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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ing - Sacred Love
인종과 종교, 국가를 초월한 신성한 사랑을 노래한 스팅의 정규 7집 "Sacred Love"
-일렉트로니카 사운드와의 본격적인 만남

지금으로부터 꼭 4년 전인 1999년 가을. 스팅의 6집 앨범 "Brand New Days"가 선을 보였다. 당시는 'Y2K 증후군'이라는 용어가 생길 정도로 새 천년을 맞이하는 두려움이 팽배해 있던 시기인 동시에 혼돈에 빠져 있는 세계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 또한 피어오르고 있던 시점이었다. 당연히 뮤지션들에게도 '새 천년'은 음악의 좋은 소재가 되었고 스팅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앨범 타이틀부터가 '완전히 새로운 날'을 의미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작으로부터 3년 만에 선보였던 그 앨범은 새 천년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긍정적인 기대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리고 그가 앨범을 통해 노래한 것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치료약으로서의 '사랑'이었다. 그는 그 이전에도 꾸준히 사랑을 노래해왔고 많은 명곡을 남겼지만 그처럼 폭넓은 의미의 사랑을 이야기한 적은 드물었다. 그가 노래한 사랑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흔한 감정의 유희가 아니라 보다 큰 의미의 사랑, 즉 사랑을 통한 상처의 치유 등을 다룬 것이었다.
하지만 스팅이, 또한 많은 음악인을 포함한 예술인들이 그들의 작품을 통해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던 새 천년은 비극적인 9.11 뉴욕 테러 사건으로 얼룩지고 말았다. 전 인류의 공존 번영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종교, 문화간의 갈등으로 인해 인류는 멸망하고 말 것이라는 비관론이 팽배하게 만들어버린 일대 사건이었고 결국은 미국의 이라크 공격으로 이어지며 전 인류를 전쟁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새 천년이 그러했듯이 9.11 테러 역시 아티스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일대 사건이 되었는데 스팅의 경우에는 이 사건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테러 사건이 벌어진 2001년 9월 11일은 공교롭게도 이탈리아의 투스카니에 있는 그의 집 정원에서 라이브 공연을 펼치기로 되어 있던 날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스팅은 200여명의 관객들 앞에서 공연을 가졌고 그 실황은 라이브 앨범 "...All This Time"으로 대중들 앞에 선을 보였지만 당시 공연을 갖느냐의 여부를 놓고 스팅은 무척이나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정말 그 공연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공연을 보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사람들이 우리 집 정원으로 모여들었고, 게다가 그 사람들이 그저 함께 있음으로라도 치유를 받고 싶어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스팅 자신은 회고하고 있다.
"...All This Time" 앨범의 라이너 노트에 앨범을 테러 희생자들에게 바친다고 적어놓았을 만큼 9.11 테러 사건은 스팅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고 결국 이번 새 앨범은 그 사건에 대해 아티스트로서 그가 느낀 고뇌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 스스로도 그 사건 이후 송라이터로서의 자신의 위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아야만 했다고 밝히고 있기도 하다. 결국 그 사건 이후 그가 이 앨범을 위해 만든 곡들에는 그 사건과 이후에 일어난 이라크 전 등을 접하며 그가 느낀 점들, 아티스트로서 혹은 인류의 한 구성원으로서 고민한 점들이 깊게 투영되어 있다. 결국 그가 발견해낸 해법은 "Brand New Day" 때에도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사랑'으로 귀결되어진다. 제목으로 정한 '성스러운 사랑'은 이번 앨범의 주제를 한 마디로 표현해주고 있는 것이다. 동명의 타이틀 곡에서 그는 '모든 남자, 모든 여자, 모든 인종과 국가들은 결국 성스런 사랑으로 귀결된다'고 노래하고 있다. 그 밖의 수록곡들 역시 사랑에 수반되는 고통과 두려움 등등의 감정들을 노래하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그가 내리고 있는 결론은 전작 "Brand New Day"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랑은 모든 것을 구원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가 사람들에 의해 잘못 쓰여지고 있다며 스팅은 이번 앨범의 오프닝 곡 'Inside'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 노래는 사랑으로 상처받고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난 사회가 그걸 조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문 밖의 세계에 대해 공포심을 갖고 있다. 문 밖에는 폭풍이 몰아치고 있지만 곧 우리는 문을 열고 거기에 맞서야 한다."
아마도 문밖의 세계에서 몰아치고 있는 폭풍은 바로 9.11 사태와 같은 비극적인,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사건을 이야기하는 듯 한데 결국 그렇다 해도 우리는 그런 현실에 맞서야만 하며 그걸 가능하게 하는 건 인종과 국가를 초월한 성스러운 사랑이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스팅은 이번 앨범 역시 그의 오랜 음악 동반자들과 함께 꾸미고 있다. "Brand New Day"와 "...All This Time"을 공동으로 프로듀싱했고 키보드와 프로그래밍을 맡은 키퍼(Kipper)를 비롯해 그 이전부터 그의 투어와 앨범 작업에 함께 했던 드러머 마누 카체와 비니 콜라이우타, 영화 "레옹"에 사용되며 더욱 히트했던 'Shape Of My Heart'를 스팅과 공동 작곡했고 그 곡에서 아름다운 기타 연주를 들려줬던 기타리스트 도미니크 밀러 그리고 트럼펫 주자 크리스 보티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스팅과 완벽한 호흡을 연출해내며 귀에 익은 사운드를 주조해내고 있는데 그런 한편 젊은 게스트 뮤지션들의 참여는 이번 앨범에 또 다른 색깔을 입혀내는데 기여하고 있다. 'Send Your Love'에서 아름다운 플라멩코 기타 연주를 들려주고 있는 비센테 아미고는 서른 여섯살의 플라멩코 기타 연주자 겸 보컬리스트로 이미 여러 장의 솔로 앨범을 낸 경력이 있으며 알레한드로 산즈나 미구엘 보스 등 라틴 뮤지션들의 음반에 참여한 바 있다. 또 'Whenever I Say Your Name'에는 정상의 소울 가수로 군림하고 있는 메리 제이 블라이즈가 스팅과 함께 하고 있는데 전체 수록곡 중에서 가장 보컬에 비중이 두어진 곡이기도 하다. 'The Book Of My Life'에는 전설적 시타 연주자 라비 샹카의 딸인 아누시카 샹카가 참여해 이국적인 멜로디를 만들어내고 있다. 올해 스물 두살인 그녀는 이미 십대 때 아버지 라비 샹카를 따라 카네기 홀 무대에 섰던 경력이 있고 열일곱살 때 데뷔 앨범을 냈던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 이밖에도 그 자신의 밴드를 이끌며 주목 받는 재즈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크리스천 맥브라이드가 더블 베이스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전작인 "...All This Time"에서 프랑스어 랩을 집어넣는가 하면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 가수 셰브 마미를 기용해 아랍어 가사로 노래부르게 하는 등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던 스팅은 이번 앨범에서도 그 못지 않은 새로운 시도들을 보여주고 있다. 월드 뮤직에서 소울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이 참여한 점을 감안하면 이는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는데 특히 전작인 "Brand New Day"에서 선보인 바 있는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를 이번에는 더욱 두드러지게 사용하고 있다. 전작에서 'Desert Rose'와 'Brand New Day' 등의 작업을 맡았던 하우스 DJ 빅터 칼데론은 'Send Your Love'에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를 덧입혀놓았다. 비센테 아미고의 플라멩코풍의 기타 연주와 캐스터네츠 연주로 시작되는 이 곡은 월드 뮤직과 재즈, 그리고 일렉트로니카 사운드가 교차하며 독특한 질감의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트랜스 뮤지션 BT(Brian Transeau)가 참여한 'Never Coming Home'은 그 동안 발표된 스팅의 노래 중에서 가장 일렉트로니카의 냄새가 강한 곡으로 후반부에 동반하는 재즈풍의 키보드 연주 또한 인상적이다. 'Send Your Love'는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DJ인 데이브 오드의 리믹스 버전으로 다시 실려 박진감 넘치는 사운드를 담아내고 있다. 이처럼 이번 앨범에는 일렉트로니카 사운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블루스와 록의 색채가 가미된 타이틀 트랙 'Sacred Love'에도 역시 일렉트로니카적 사운드가 살짝 덧칠되어 있다.
이 밖에 'Whenever I Say Your Name'은 메리 제이 블라이즈의 소울풀한 가창력이 돋보이는 곡이며 'Dead Man's Rope'와 'Stolen Car', 그리고 시타 연주가 인상적인 'The Book Of My Life' 같은 곡들은 'Shape Of My Heart'나 'Fragile' 등 예전의 감성적인 '스팅표' 히트곡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멜로디를 지니고 있다('Dead Man's Rope'가 로프 하나에 지탱해 삶과 죽음을 오가는 남자를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이 곡이 가장 멜로디 두드러진 곡 중의 하나라는 것도 역설적이다).
이처럼 다양한 사운드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그의 음악의 근간을 이루었던 재즈 사운드를 완전히 멀리하지는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바로 'Forget About The Future'가 그런 곡이다. 이라크 전에 영향받아 만들어진 록 넘버 'This War'는 강렬하게 터져나오는 일렉트릭 기타 연주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Shape Of My Heart'는 바로 9.11 테러 사건이 벌어진 당일 가졌던 공연에서 불려졌던 레코딩이다. 하지만 당시 라이브 앨범 "All This Time"의 국내 라이선스 버전에는 이 곡이 실려있지 않았기 때문에 국내 팬들로서는 이 레코딩을 처음 듣는 기회가 되고 있다.

그룹 폴리스 시절을 거쳐 솔로로 활동해오는 동안 스팅은 가장 진지한 뮤지션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했고 브라질 삼림 보호 운동이나 국제 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에도 참가하는 등 정치적인 행동주의자로서도 맹활약해왔다. 그런 그에게 이번 앨범은 진지한 뮤지션 스팅의 이미지를 더욱 굳혀주는 작품이고 어쩌면 지금까지 발표된 스팅의 앨범 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문제들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만큼 자신에게는 가장 작업하기 힘든 앨범이기도 했다고 그는 밝히고 있다.
"사실 처음 난 곡을 만들만한 기분이 아니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 9.11 사건 이후의 전쟁에 대한 공포 때문에...하지만 결국 실제로 전쟁이 벌어졌고 그 상황에선 창작을 한다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도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거야. 이게 실제로 무슨 의미가 있지?'하는 등의 생각들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무의식적으로 이번 앨범에 반영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앨범엔 기쁨 그리고 희망과 동시에 혼란스러움과 공포심 또한 들어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앨범은 현실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