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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ango Reinhardt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 / Best Of Django Reinhardt
 영혼을 울리는 집시의 손길, 왼쪽 손가락 2개를 잃은 장애를 딛고 절대적인 연주를 보여준 Django Reinhardt!! Minor Swing, La mer, Ou Es-Tu Mon Amour?, Topsy 등 전 세계에 발매된 830곡 중 불후의 명연 19곡 수록!

장고 라인하르트(1910-1953)는 집시의 혈통을 이어받은 전설적인 재즈 기타리스트이다. 재즈의 본고장이 아닌 유럽에서 태어났지만, 집시적인 뜨거운 열정과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사후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재즈 뮤지션으로써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장고는 1910년 1월 23일 벨기에의 리베르치즈(프랑스 국경근처)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마누치(Manouche)’라는 집시의 혈통을 이어 받아 아버지는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어머니는 가수 겸 댄서였다. 유럽을 정처 없이 떠도는 집시무리(Gypsy caravan)에서 자란 장고는 12세 때 어머니로부터 밴조를 선물 받아 현악기를 익혔다.
집시 무리를 떠나 파리의 뮤지션과 교류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음악세계는 변화를 겪기 시작한다. 장고가 18살이 되던 해, 첫번째 부인과 결혼해 집시 무리로 돌아온다. 그런데 이것이 불행의 씨앗이 되고 만다. 1928년 어느 날 집시 무리에 화재가 발생해 다리와 왼손에 심한 화상을 입게 된 것이다. 이 사고로 인해 그의 왼손 두 손가락은 마비돼 기타연주를 할 수 없게 되었지만 두 개의 손가락을 잃어버린 장고에게 그의 동생 조셉은 기타를 선물한다. 재활운동 대신 장고는 6개월동안 연습에 혼신을 다 한다. 이후부터 장고는 핑거링시 두 손가락을 질질 끌며 지판을 이동하는 특이한 연주 모션으로 끝까지 기타리스트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1930년, 장고가 20살이 되던 해, 듀크 엘링턴, 조 베누티, 바이더백, 니콜스, 에디 랭, 루이 암스트롱 등의 연주에 깊은 감명을 받게 되면서 재즈 기타리스트의 길로 접어든다. 마침내 1931년에는 재즈 바이올린주자 스테판 그라펠리와 ‘프랑스 핫 클럽 오중주단’을 결성하고 전 유럽을 다니면서 공연을 하기에 이른다. 2차 대전 중 스테판 그라펠리가 프랑스를 떠나 런던으로 피신했지만, 장고는 프랑스에 남아 미국 재즈 뮤지션인 멜 파우엘, 레이 멕킨리 등과 함께 연주한다.
1946년에는 듀크 엘링턴의 초대로 미국순회공연을 하며 자신의 또 다른 기타세계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는 항상 잦은 병고로 고생해야 했다. 그는 그림을 그리거나 낚시를 하러 가곤 했었는데, 1953년 어느날 낚시를 하던 중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다.
장고는 일생동안 집시로 남길 원했다. 그는 호텔 방에서 갑자기 사라져 집시의 야영지로 가 며칠을 묵는가 하면, 기분이 좋으면 돈을 받지 않고 기타를 쳤으며, 몇 주일동안 번 돈을 하룻밤의 도박으로 날려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장고의 기타엔 집시적인 슬픔과 낭만이 있다. 'Ou Es tu Mon Amour?'(내사랑은 어디에?) ‘La Mer(바다) 등에서 보이는 우수에 찬 리리시즘은 장고만의 매력으로 남아있다.
그는 종종 박자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프레이징을 선보였으며, 멜로디컬한 옥타브 주법을 덧붙여 수려한 멜로디 라인을 만들어냈다. 뿐만 아니라 ‘터미널 비브라토’ 라고 일컬어지는 고유의 핑거 테크닉을 완성하였고, 'Minor Swing' 같은 격렬한 스윙 명작들은 후대의 많은 재즈 뮤지션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장고는 두 손가락을 쓰지 못했다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니고 있지만, 음악적으로는 그 수식어를 철저하게 무너뜨리는 연주를 보여주었다.
한 평론가의 말처럼 “장고의 음악은 유럽이고, 프랑스이지만 재즈이다” 그의 음악을 형성했던 모태가 즉흥연주에 관대한 집시 음악이고 보면, 바람처럼 살다가 이슬처럼 지는 집시로서의 자유로운 삶을 살다간 그에게 재즈는 어쩌면 숙명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