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 Moon Illusion (달의 착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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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재즈계를 주도해 온 색소폰 주자 이정식의 화제의 역작!
구상과 전위의 경계를 초월하는 ‘Ethnic-Free Jazz 에스닉 프리재즈’ [Moon Illusion 달의 착시]
* 뮤지션 이정식 – 소프라노 색소폰, 테너 색소폰, 식금, 베이스 클라리넷, 아일리쉬 플릇, 반수리 장재효 – 퍼커션, 보컬 / 최우준 – 기타 / 이발차 – 키보드 |
2003년 발표한 [Wonderful Peace] 이후 무려 4년 만에 발표하는 본 작품은 그가 구상해 왔던 구상과 전위의 경계를 초월하는 ‘Ethnic-Free Jazz 에스닉 프리재즈’의 형식으로 이전 어느 앨범 보다 많은 준비작업과 시행착오를 거쳐 발표한 야심작이다. 그가 이끄는 쿼텟의 형식이지만 소프라노 색소폰, 테너 색소폰, 식금, 베이스 클라리넷, 아일리쉬 플릇, 반수리 등 무려 6가지의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그의 놀라운 연주 능력과 전곡의 작곡와 어레인지를 담당한 뛰어난 창작능력, 그리고 특히 국내에서는 좀처럼 시도하지 못했던 토속적인 에스닉 재즈와 프리재즈가 조화된 독창적인 음악세계가 완벽하게 조화된 본 앨범은 그의 생애 최고의 역작으로 선정해도 무방할 듯한 높은 음악적 감흥을 선사한다.
[Moon Illusion]은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뚜렷한 주제의식, 연주자로서의 자연에 대한 관심과 관조적 세계관, 명상적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색채감이 공존하는 작품이다. – 남무성(재즈 비평가)
구도를 향한 고행과 요철에 신음하는 듯 본능적이고도 유려한 갈필을 토해내고 있는 그의 연주는 지난 십여 년간 역경의 한국 재즈신을 묵묵히 지탱해온 이정식과 진정 닮아 있다. - 김성문(재즈컬럼니스트)
@ 해설
Moon Illusion
‘달의 착시’는 사물을 바라보는 배경과 방향에 따라 물체의 크기가 달라져 보이는 현상을 두고 생겨난 말이다. 눈을 통해 입수된 외부의 정보가 뇌의 관습적 해석에 의해 결론지어졌을 때, 실제로는 사실과 다를 수 있음을 입증하는 예로 ‘달의 착시’가 종종 거론된다. 즉, 반복적 경험에 의해 축적된 상식이 반드시 진실은 아니라는 얘기다.
앨범 ‘Moon Illusion(달의 착시)’은 재즈를 연주하는 자와 듣는 자 간에 거리를 형성해왔던 ‘즉흥연주’와 그로 인해 생겨난 다양한 해석의 스펙트럼을 통한 ‘착시’를 모티브로 삼고 있다. 즉흥연주는 연주자에게 우연적 효과를, 청자에게는 나름의 해석을 기대하고 생겨난다. 악보를 이탈한 연주의 자유로움은 재즈의 핵심이지만 청자에게는 온전한 이해를 위해 그것을 쫓아야 하는 불편함이 생긴다. 여기서 재즈의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그것은 ‘즉흥연주’의 목적이 궁극적으로는 양자간의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에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 아이러니는 완전한 화성의 자유를 내세웠던 프리재즈에서 더욱 심각하다. 프리재즈가 청자의 이해를 목적으로 삼아 연주된다고 보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음악이란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만든 자의 것이 아니라는 견해에 비추어 본다면 이것은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듣는 자들의 자유로운 해석으로부터 상당한 괴리를 감수해온 프리재즈는 ‘왜 이해되지 못하는가’에 대한 문제에서 아예 저만치 벗어난 지 오래다. 또 한가지, 재즈 자체를 봉쇄하고 있는 옛 형식의 담을 넘어서는 것이 프리재즈 즉, 재즈라고 한다면 과연 ‘백지상태에서 벌어지는 모든 즉흥연주와 전위를 재즈에 귀속시킬 수 있다’는 의미인가는 한번쯤 곰곰이 생각해볼 문제다. 외국의 경우 전위음악을 굳이 재즈의 담론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평론가는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은 쓸데없는 음악 가두기와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현대재즈는 전위가 전위를 낳고 그 전위의 파생 속도 또한 ‘질주’에 가깝다. 이런 현상을 재즈로만 바라보려는 시각은 재즈라는 ‘믿음’을 전제로 한 일종의 ‘착시’와도 같은 현상이다.
앨범 [Moon Illusion]은 ‘프리재즈’의 전형과도 같은 완전 즉흥과 집단즉흥연주(Collective Improvisation)의 방식을 사용했으면서도 지금까지 재즈에서 상통되어온 프리(Free)의 고착된 이미지를 벗어나려는 의식을 담고 있다. 이정식은 “프리재즈라 하면 전통적인 터널의 질서를 무시하고 무조건 질러대는 것으로 생각하는 입장을 견제한다”고 말한다. 프리재즈가 재즈로서의 모든 질서를 이탈하고 전위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기 보다는 재즈 화성의 근간에서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는 개념은 무조건 조성의 바깥으로 뛰쳐나갔던 원시적 형태의 그것에 비해서 시대정신에 밀리지 않는 논리와 설득력을 지닌다. 수록된 곡들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달과 태양, 물과 사막 등 ‘대 자연’의 구성요소를 소재로 삼고 그에 따라 각각의 곡에서 사용된 토속적인 리듬과 선율들은 이것이 단순히 추상적인 이미지에 무게를 두기 보다는 ‘구상음악’의 근간에서 ‘에스닉 재즈’라는 비교적 구체적인 언어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이 앨범은 그러한 논리(접근성이 높은 프리재즈)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작곡과 연주, 녹음과정 전반에 걸쳐 철저히 ‘즉흥과 우연성’을 방법으로 삼고 있다. 이정식이 최소한의 테마만을 설정해둔 상태에서 그 자신을 비롯해 각각의 연주자에게 상당한 자유를 줌으로서 완성시킨 것이다. 백지상태의 앙상블에서 어떤 우연의 효과가 만들어지는가를 지켜보는 것은 불안하지만 동시에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다. 마치 알레아토릭(Aleatorik)의 개념처럼 장시간의 솔로와 집단즉흥연주에서 벌어지는 ‘우연’의 효과는 하는자 조차도 예기치 않았던 어떤 조화에 도달했을 때 정점을 이루게 된다. 기타와 퍼커션만을 대동한 소편성이라해도 연주자들이 함께 연주되는 음을 듣지 않으면 연주로서 성립되지 않고, 전체구성을 의식하지 않는 연주는 있을 수도 없다. 이 경우 날카로운 직관보다는 오히려 반복적 경험에서 비롯되는 판단의 ‘착시’가 조화를 이루기도 하고 때로는 그로 인해 부조화를 이루기도 한다. 바로 그 순간은 두 번 다시 재현되기 어려운 것이기에 현장 녹음으로서만 보존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 프리재즈의 녹음에서 흔히 사용되어온 방식이기에 새롭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녹음의 전 과정을 거르지 않고 담아낸 [Moon Illusion]의 결과물을 놓고 보자면 사믓 놀라울 정도이다. 우연과 즉흥으로 빚어낸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만큼 [Moon Illusion]의 음악들은 탄탄한 구조와 스토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즉흥연주가 곧 작곡이라는 개념은 옳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프리재즈에서의 즉흥연주는 곧 작곡이 될 수 있으며 현대 재즈에서 작곡은 이제 ‘구성’이라고 봐야 한다. 아무리 순간적으로 행해진 즉흥연주라 할지라도 뮤지션의 뇌리 속에는 ‘조화’의 문제가 치열하게 꿈틀 되고 있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앨범 속에서 베이스 클라리넷, 아이리쉬 플루트, 식금, 소프라노와 테너 색소폰에 이르는 다양한 악기를 다루는 이정식의 연주는 완벽에 가깝다. 굳이 전통적인 프리재즈의 어법들을 들추어내지 않더라도 이미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놓은 지 오래였기에 소리의 구현이 견고하고, 숙성된 톤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스튜디오에서 거침없이 쏟아내는 그 소리들은 가끔씩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가슴살을 애이며 파고드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특히 타악 연주자 고 김대환 선생에게 바쳐진 곡 ‘Remembering Black Rain(흑우)’에서 토해내는 화려한 테크닉은 진정한 프리의 정신과 치열함으로 무장된 감동의 제례의식이라 할만하다. 이러한 격정에 비해 Languid Sun(나른한 태양)과 같은 곡은 절제된 코드진행과 단순한 사운드를 통해서 미니멀 재즈의 정수를 보여주는 곡이다. 베이스 클라리넷과 신디사이저를 사용한 이 연주는 여러 면에서 존 서먼(John Surman)의 유러피안 포스트 사운드를 연상케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미지일 뿐, 공식은 아니다. 엘레강스한 느낌으로 충만한 이 작품은 이정식의 이미지를 새롭게 각인시키는 소중한 트랙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Moon Illusion]속에는 그 동안 외향적 연주자로만 인식되어온 이정식의 가려진 면면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Moon Illusion]은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뚜렷한 주제의식, 연주자로서의 자연에 대한 관심과 관조적 세계관, 명상적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색채감이 공존하는 작품이다. 작품을 어떻게 만들어가느냐는 결국 아티스트에게 달린 문제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이정식은 자연주의라는 구상 컨셉트를 가지고 화성의 위험한 이탈을 지양한 체 그 속에서 변화를 찾아가는 안정적인 ‘전위(Avant-Gard)’를 택함으로써 나름의 구성과 체계를 확립했다. 이정식은 음악의 에스페란토를 지향하는 음악인이다. 지난해 3월, 프로듀서인 나에게 처음으로 앨범의 컨셉을 이야기하며 가능하다면 시타르나 타블라, 백파이프와 같은 타 지역의 민속악기를 사용해보고 싶다는 말을 건넸을 때, 나는 최종적으로 어떤 그림이 그려질 것인지 연상되면서도 당장의 상황에서 불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무엇을 연주하든, 아티스트의 철학만큼은 그대로 담아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이유는 그가 이정식이기 때문이었다.
앨범 전체의 감상을 마친 지금 이 순간, 책상위로 떨어지는 나른한 조명과 수개월 동안 나를 편치 않게 했던 불면의 배개, 그리고 빼곡히 쌓여 넝쿨처럼 온몸으로 타고 오를 것 같은 담배 재떨이까지, 가멸찬 삶의 의식이 계속 되는 한 결국 모든걸 사랑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건 과연 어떤 착시일까.
남무성(재즈 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