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 Dynamite - Judgement 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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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받는 영국 흑인 음악계 다이너마이트, 진보적이고 소신이 뚜렷한 싱어송 라이터 Ms. Dynamite의 두번째 정규앨범 [Judgement Days]
다이너마이트는 강하다. 하지만 한 번 펑 터지고 나면 그걸로 바로 끝이라는 점이 치명적인 아킬레스 건이다. 그렇기에 지난 2002년 고작 22세의 나이에 영국의 유수한 시상식을 싹쓸이하며 대중음악계에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렸던 여성 R&B/힙 합 뮤지션 미스 다이너마이트가 2003년 어느 시점부터는 쥐 죽은 듯 잠잠했던 것에 의구심을 가진 이도 많았으리라 사료된다. 소위 말하는 ‘원-히트 원더’ 범주에 애써 그녀를 끼워 맞춰가며 말이다.
하지만 7남매를 손수 부양해야 했던 가정 환경에, 4년간 가출 생활을 했던 '빌딩에서 떨어진 고양이 목소리'를 지닌 북부 런던 출신 언더그라운드 래퍼는 마침내 팝 계를 주름잡는 톱 가수로 급부상하고야 말았다. 음악성이 유일한 잣대인 [머큐리 음악상]에서 당당하게 '올해의 앨범' 트로피를 타고, 영국 최고 권위의 흑인 음악 축제 [MOBO] 시상식에서 '최우수 싱글', '최우수 신인', '올해의 UK 아티스트' 3관왕으로 부상한 일만 봐도 알 수 있다.
여기서 각별히 주목할 것이 바로 [머큐리]에서 그녀가 거둔 놀라운 성과다. 그녀는 이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최초의 흑인 여성으로 기록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당시 그녀와 경쟁했던 라이벌들도 하나같이 너무나 쟁쟁한 거물들이었던 사실 또한 간과해서는 곤란하다. 클럽 취향의 어번 사운드를 들려주는 원맨 밴드 스트리츠, 혜성 같이 등장한 영국 록 계의 기대주 코럴 그리고 전설적인 음악계의 거장 데이비드 보위를 모두 물리쳤으니 말이다.
데뷔 앨범 [A Little Deeper]는 순식간에 영국 내에서만 50만 장 이상 팔려나갔다. 그 뿐인가? 2002년 9월과 10월에 상기 언급한 시상식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에 그치지 않고, 이번엔 영국 대중 음악계의 한 해 성과를 총결산하는 [브릿 어워드]까지 제패했다. 이듬해 2월에 얼스 코트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최우수 영국 여성 가수’ 그리고 ‘최우수 어번 가수’로 지목되었고. 조지 마이클을 영상으로 연결해 ‘Faith’를 듀엣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이날 그녀가 열창한 ‘Faith’는 1987년에 전 세계를 강타한 바로 그 유명한 곡에 몇 줄의 새로운 가사를 입힌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다. “아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 이제 내 입장을 표명하겠어 / 내 목소리가 들리니? / 생명을 앗아가는 것은 오직 신의 영역일 뿐 / 내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아” 그녀는 진보적이고도 사회 참여적인 가사를 직접 써서 노래하는 싱어 송라이터였다. 바로 이런 면이 그녀의 다른 점이다.
[머큐리] 수상으로 얻어진 2만 파운드 상금을 즉각 적혈구 빈혈 구호 단체에 기증하고, 2002년 12월에도 인터뷰 도중 “만연한 인종 차별에 항거한다”는 입장을 밝힌 일은 그녀의 주요 관심사가 뭔지를 알려주는 작은 예가 된다. 권총 사용을 반대하는 활동에 적극 참여해 ‘올해의 여성’으로 선출되는가 하면, 2003년 2월에 임신 4개월의 몸으로 제시 잭슨 목사의 [Stop The War] 이벤트에 출연해 토니 블레어의 정책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마이애미와 뉴욕, 스웨덴 그리고 자메이카를 오가는 공들인 작업 끝에 완성된 [A Little Deeper]는 UK 개러지 사운드를 가미한 힙 합과 레게 사운드를 주 메뉴로 삼고 있었다. 12살 어린 나이부터 레게 뮤지션과 어울렸고 19살 나이에 쏘 솔리드 크류의 싱글 ‘Booo!’에 참여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던 그녀다운 선택이라 하겠다. 미운 오리새끼의 백조 만들기에 동참한 이들로, 샐럼 레미 그리고 블러드샤이 같은 프로듀서가 지목되어 있었다.
‘당신들 명품 시계에 박힌 보석을 캐느라 얼마나 많은 흑인들이 죽었는지 아느냐?’는 분노에 찬 목소리를 들려준, 멜로디 폰 사운드가 인상적인 미드 템포 R&B 곡 'It Takes More' 그리고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담하게 읊은 어번 소울/힙 합 넘버 'Dy-Na-Mi-Tee'가 각각 UK 싱글 차트 7위와 5위에 올랐다. 키언 브라이스와 부른 'Anyway U Want It' 그리고 밥 말리 가문의 일원인 키마니가 참여한 'Seed Will Grow' 등이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앨범의 타이틀 트랙이기도 했던 어쿠스틱 발라드 'A Little Deeper', 슬로 발라드 'Brother' 정도는 국내 팝 팬들에게도 무난하게 잘 맞아떨어질 듯싶었다. 하지만 2002년 하반기에 2달 이상을 체류하며 미국 진출을 심각하게 논의했고, 닥터 드레와의 밀담까지 오갔던 그녀가 이후 갑자기 증발해 버린 것은 대체 어떤 이유에서 일까? 2003년 4월의 영국 [브릭스턴 아카데미] 공연 이후 그녀는 공식 활동을 일절 중단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본명이 니오미 맥린-데일리인 그녀가 학창시절에 해적 라디오 방송국 [RAW FM]을 개설해가면서까지 헌신적인 태도로 임했던 음악에 대한 열정을 잠시 접은 것은 다름 아닌 임신 때문이었다. 장래가 촉망되는 프로듀서이기도 한 드웨인 시포스와의 사이에서 생긴 2세말이다. 그녀는 커리어 대신 아이를 택했다. 항시 티격태격했고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딴 살림을 차리곤 했던 그녀의 백인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처럼 자식들을 내버리기는 싫었던 것.
그리고 해가 바뀌고 그의 아들 샤비가 생후 9개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다시 음악계 복귀를 궁리하기에 이르렀다. 2004년 10월이 되면서 런던과 LA, 마이애미, 스톡홀름 그리고 더블린을 오가는 강행군 작업이 시작되었다. 미진한 채로 접었던 미주 진출을 가시화하고자 어브 고티 계열의 프로듀서 칭크 산타나에게 무게를 실어 주었다. 블러드샤이 & 아방트 그리고 르자 사피니어 같은 팝/R&B 프로듀서들도 그녀의 ‘대중 속 파고들기’ 정책을 도왔다.
동명 타이틀 곡 ‘Judgement Day’은 자메이카 레게가 처음 태동하던 당시만 해도 당연했던, 살아 숨쉬는 강성의 메시지 전달이라는 사명에 충실한 곡이다. 넘실거리는 리듬 사이로 인류애의 각성을 촉구하는 메시지가 흐른다. “뭐든 다 혼자 하려 했던 전작에서와 달리 다른 사람들에게 손 내미는 법을 배웠다”는 그녀의 고백을 뒷받침하듯 칭크 산타나의 도움이 컸고, 이미 지난 10월 초에 UK 싱글 차트 20위권에 안착했던 롱 런 히트 예상 트랙이다.
그녀의 사춘기를 더욱 암울하게 만들었던 아버지에게 먼저 화해의 악수를 청한 ‘Father’는 어둡고 무거운 느낌의 발라드 곡이고, 영국의 인기 래퍼 신시어가 게스트로 참여한 ‘Put Your Gun Away’ 역시 힘이 강하게 실린 미드 템포 R&B/힙 합 넘버다. 한편 상반된 이미지의 감성적인 사랑 이야기를 읊은 ‘Back Then’나 케네스 부스의 1968년 동명 레게 고전 에서 후렴 부분을 차용해 온 느긋한 댄스홀 넘버 ‘When I Fall In Love’에도 주의가 요망된다.
싸구려 언론의 자극적인 말장난에 대한 일침을 묵직한 힙 합 비트에 실어 전한 ‘Not Today’와는 상반된, 격려와 포용의 메시지를 전하는 ‘You Don’t Have To Cry’에는 남부 래퍼 릴 웨인 특유의 늘어지는 랩 보컬이 삽입되어 있다. 그녀가 여전히 핑크 무드 만점임을 깨닫게 하는 끈적한 사랑 노래 ‘Unbreakable’, 블루스 뮤지션 찰스 브라운의 1961년 곡 ‘Black Night’ 기타 연주 부분을 빌어 완성한 애절한 슬로 발라드 ‘Pain’도 필청 트랙이다.
아들 샤바에 대한 모정과 각별한 고마움이 고스란히 전달된 ‘Shavaar’, 트렌디한 감각에 충실해 만들어진 흥행 예상 곡 ‘Gotta Let It Go’등도 참 좋다. 더불어 매력적인 미드 템포 힙 합 곡 ‘She Don’t Live Here Anymore’에는 칭크 산타나의 게스트 랩까지 등장하고 있다. 더불어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는 ‘Mr. Prime Minister’는 영국의 현실을 절실함과 비통함을 가득 실어 토로하고 있다.
“다들 내 음악을 어디엔가 집어넣어 분류하려 한다. 하지만 이린 시절부터 워낙 다양한 음악을 흡수하며 자란 만큼, 이번에는 더더욱 그것을 나누기가 힘들 것 같다. 전보다 소울의 느낌이 강해졌고 한편 레게의 색채도 강하게 다가올 것이며, 60년대 로큰롤이나 블루스의 정서로 다가오는 곡도 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나 미스 다이너마이트를 구성하는 요소라 여겨줬으면 한다.” 현재 그리고 영원을 노래하는 그녀의 두 번째 출사표가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