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 반갑습니다.

리스뮤직

카테고리 검색

상품검색

수량
총 상품금액 17,900

상품상세설명

Edith Piaf - Edith Piaf 100 Chansons (에디뜨 피아프 100 샹송)

프랑스의 전설적인 샹송 가수 에디뜨 피아프의 모든 것!!
에디뜨 피아프의 값을 매길 수 없는 레코딩 유산 100곡을 한번에 만나는 감동적인 경험!

<장미빛 인생(영어 버전)>, <장미빛 인생(영어 버전)>, <사랑의 찬가>, <빠담 빠담>,<파리의 하늘 아래> 등 에디뜨 피아프의 샹송 100곡을 모두 이 앨범에!

 

에디트 피아프, 노래하는 작은 새 혹은 격정과 사랑의 화신! Edith Piaf의 인생 오십 년!!

1947년 워싱턴홀에서 미국 데뷔 공연을 갖게 된 샹송의 신데렐라 에디뜨 피아프를 벅찬 가슴으로 일찌감치 와서 기다리던 청중들은 공연을 시작하려 무대 위에 뒤뚱거리며 올라서는 깡마르고 작은 여자의 모습을 보며 맥이 빠집니다. 저렇게 볼품없고 조그만 여자가 에디트 피아프라니. 하지만 노래가 시작되면서 실망은 놀라움으로 변해갑니다. 140센티미터대의 단구에서 터져 나오는 격정의 샹송에 청중들은 숨을 죽이며 조용한 전율에 푹 빠지게 됩니다. 공연이 끝난 뒤 사람들은 그 목소리를 가리켜 ‘영혼의 외침’이라고 일컬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프랑스를 넘어 세계인들이 기억하는 에디트 피아프라는 이름은 곧 샹송을 의미하는 것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테지요. 

떠돌이 거리의 소녀에서 세기의 목소리로
에디트 피아프(본명: Edith Giovanna Gassion)는 1915년 12월 19일 파리의 베르빌에서 서커스 단원이던 아버지와 무명 주점 가수였던 이탈리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양육의 능력이 없는 부모로부터 일찌감치 버려진 그녀는 세 살부터 결막염을 앓아 잠시 시력을 잃기도 하고 탈모증을 앓는 등 불행한 성장기를 보내다 14살에 서커스단에 있는 아버지를 다시 만나 길거리 가수로 나섭니다. 그마저도 이내 도망쳐서 홀로 거리에서 동냥으로 연명하다 16살에 배달부 청년과 사랑에 빠져 딸을 낳지만 이내 뇌막염으로 죽었습니다. 태생부터 굴곡으로 점철되어 삶의 부조리함만을 깨달아야 했던 유년시절부터 그녀의 유일한 위안은 노래였는데 그녀의 삶에 서서히 빛이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20살이던 1935년. ‘Gemy'라는 술집을 운영하던 루이 르플레Louis Leplee가 우연히 거리에서 노래하던 그녀의 재능을 발견하여 자신의 가게에 데려와 무대에서 노래실력을 발휘하게 합니다. 이때부터 그녀는 ’La Mome Piaf(작은 참새)‘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당대의 작곡가들인 레이몽 아소Ramond Asso나 모리스 슈발리에Maurice Chevalier 등을 만나 노래를 다듬고 예술가의 삶을 닦기 시작합니다. 1937년 ‘Mon Legionnaire'로 첫 녹음을 할 때 가사를 써준 이도 레이몽 아소였습니다. 상처로 얼룩져 거칠어진 마음을 노래로 치유하며 당대의 예술가들을 만나면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국민가수로까지 성장하게 되는 인생역전이 시작되는 이 시기를 거쳐 2차 세계대전(1939~1945) 즈음 집중적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피아프에 대한 소문이 프랑스를 넘어 주변 국가들, 그리고 미국까지 뻗어나가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미국과 유럽 사이에서 낭랑한 목소리와 작은 체구로 전후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주며 최고의 가수로 사랑 받는 동안 에디트 피아프 주변에는 수많은 당대의 인물들이 연인으로 혹은 친구로 다가와 그 이름에 걸맞는 로맨스를 만들었습니다.

‘사랑의 찬가Hymne A L'amour’
이브 몽땅, 장 콕토, 조르주 무스타키, 샤를 아즈나부르, 자끄 필스...... 에디트 피아프의 삶을 말하는 데 늘 빠지지 않는 연인이거나 친구인 ‘그녀의 남자들’은 대부분 그 시대의 모드를 이끄는 음악가 아니면 시인들이었겠지요. 피아프 최고의 히트곡 '장미빛 인생La Vie En Rose‘(1947) 역시 이브 몽땅과 달콤한 시간을 보낼 즈음의 기쁨으로 충만한 감정을 담아 피아프가 직접 작사한 곡이지요. 그렇게 시를 쓰고 음악을 만들던 남자들과 로맨스를 이으며 흐르고 정박하기를 반복했던 피아프는 어쩔 수 없는 음악과 사랑의 노마드였을까요. 하지만 불과 오십 년의 길지 않은 피아프의 생애를 통틀어 가장 절실했던 사랑의 주인공은 사교계의 선수들이 아닌 투박한 권투선수 마르셀 세르당Marcel Cerdan이었습니다. 미들급 세계챔피언으로 유럽에서 명성을 높이던 마르셀 세르당과 에디트 피아프는 1947년 미국 공연 때 만나 사랑에 빠졌지요. 그러나 둘 다 가수와 권투선수로 바쁜 삶을 살아야 했기에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고, 연인이 된지 2년이 지난 1949년 10월, 뉴욕에서 공연중이던 피아프는 멀리 떨어져 있는 세르당에게 빨리 와줄 것을 간청합니다. 연인의 부름을 받은  마르셀 세르당은 지체하지 않고 비행기를 타고 연인이 있는 뉴욕으로 향하다 대서양 중부 아조레스 제도의 로돈타 산봉우리에 추락하고 맙니다. 생에 가장 큰 의미였던 사랑을 한순간 잃어버린 피아프의 충격과 상실감은 예정된 공연을 모두 연기시키고 슬픔에 잠긴 채 두문불출하게 만들죠. 오열하던 피아프는 그러나 결국 자신을 찾아오다 죽은 연인을 위해 노래하기로 마음 먹게 됩니다. 그를 향한 못다한 사랑과 슬픔을 담은 노래 ‘사랑의 찬가Hymne A L'amour’는 그렇게 마르셀 세르당이 죽은 이듬해 피아프 자신이 쓴 가사에 여류 작곡가 마그리트 모노가 곡을 붙여 발표되어 세기의 로망으로 기억됩니다.

하늘이 무너져 버려도, 땅이 꺼져버린다 해도 / 그대만 나를 사랑한다면 아무래도 괜찮아요/ 당신이 원하신다면 조국도, 친구도 버리겠어요 / 사람들이 비웃는다 해도 당신이 원하신다면 난 무엇이든 해내겠어요...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
전세계 나라의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사랑의 찬가’의 드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피아프의 상실감은 줄지 않아 결국 술과 마약을 도피처로 삼는 데까지 이르러 50년대 이후 피아프의 건강은 급속도로 나빠졌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가수이자 작곡가인 자끄 필스Jacques Pills와 결혼하며(1952) 노래에 대한 열망을 불태웠습니다. ‘내 안에 있는 너Je T'ai Dans La Peau',  '하룻밤의 연인Les Amants D'un Jour'과  '오토바이를 탄 남자L'Homme A La Moto'를 녹음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의 장기 투어를 가지면서 워싱턴, 뉴욕의 카네기홀 등에서도 공연을 강행하고, 이에 만족치 않고 <내일의 연인들Les Amants De Demain>(1956), <파리의 노래Paris Chante Toujours>, <아름다운 백합La Petit Lili> 등의 영화에도 출연하게 됩니다. 피아프의 건강이 악화되가면 갈수록 음악, 그리고 그 노래에 열광해주는 청중들과 만나지 않고서는 하루도 버틸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959년 작곡가 조르주 무스타키Georges Moustaki가 만들어준 ‘마차의 신사Milord'가 영국, 이탈리아, 독일, 네덜란드 등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어 투어는 더 늘어납니다. 또 이듬해에는 친구이자 작곡가였던 샤를 드몽Charles Dumont의 곡 ’난 후회하지 않아요Non, Je Ne Regrette Rien'으로 큰 성공을 거두며 샹송의 거목으로서의 명성을 확인했습니다. 이 곡은 영화 <파니 핑크>에 삽입되어 30여 년 뒤에도 다시 사랑받았습니다.
   고단한 삶을 정리하고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인 1962년. 그 화려한 사랑의 편력과 아픔에 마지막 동반자였던 이는 스무 살 연하의 그리스 청년 테오 사라포Theo Sarapo였습니다. 그와 결혼한 후 발표한 곡 ‘사랑이 무슨 소용인가A Quoi Ca Sert L'Amour'은 마지막 활력의 동반자에게 주는 선물이기도 하면서도 지친 마음과 망가질 대로 망가진 육체에 남은 회한과 상념의 토로일 것입니다.

자기혐오 그리고 사랑에 대한 찬미
“나는 그레타 가르보가 아니야. 그걸 알아. 너희들이 그걸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알아.” 자신의 몸, 아름다움을 찾기에는 너무 보잘것없는 몸을 혐오에 가까울 정도로 좋아하지 않았던 피아프는 늘 그렇게 친구들과 연인들에게 소리지르곤 했습니다. 늘 짧았던 연애가 반복되곤 했던 것도 자신에 대한 열등감으로 꽉차서 스스로를 상처내는 데 익숙한 여인으로서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너무 작아서 누구도 내게 매혹되지 않지!’ 너무 작고 너무 추한 안짱다리를 가졌다며 자학하던 피아프의 그 자기혐오와 강박증은 그래서 그 곁에서 누구도 지긋하게 오래 머물지 못하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아, 불쌍한 사람. 하지만, 그녀의 그런 유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너무 당찬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은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만큼 당당하고 풍부한 가창력, 그리고 연약한 육체 안에 감춘 삶의 애착인 것이지요. 노래하는 작은 새, 에디트 피아프의 삶에서 우린 흔히 상처와 불행을 떠올리곤 하지만, 그 켜켜이 쌓인 그늘이 없었다면 사랑에 관해, 삶에 관해 세상을 향해 외치고 보듬는 그 절창들은 탄생하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말년에 교통사고로 갈비뼈들이 부러진 채로 진통제를 투여하면서도 무대 위에서 ‘죽음의 둘레에서Tour De Suici’를 노래하던 모습을 떠올려보면, 또 무대에서 쓰러졌을 때도 사람들의 손길을 뿌리치고 피아노 다리를 붙잡고 노래를 끝내던 모습을 떠올려보면 그 노래에 귀 기울이는 청중의 마음을 전율시키며 감동으로 사로잡는 순간에 모든 걸 바치는 그녀의 특별함을 알 수 있지요. 검은 옷을 입은 연약한 몸집, 파리한 얼굴. 하지만 진심을 다해 삶의 고통과 애착과 사랑을 담아 노래하던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들 모두를 집대성한 이 앨범의 가치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사랑이 대관절 당신에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피아프가 삶을 마감하기 직전 했던 대답은 이렇습니다..

 “사랑은 경이롭고 신비하고 비극적인 것. 사랑은 노래하게 만드는 힘. 내게 노래 없는 사랑은 존재할 수 없고, 사랑 없는 노래 역시 존재하지 않아요.”

[강민석/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