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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eg Pogudin (올렉 뽀구진) - Bella Ci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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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영혼 올렉 뽀구진의 잊지 못할 모스크바 콘서트 [올렉 뽀구진 - Bella Ciao]
깨끗하고 이지적이고 고독해 보이는 외모, 애잔한 은빛 미성으로 여성팬들의 애간장을 녹여온 러시아 최고의 가수 올렉 뽀구진이 2004년 7월 20일 모스크바 <메리지안> 콘서트 센터에서 공연했던 내용을 담은 음반이다. ‘빛나라, 빛나라, 나의 별이여’, ‘가지 마오, 조금만 더 있어줘요’ 등 머리끝이 서고 가슴이 뭉클해지는 러시아 노래들 외에, 이탈리아 민중가요 ‘벨라 차오(아름다운 안녕)’, 유명한 샹송 ‘파리의 하늘 아래’, ‘아니에요, 나는 후회하지 않아요’ 같은 타국의 명곡들도 멋지게 불러준다. 흐르는 시간은 감동의 물결이다!
올렉 뽀구진 콘서트 선집 [ I ] 러시아의 영혼, 은빛 목소리
`유명하다’는 말은 어떤 사건이나 존재가 우리의 눈과 귀에 자주 등장하여 익숙하게 느낀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무엇이든 누구든 대중매체를 통해 자주 등장하면 유명해지는 것이다. 러시아 가수 올렉 뽀구진. 2003년 ‘러시아의 비가’란 제목의 음반이 국내에 소개되기 전까지, 그의 이름은 우리 대중에겐 무척 낯선 것이었다. 그에 관한 얘기가 대중매체에서 회자되지 않았고 국내에서 그의 음반을 소개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뽀구진은 아울로스 미디어(당시 아울로스 뮤직)에서 음반을 처음 내놓은 때, 막 유명해진 가수가 아니었다. 그 시점에 그는 이미 10여 년간 활동을 했고, 10여장의 음반을 내놓았던 유명 가수였다. 우리에게만 잘 알려져 있지 않았을 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음반 재킷을 훑어보며 ‘이 가수는 누구지? ’하며 생경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우리 애호가들도 뽀꾸진을 아주 짧은 시간동안만 무명가수로 봐야했다. 정말 ‘잠시’뿐이었다. 실제로 뽀구진의 음반을 들었던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매혹되었고, 그의 이름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가수처럼 매우 가깝게 느끼기 시작했다. 그의 노래가 독특한 흡인력이 있음을 암시하는 말이다.
올렉 뽀구진은 1968년 12월 22일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났다. 11살이 되던 해인 1979년에 레닌그라드 어린이 방송 합창단에 들어가 1982년까지 합창단원으로 활동했는데, 뽀구진은 이미 그 시절부터 음성이 그렇게 청명했고, 다른 아이들과는 많이 차별되는 성악기교를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1985년부터 1990년까지 레닌그라드 국립 극장, 영화 음악원에 다닌 후 1990년부터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극장에서 배우로 활동했다. 그의 첫 음반 ‘사랑의 별’은 배우생활을 하던 이 즈음에 발매된 것이었는데, 음반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뽀구진은 본격적으로 가수의 길에 들어섰다. 당시 그의 노래를 처음 들었던 저명한 작곡가 가브릴린(Gavrilin)은 그에게서 놀라운 재능을 발견하고는 행복의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의 노래를 처음 듣고 단번에 매혹되었던 우리 애호가들의 행복감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1993년부터 뽀구진의 활동은 러시아 대륙을 넘어 해외로까지 힘차게 전개되었고, 콘서트를 열면 모든 티켓이 일찌감치 매진되는 일이 잦았다. 독특한 미성에 진중한 표정, 거기다가 배우 출신의 출중한 외모까지 겸비한 가수 올렉 뽀구진을 모셔가려는 방송사들의 경쟁은 날로 치열해졌고, 결국 그는 수차례에 걸쳐 방송출연까지 했었다.
뽀구진의 음성은 흔히 ‘은빛 목소리’로 불린다. 그의 음성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묘한 분위기를 내는 은빛과 같다. 애잔한 슬라브 정서를 가득 싣고 있고 노래하는 그의 음성은 슬픈 노래들과는 특히 잘 융화되지만, 결코 처연한 신파나 값싼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는다. 말쑥한 그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처럼 그의 음성은 항상 이지적인 높이를 견지하고 있다. 그리고 매우 안정된 음성으로 목소리를 교묘하게 변화시키는 테크닉도 대단히 뛰어나다. 하지만 그의 테크닉은 가사에 담긴 내용의 다양한 감정표현과 오묘한 색깔을 내는데 적절히 사용될 뿐, 멋지게 보이려고 재주를 부리거나 꾸미는 일은 거의 없다.
그는 분명 테너 음역에 속하는 음성을 가지고 있지만, 오히려 그의 음성의 중요한 매력은 중역과 저역에 있다고 본다. 특히 영혼을 뒤흔들 듯 떨리는 중 저역의 바이브레이션이 우리의 가슴에 커다란 높이의 밀물처럼 육박할 때 그 호소력은 대단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대목이지만, 그의 음성에서 끊임없이 발견하게 되는 것은 진실과 경건이다. 러시아 로망스는 치열하게 살아온 러시아 민중의 노래이며 위대한 시인들의 영혼을 풀어 쓴 음악이다. 뽀구진의 음성이 지닌 진실함과 경건성이 러시아 노래에서 주효하는 이유가 되는 대목이다. 위대한 시인의 얘기, 가령 온통 삶 전체를 고뇌하며 살았던 푸슈킨이나 레르몬또프의 시를 읊으면서 진실함과 경건성이 피상적으로 표현된다면 시의 본질적인 의미는 모두 퇴색하고 말 것이다.
이번 음반은 2005년에 발매된 것으로 러시아어의 앨범제목은, 영어로 바꾼다면, “ The Concert: Selected I ”, 암시하는 내용 그대로 콘서트 실황, 즉 2004년 7월 20일 모스크바 ‘메리지안’ 콘서트 센터에서 있었던 공연 내용이다. 레퍼토리는 러시아 노래들이 대부분, 그 외 영화음악, 이탈리아 노래, 샹송 등 다양한 음악들을 가미해 모두 22개 트랙에 담았다. 당연히 러시아 노래를 아주 통달한 듯 유창하게 불러낸다. 실제로 뽀구진의 레퍼토리 폭은 상당히 넓어서 러시아 로망스를 포함하여 그가 부를 수 있는 노래는 5백곡이 넘는다고 한다. 뽀구진의 노래를 반주하고 있는 악기들 가운데는 바이올린, 기타, 아코디언의 역할이 두드러져 있다. 그가 부르는 러시아 노래는 우리가 익히 경험해왔던 대로 언제 어디서 들어도 그 자리를 숙연한 분위기로 만들 만한 것이다. 모두 주옥같은 단편들이지만 영혼에 호소하는 은빛 음성을 가장 잘 감동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곡 하나만 고르라면 9번 트랙의 ‘가지 마오, 조금만 더 있어줘요’를 집어낼 것 같다.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는 사람의 심정을 가득 담아 노래하는 뽀구진의 노래를 들으며 가슴 뭉클하고 머리끝이 서는 경험을 하게 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후반부에서 그가 들려주는 몇 가지 특선은 그야말로 별미다. 영화 <대부>에 나오는 사랑의 테마를 ‘부드러운 사랑으로 말해주세요(Speak softly love)’란 영어가사로 노래하고 있는데, 물론 앤디 윌리엄스가 불러 빅 히트 했던 것이다. 이탈리아의 민중가요 ‘벨라 차오(Bella ciao)’는 속삭이듯 시작하더니 정열적인 투쟁가처럼 격렬하게 마무리하는데 그의 음성으로 듣는 이곡도 참 좋다. 주지하듯이 이 유명한 노래는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와 독일의 파시즘에 저항해 투쟁하던 파르티잔(빨치산)의 노래인데, ‘벨라 차오’의 뜻은 ‘아름다운 안녕’, 그러니까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운명에 직면한 한 파르티잔 청년이 사랑하는 애인을 놓고 떠나며 부르는 이별노래다. 이탈리아의 역사속에서 만들어진 비감 어린 슬픈 사연의 노래를 뽀구진이 깊이 감정이입 해서 부른다. 그는 유명한 샹송 ‘파리의 하늘 아래(Sous le ciel de Paris)’와 ‘아니에요, 나는 후회하지 않아요(Non, je ne regrette rein)’까지도 멋지게 불러준다.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로 유명한 이런 샹송까지 기막히게 부르는 그를 대하고 있으니, 그가 샹송 가수를 했어도 크게 성공했을 것이라는 상상까지 하게 된다. 콘서트가 완전히 무르익은 분위기에서 그가 불러주는 곡은 ‘진진진’과 더불어, 적어도 우리 애호가들에게는, 그의 대표곡처럼 여겨지는 ‘가리, 가리, 마야 즈비즈다(‘빛나라, 빛나라, 나의 별이여’)’다. 이곡을 부른 후 뽀구진은 길게 이어지는 열광적인 환호와 박수사례 때문에 마지막 노래(R Bac moono)를 쉽게 잇지 못한다. 노래가 모두 끝나면 다시 브라보와 박수가 길게 이어진다. 그의 감동적인 가창에 푹 빠진 사람들의 가슴에 들뜬 환호가 아니라 고요한 여운이 들어선다. 감동 받은 주위의 모든 것은 고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