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현 - 히키-신 & 에드 훠 (2LP 박스세트) [300 Set 넘버링 한정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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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희귀 음반들인 히키-신 키타-멜로듸와 에드 훠의 데뷔앨범으로 구성된 2LP, 300 Set 박스 한정본!
이번 박스앨범은, 전량 미국에서 제작하고 수입된 2가지의 칼라 비닐로 300 Set 한정발매되었으며
내용물로는 2종류의 대형 포스터, 12Page 인서트, 3종류의 스티커를 포함하고 있다. 앨범마다 고유번호를 부여했으며 오리지널 앨범과 동일하게 복원된 자켓에서도 충분히 소장의 가치를 느낄수 있는 콜렉터스 아이템.
한국적 락의 시발점을 보여준...
신중현의 첫 번째 밴드였던 [에드 훠]의 데뷔앨범과 신중현이 약관의 나이에 독집으로 발매한
[히키-申 키타 멜로듸 輕音樂 特選集] (1958)는 '대한민국 락 역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음반들이다.
먼저, 우리의 손으로 작곡한 곡들을 스스로 노래하고 연주하기 시작한, 역사적인 [에드 훠]의 데뷔음반은
키 보이스의 데뷔앨범과 같은 해인 1964년에 발매되었지만, 그 시기는 조금 늦다.
하지만, 키 보이스의 앨범 수록곡 대부분이 해외 락 음악의 번안곡 이었던 반면, [에드 훠]의
데뷔앨범 수록곡은 모두 신중현이 작곡한 자작곡 넘버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의 손으로 만든 우리의 락 음악이 시작된 소중한 음반인 것이다.
신중현이 최초로 미 8군 무대를 떠나서 본격적으로 일반무대에 진출하기 위해서 [에드 훠]를 결성한 것은
1962년이다. 밴드의 이름은 기타 코드의 용어에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지배적이지만, 당시 비틀즈의 애칭이었던 'Fab 4'역시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표면적으로 볼 때, 키 보이스의 음반에 쓰여진 '한국의 비틀즈 Key Boys!'라는 문구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에드 훠]에 있어서도 밴드명을 비롯해서 그 편성이나 자켓의 사진에 등장하는 의상 등 모든 면에서
비틀즈의 영향력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외형적인 부분 이외에 음악적인 면까지도 '한국의 비틀즈'가
되려했던 키 보이스의 음악과 [에드 훠]의 음악은 조금 차이가 있다.
[에드 훠]의 음악은 비틀즈의 영향이 있긴 하지만, 오히려 크림이나 야드버즈, 롤링 스톤즈와 같은 그룹에서
볼 수 있는 흑인음악의 요소가 더욱 많았다.
이러한 음악적 성향은 [에드 훠] 이후 신중현이 결성한 덩키스, 퀘션스, 더 맨 그리고, 엽전들로 이어지며
더욱 심화되어 블루스를 그 바탕으로 하고 있는 한국적 사이키델릭과, 하드락의 모체가 되었음에 분명하다.
그리고, 이러한 신중현의 활동들은 해외의 검증된 락 넘버들을 커버하며 '가능성'만을 내재하고 있던
수많은 젊은 밴드들의 활동에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 한 장의 음반은 신중현이 앨범을 통해 프로 밴드 활동을 처음 시작했다는 점
이외에도 '대한민국 락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음반이라는 커다란 의미를 갖는 앨범이다.
물론, 1964년 이들이 행한 락 음악과 현재의 우리가 생각하는 락과는 많은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대한민국 락 역사는 첫 트랙인 '비속의 여인'으로 시작한다.
김목경, 김건모 등에 의해 다시 불려지며, 세대를 초월한 사랑을 받았던 이 곡에서 일단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팩트의 부재 때문에 그 선이 얇고 힘이 부족한 아르페지오 리프이긴 하지만, 곡 전체를 관통하는 일정한 리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리프에서 도출해 가는 중반부 기타 애들립도 무척이나 신선하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초창기 국내의 밴드들은 비틀즈의 영향이 지배적이었고
'보컬리스트'로 구성된 그룹들이 많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뚜렷한 멜로디 라인이 없이
'하모니 보컬'위주의 밴드가 많았다. 하지만, [에드 훠]는 서정길이라는 확실한 객원보컬 체제 아래서
보컬의 솔로 부분과 나머지 멤버들의 코러스 부분이 확실한 경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 역시도 귀기울일 만 하다. 이후 '늦으면 큰일나요'에서도 등장하는 이러한 보컬과 코러스의 콜 앤 리스펀스는 물론 흑인 음악들에서 많이 이용되는 형태였다.
우체통을 의인화한 가사가 재미있는 '우체통'은 당시까지의 관행이었던 기승전결식의 곡 구성이 아니라
결론에 이어지는 전개라는 새로운 시도가 흥미로운 곡.
'사랑해'라는 온 국민의 애창곡을 만들었던 라나 에 로스포에 의해서는 포크 넘버로,김상희에 의해서는 샌프란시스코 풍의 사이키델릭 넘버로 편곡된 바 있었던 '사랑의 상처'는 애니멀즈의 영향을 짙게 풍기는 흑인 성향의 슬로우 넘버이고, 열악한 녹음환경이긴 하지만, 악기의 특성들을 최대한 살려 녹음된 '소야 어서 가자'도 흥미롭다.
한편 서정길 이외에 또 한명의 객원보컬이 이 음반을 통해 데뷔를 하게 되는데, 이후 '안녕하세요'로 국민가수의 반열에 들어서게 되는 장미화가 '천사도 사랑을 할까요'와 '굳나잍 불을 끕니다'에 참여한 것이 그것이다
장미화의 창법에서 다이애나 로스와 같은 흑인 풍의 감성을 감지한 신중현은 그녀에게 슈프림스와 같은 여성 중창팀의 조직을 제안했고, 장미화는 이후 '안녕하세요'를 히트시킬 때까지 중창단의 멤버로 해외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 음반에 장미화가 참여한 두 곡은 패키지쇼에 어울릴 만한 스탠더드 넘버들이다.
'그리운 그 님아'는 당시 유행하던 소위 'XX부기'풍의 기타 연주곡에 보컬을 붙인 스타일의 곡.
펄 시스터즈에 의해서 온 국민의 애청곡으로 거듭나는 '커피 한잔'의 원곡이라고 할 수 있는
'내 속을 태우는구려'의 도입부 역시도 앞서 '비속의 여인'과 같은 리프가 등장한다.
비슷한 시기에 국내에 나왔던 '가요'들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만한 가사가 등장하는 곡으로, 중반부 찰랑거리는 올갠사운드 역시 체크 포인트.
'나도 같이 걷고 싶네'는 이후 임성훈이 '명동거리'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던 곡이다.
신중현의 기타 애들립은 재즈에서 락으로 변모해가던 시절 해외의 많은 기타리스트들의 연주를 연상시킨다.
B면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스탠더드 풍의 곡들이 많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 역시도 당시의 '유행가'들과는
그 성격이 확실하게 다른 곡들이다.
특히 '쓸쓸한 토요일 밤'은 전형적인 블루스 인트로 기타연주를 가진 슬로우 넘버로, 다소 평이한 듯한 보컬만
아니었다면, 국내에서 통용되던 '부루쓰'가 아닌 확실한 '블루스'넘버가 되었을 법한 곡이다.
[에드 훠]는 이 음반 이외에도 자신들의 이름으로 몇 장의 음반을 더 발표했다. 하지만, 해외의 곡들을 벤처스풍으로 편곡해 수록한 경음악 앨범들이라는 점이, 의욕과 재능으로 시작했던 그 시작을 잇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후 신중현은 블루즈테트를 거쳐 덩키스의 활동을 통해 [에드 훠]의 데뷔앨범에서 보여줬던 국내 락에 대한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작업을 이어가게 된다.
신중현의 최초 녹음이라고 할 수 있는 [히키-申 키타 멜로듸 輕音樂 特選集] (이음반은 1959년에 발매되었다고 알려졌으나 앨범이 12인치였음을 감안해 볼때 발매 시기는 1961년 이후로 볼수도 있다)는 비록 열악한 녹음환경 때문에 선명한 음질을 감상하기는 어렵지만, 현재 국내 락의 대부로 불리는 신중현의 정식 레코딩이 담긴 최초의 음원이다.
이후 많지는 않았지만 국내의 몇몇 뮤지션들이 이러한 류의 경음악집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그 음반들과 신중현의 음반은 그 성격이 조금 다르다. 해외의 넘버들이나, 국내의 트로트 넘버들을 주 레퍼토리로 삼았던 여타 뮤지션과는 달리 신중현은 구전동요나 민요를 자신의 기타 사운드로 편곡했기 때문이다.
음반을 들어보면 그의 편곡에 있어서의 성향은 가벼운 터치의 곡들이 있긴 하지만, 멜로디 위주로 진행임에도 불구하고 코드 진행이나 보이싱에 있어서도 관심을 보이는 부분을 통해 락보다는 재즈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다. 많은 다른 기타리스트들이 마찬가지이겠지만, 찰리 크리스천이나 웨스 몽고메리의 영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셔플, 혹은 부기로 발전되며 락 음악의 근간이 되는 블루스로의 접근을 보이는 '아리랑', 스윙감 있게 재탄생한 '밀양 아리랑' 등도 흥미롭다.또, 기타가 주도하는 연주곡인 만큼 이후 발표되는 곡 보다 오히려 확실한 그의 음색을 들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신중현이 했던 락 음악의 길은 사실 독학의 길이었다. 물론, 지금의 상황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고 하겠지만 그가 걸어왔던 길은 그냥 독학의 길이 아니라,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며 역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다. 현재 우리가 그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인 ꡐ국내 락 음악의 대부ꡑ라는 표현은 그가 거쳐왔던 이러한 과정들 때문에 더욱 소중한 것이며, 단지 '미인'과 '아름다운 강산'을 만들어 불렀다는 단편적인 사실에서 기인한 것만이 아니다.
리마스터링된 음질과 완벽히 재현된 자켓으로 재발매되는 이번 음반들이 가지는 의미 역시도 잃어버렸던 역사 퍼즐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채웠다는 데에서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글 : 송명하 (월간 핫뮤직 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