범의 진정한 가치는 다른 곳에 있다. 바로 곡 중간 중간에 들려오는 그의 웃음소리, 기침 소리, 중얼거림 등 ‘그에 관한’ 사소한 것들이다. 망자에 대한 그리움이 본래의 것보다 과장되게 느껴지는 것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맙소사, 닉 - 단 하나의 동영상 클립조차 없는 그의 웃음 소리라니. 특히 [Five Leaves Left]에 실렸던 “Day Is Done”을 부르면서 웃음보를 터트리는 닉의 음성은,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눈물짓게 만들고, 심지어 “Winter Is Gone”에서 들리는 작은 헛기침 소리는 그가 아직 곁에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만든다. 또한 “Paddling In Rushmere”를 듣고 있으면 자신의 곁에 키득거리는 누이를 앉혀놓고 흐뭇하게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을 닉의 모습이 눈앞에 선히 떠올라 다시 한번 눈시울을 적시게 된다.<BR>닉의 음악은 통기타와 가사, 목소리로 대표되는 포크이다. 프로그레시브의 실험성도, 젊은이들의 피를 끓게 만들었던 록큰롤의 임팩트도 없지만, 그의 가사와 목소리는 그 외에 다른 어떤 것도 거추장스럽게 만들어 버린다. 그의 가사(그는 영문학을 전공한 문학도였지만, 그의 가사에서 나타나는 비유나 은유 등은 전형적인 것과 거리가 먼, 감성적인 측면의 것들이었다. 그는 거의 대부분의 상징물을 자연에서 찾았는데, 달, 별, 바다, 비, 나무, 하늘, 안개 등 그의 내면에서 나오는 것들을 거르지 않고 이용했다)를 음미하면서 맞이하는 새벽의 느낌을 아는 당신에게 이 앨범은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 될 것이다. 닉 드레이크를 기억하는 당신에게, 닉 드레이크를 알려준 당신에게 이 앨범 [Family Tree]가 작은 기쁨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P> <P>* 가브리엘이 이번 앨범 발매에 맞추어 세계 프로모션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방문을 원하는 국가에서 닉에 대한 이야기와 정보를 나눌 예정인 듯 한데, 역시 우리나라는 먼 나라 이웃나라 이야기가 될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여러분이 분발한다면 혹시?</P> <P>[글 : 홍혁순]<B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