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 - The Songs For The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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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이 자신의 통산 25번째 앨범이자 솔로앨범인 ‘The Songs For The One“을 발표했다. 국내 락 음악의 상징이다시피 한 그가 의외의 재즈앨범을 발표했다는 점, 또 컴퓨터에 의한 편집과 짜깁기가 창작의 주요방법이 되다시피 한 현 가요계에서, 초 호화진용의 28인조 빅밴드와 보컬을 한 번에 동시 녹음하는 초 강수를 사용했다는 점, 또 싱어송 라이터의 대명사인 신해철 이 보컬리스트로 정면승부에 도전했다는 점 등이 이미 발매 이전에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One Shot, One Kill
이 앨범은 모든 반주와 보컬이 동시에 녹음되는 초 강수를 실현시키기 위해 6개월간의 철저한 사전준비 끝에 피터 케이시가 지휘하는 초 호화진용의 28인조 빅밴드 멤버와 함께 시드니에서 녹음되어, 정작 레코딩 기간은 녹음 시작부터 믹스에 이르기까지 단 6일 만에 종료되었다.
국내 아티스트가 빅밴드에 의한 재즈앨범을 발표한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컴퓨터에 의한 편집과 짜깁기가 얼치기 가수를 양산하는 가요계의 풍토에 대한 신랄한 항변이자, 시장의 축소로 음반제작비 투자가 점점 위축되고 있는 흐름에 대한 정반대의 카운터 펀치이기도 하다.
싱어로서의 신해철
신해철은 보컬리스트로서의 집중력을 위해 그의 경력 최초로 앨범의 셀프 프로듀스를 포기하고 프로듀서 박권일-코디네이터 컬린 박-컨덕터 피터 케이시-마스터링 브라이언 가드너로 이어지는 완벽한 스태핑을 구성하였다. 앨범에는 유일한 신곡인 Thank you and I love you를 제외하고는 그야말로 주옥같은 국내외의 명곡들을 수록하였다.
사실 재즈 보컬리스트의 이미지는 주로 여성 거장들에게 집중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남성 재즈 보컬리스트는 토니 베넷에서 맷 더스크에 이르기까지 평탄하고 건조한 창법이 주를 이루며 그 발전은 오랫동안 정체되어 왔다. 싱어로서 신해철은 이 앨범에서 통상적인 남성 재즈 보컬리스트의 창법을 넘어 반가성, 가성, 진성을 오가며 미끄러지듯 놀라운 기교를 보여준다. 오랜 경력 가운데에서 화려한 카리스마와 프로듀서 능력에 상대적으로 가리워졌던 신해철의 보컬 능력은 이 앨범에서 그의 주 종목이 락이라는 것을 잊게 할 정도로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으며, 정식 발매 이전의 뮤지션, 비평가들을 위한 시청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심각하게 전업 재즈 보컬리스트로의 전환을 권유할 정도로 놀라움을 던져주었다.
주옥같은 명곡의 향연
이 앨범은 고도의 음악성을 자랑하거나 난해하기까지한 이미지로서의 재즈는 아니지만 그야말로 주옥같은 스탠다드의 명곡들과 수준 높은 재즈 버전 리메이크의 국내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폭발적인 브라스의 섹션들이 앨범의 문을 열면, 곧바로 국내 팬들에게도 익숙한 L-O-V-E, My way를 비롯하여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Moon river에 이르기까지 편안한, 그러나 국내 앨범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완성도의 곡들이 줄지어 늘어서며, 지극히 세련된 분위기로 재편곡된 장미, 하숙생, 심지어는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에 이르기까지 마치 잘 녹음된 라이브 앨범을 듣는 듯한 생동감 넘치는 사운드가 이어진다.
최근 한국 대중음악의 절정기로 재평가 되고 있는 90년대에 최고의 수훈자이자 동시에 최대의 수혜자이기도 했던 신해철. 컴퓨터를 무기로 국내시장의 불모지역인 각 장르를 섭렵하기도 했고, 정통 락 밴드인 넥스트를 통해 전설의 영역에 도달하는가 하면, 유학시절엔 일렉트로니카와 아방가르드를 넘나드는 공격적인 도전정신은 언제나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의 앨범 중 가장 편안하게 어깨에 힘을 빼고 감상할 수 있는 본 앨범이야말로 그의 끝없는 도전정신의 결과물인 공격적인 ‘역습’이라 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