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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dad Rohani - Encore on Iv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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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dad Rohani - Encore on Ivory
Prologue...
아침부터 내린 비로 어둑어둑해진 창 밖의 하늘에선 무료함이 쏟아진다. 이따금씩 창문을 두들기는 빗소리. 바람이 세차게 분다. 푸른 액정을 발산하는 오디오의 스피커에선 얼마 전 의뢰 받은 한 장의 모니터 CD의 피아노 선율이 시작된다. 샤대드 로하니(Shardad Rohani)의 『Encore on Ivory』
Rain Story...
정보의 단절...활자로 음악을 평가하는 최대의 우를 배제하기 위한 배려일까. 아티스트에 대한 정보 없이 음악을 들어보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렇게 비오는 날 이 음반이 손에 잡힌 이유는 무엇일까. 첫 곡 「Connie's Butterfly」의 청순한 인트로가 새롭다. 잔잔하게 코드가 진행됨에 따라 천천히 눈을 감고 피아노 건반을 짚어가는 아티스트의 모습을 그려본다. 눈에서 머리로, 그리고 귀를 거쳐 여유 있게 반복되는 음표는 가슴속으로 서서히 스며온다. 최근의 뉴에이지 아티스트들의 매너리즘으로 굳어있는 슬픈 어조의 감상(感傷)을 최대한 절제한 성숙함이 배어있는 아티스트. 내가 감상적이지 않아서 일까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다음 곡을 들어보고 싶은 강한 흡인력...다른 현악기를 배제한 체 철저하게 어쿠스틱 피아노 한대만으로 들려주는 로하니의 16곡의 음악은 화려하지 않고 현란하지 않기 때문에 편안하고 친근하게 감성을 유발한다. 기본기가 탄탄한 클래식컬한 연주와 기교를 부리지 않음에도 다양한 색깔을 지닐 수 있는 그의 음악은 자기 내면의 감정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검은 건반 위를 날개짓하던 'Butterfly'는 곧 미지의 꿈을 찾아, 두 번째 수록곡인 「Distant Dream」에 도착하여 조용히 날개를 접고 머리를 숙인다. 지금까지 잡기 위해 애를 쓰던 행복과 사랑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Connie's Butterfly」에서 「Thoughts of the Past」까지 총 16곡의 피아노 연주곡으로 구성된 이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한단어로 규정짓는 것 만큼 위험한 과정이 있을까. 이 앨범의 타이틀곡인 「Rain Story」에서는 비속에 잠긴 쓸쓸함이란 통념을 투명한 아름다움으로 바꾸는 힘으로, 단정한 우울함 속에 '희망'을 포함시켰다. 슬픈 사랑, 이별과 죽음, 상처의 아픔의 표면적인 묘사는 그에게 이미 1차원적인 정서일 것이고 이런 실수는 음악이 끝난 뒤의 무한한 느낌에 대한 자유로움을 방해하게 만들 뿐이다. 로하니는 사람들이 고민하는 감정적인 문제들의 현상보다는 원인에 대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감정의 절제와 정곡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지녔다. 사랑의 테마곡 「Eternity」,「Beauty of Love」,「Voices of the Night」을 연이어 들으며 창 밖을 다시 한번 내다본다. 유리창을 타고 흐르는 빗방울은 미래에 대한 상처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들어갈 수 없기에 주변을 맴돌다 결국엔 바닥으로 흘러 떨어지고 마는 인간의 나약한 현실. 음표를 따라가는 손놀림의 강약에 따라 방향을 바꿔가며 춤을 추는 빗방울의 모습을 지켜보며, 새로운 꿈과 희망을 찾아 다시 일어서는 신성함마저 드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마지막 곡 「Thoughts of the Past」에 이르러 격정적인 인트로를 따라가며 마음속에 자리잡은 다양한 질문들은 이제 온몸의 혈관을 타고 나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Epilogue...
1시간동안 이어진 샤대드 로하니(Shardad Rohani)와의 대화를 마치며 담배를 한대 입에 물고 창 밖을 내다본다. 비가 그친 모양이다. 온통 검게 눌러오던 무거운 하늘은 언뜻언뜻 파란 얼굴을 내비친다. 팔을 높이 뻗어 기지개를 펴본다. 순간 그 동안 온몸을 휘감던 기운이 빠져나가는 시원함. 귀로만 들어보려 했던 이 음반을 마음으로 들어 보면서 신선하게 다가오는 느낌이 꽤 상쾌하다. 때론 처절하게, 때론 가을햇살보다도 부드럽게, 가끔은 폭풍우가 내려도 좋다. 이제는 이 모든 것들을 여유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있게 된 것 같다. 촉촉한 비소리처럼, 유리창을 타고 흐르는 16곡의 음악은 사랑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행복한 사랑을 꿈꾸게 만들어 주는 새로운 에너지와도 같다. 플레이어에서 나와 손에 잡히는 따뜻한 CD의 느낌처럼 가슴속에 오랫동안 오늘 이 한가한 낮의 경험이 자리잡을 것이다. 피아노 위에 앉아 있는 작은 나비가 날아갈 때까지...
* 런던 로열 필하모니와 로스엔젤레스 필하모니등 수십 개의 유명 오케스트라단의 수석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샤대드 로하니(Shardad Rohani)는 1993년 그리스에서 공연된 야니(Yanni)의『Live at the Acropolis』앨범에서 야니와 호흡을 맞춰 격정적이고 감동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그리고 2001년 가을을 촉촉하게 적실, 한줄기 Rain Story....로 국내 팬들과 첫인사를 하게 된다. 가슴 벅찬 감동, 그가 우리에게 주는 소박한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