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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car Peterson - The Perfect Peterson
노만 그란츠와 전성기를 보낸 '파블로' 레이블과 1990년대 이후 전설적인 명연을 쏟아낸 '텔락' 레이블 중 Best of Best Recording을 엄선한 오스카 피터슨 그 위대한 역사의 기록

전무후무한 즉흥연주를 선보인 피아니스트 아트 테이텀이 세상을 떠난 1956년, 테너 색소포니스트 소니 롤린스는 라는 타이틀의 걸작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지난 반세기동안 오스카 피터슨(1925년 캐나다 몬트리올 태생)은 의심의 여지없이 그랜드 피아노의 거상으로 군림했다

그와 동시대를 호흡했던 두 음악인, 버드 파월(1924-1966)과 빌 에반스(1929-1980)가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오스카 피터슨은 아트 테이텀 사후에 등장한 그 어떤 연주자들보다 돋보이는 생기발랄함과 빠르기, 양손의 힘, 명료한 음색, 정확성, 그리고 놀라운 기술로 피아노를 다루었다. 다른 악기 부문을 생각해도 이는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오스카 피터슨이 이끈 밴드가 그루브를 드러낼 때 이는 마치 불도저가 깊게 파낸 흔적처럼 강렬했다. 물론 버드 파월이나 빌 에반스의 스타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중요하게 얘기되지만 (파월의 오른손이 보여준 날카로운 선율과 에반스의 왼손이 제시한 몽환적인 코드 조합을 생각해 보라) 오스카 피터슨에 비하면 이들의 연주는 한결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다. 아트 테이텀이 그랬던 것처럼, 선율을 연주하기 시작할 때 그의 접근은 매우 독창적이었다. 이 두 사람처럼 피아노를 가장 피아노답게 연주한 이가 또 있었겠는가. 재즈와 관련된 백과사전의 자료를 잠시 더듬어 보자. “Sundry Guides to Jazz Recordings”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들이 등장한다. “재즈의 국제적 관습을 정립한 인물.” “동시대 최고의 테크닉을 지녔던 음악인.” “건반을 수놓는 불꽃.” “탁월한 반주자.” 그리고 “모던 재즈의 리스트(Liszt).”

하지만 오스카 피터슨은 비평가들의 기호에 언제나 부합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때로 그의 연주는 무언가 겉으로 드러내기 위한 허식과 지루함, 그리고 감정적으로 메말라 있다는 신랄한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오스카 피터슨은 작가인 존 업다이크를 연상시킨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놀랍도록 많은 양의 작품을 만들어냈으며 (오스카 피터슨의 경력은 이제 70년을 헤아리며, 지난 20세기 동안 두말 할 것 없이 가장 많은 녹음을 남겼다.) 또한 탁월한 재능을 지닌 예술인들이다. (이 앨범을 통해 바로 그 점을 들을 수 있겠다.) 그리고 눈부신 스타일리스트인 둘 모두 잘 그려진 묘사나 옥타브를 넘나들며 번뜩이는 연주를 통해 관객들을 매혹시키는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옳든 그르든 이들이 강한 과시욕을 지녔다는 점도 전혀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존 스웬슨이 “The Rolling Stone Jazz & Blues Album Guide”의 짤막한 에세이에서 언급한 지적이 보다 정확해 보인다. “오스카 피터슨이 더 빠른 스피드와 한결 복합적인 화성의 연주를 선보이려는 것은 하나의 축복이자 동시에 저주이다. 그럼에도 그의 연주가 너무 뛰어나다는 식으로 비판하려는 것은 본질적으로 매우 심각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의 업적은 그 자신을 재즈사의 중추적인 인물로 자리하게 했다.”

스물 두 곡의 사려 깊은 선곡으로 이루어진 은 1953년에서 2002년 사이에 녹음된 음악을 2시간 반에 걸쳐 담고 있다. 첫 번째 CD는 재즈계의 흥행사이자 레코드사 소유주, 그리고 LP 프로듀서였던 고(2) 노먼 그랜츠의 파블로 레이블에서 녹음된 곡들로 구성됐다. 그는 오랫동안 오스카 피터슨의 매니저이자 첫 손가락에 꼽히는 지지자였다. 1990년대부터 2002년까지의 녹음으로 이루어진 두 번째 CD는 이전보다 한층 그 수가 적었던 텔락 재즈 레이블의 곡들이다. 하나의 피아노 독주와 2개의 듀오, 4개의 트리오(그가 오래도록 가장 선호했던 편성), 9개의 쿼텟, 3개의 퀸텟, 2개의 섹스텟 곡들을 만날 수 있으며, 뛰어난 작곡가 겸 편곡가인 미셸 르그랑의 현악 앙상블 편곡과 지휘로 녹음된 오스카 피터슨의 창작곡도 수록됐다. 이 프로그램에 실린 곡들 중 12곡은 잘 알려진 스탠더드 넘버들이며, 또 다른 세 곡(‘Nuages’, ‘In a Mellow Tone’ 그리고 ‘Tin Tin Deo’) 역시 이제는 스탠더드로 받아들일 만하겠다. 오스카 피터슨의 창작곡 6개와, 그가 평생토록 즐겨 연주했던 밀트 잭슨 원작의 밝은 곡 ‘Reunion Blues’도 만날 수 있다. 이 모음집을 통해 정말 다양한 군상을 마주할 수 있지 않겠는가. 오스카 피터슨의 국제적 명성에 걸맞게 이 곡들은 유럽과 아시아, 캐나다 그리고 미국 등 열 곳의 다른 지역에서 녹음됐다. 15곡은 공연 실황이고, 7곡은 스튜디오 녹음. 그리고 ‘How High the Moon’, ‘I'm Getting Sentimental Over You’, ‘(Back Home Again In) Indiana’, ‘Kelly's Blues’ 그리고 ‘Morning in Newfoundland’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가 리더로 발표한 예전의 앨범에서 이미 시도된 바 있는 연주들이다. 오스카 피터슨처럼 많은 곳을, 먼 곳을, 그리고 오랜 기간 동안 여행하며 연주 활동을 벌인 이도 드물 것이다.


DISC ONE - PABLO

Tenderly : 노먼 그랜츠가 파블로 레코드사(미술 수집가이기도 했던 그가 피카소를 기리기 위해 정한 회사명)를 설립하기 20년 전인 1953년,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는 큰 인기를 끌며 세계를 순회했던 노먼 그랜츠의 “재즈 앳 더 필하모닉”의 대표적인 공연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또한 1953년은 기타리스트 허브 엘리스와 베이시스트 레이 브라운과 함께 한 트리오가 처음 결성된 시기로도 특기할 만하다. 이후로 5년 동안 그들은 많은 양의 공연과 녹음 일정을 소화했으며, 드럼이 빠진 트리오 편성의 연주에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 (오스카 피터슨이 이끈 두 번째 트리오에는 허브 엘리스 대신 드러머 에드 틱펜이 참여했고 1959년부터 1965년까지 존속됐다.) 오스카 피터슨은 ‘Tenderly’가 그들의 테마곡 같다고 말했다. 대중들 사이에서 히트한 재즈 레코드로 기록된 이 곡은 1950년 3월 머큐리 레이블에서 녹음된 오스카 피터슨과 레이 브라운의 듀오 연주가 특히 의미 깊었다. 찰리 파커가 디지 길레스피를 일컬어 “내 심장의 또 다른 한쪽”이라 칭한 것을 기억하는가. 오스카 피터슨과 레이 브라운도 바로 같은 식으로 바라볼 수 있을 텐데, 1951년부터 1966년까지, 그러니까 레이 브라운이 할리우드의 스튜디오에서 더 이상 함께 하기를 포기하기까지 이들은 제우스의 쌍둥이 아들인 카스토르와 폴룩스 같은 관계였다. 여지없이 음악의 한복판에 정곡을 찌르며 다가서는 그의 연주는 풍성한 느낌의 워킹 베이스 라인을 바탕으로 오스카 피터슨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준 심장 고동과 같았다. 물론 어떤 연주자라 해도 그런 연주를 기대하겠지만, 당시의 오스카 피터슨은 이미 여느 솔로이스트와는 다른 존재가 아니었던가. 그는 블록 코드―오르간과 피아노를 연주한 밀트 버크너가 제시한 뒤 조지 쉐어링, 아마드 자말, 레드 갈랜드 등에 의해 널리 퍼진, 이른바 “잠긴 손(Locked-Hands)”이라 불리는―를 즐겨 사용하는 연주자는 아니었지만, ‘Tenderly’의 연주가 진행되는 도중 그의 전형적이고 근사한 단선 진행의 선율은 블록 코드의 진행으로 옮겨가기에 이른다. 다른 연주자들의 방법론을 취하면서도 그는 꾸준히 7도 음을 눌러대는 것이다.

How High the Moon : 오스카 피터슨 역시 1940년대 중반에서 후반에 걸친 비밥 시대에 등장한 피아니스트지만, 그는 한 번도 온전한 비밥 연주자로 인식되지 않았다. 그는 스윙에서 출발하여 새로운 음악을 향해 나아간 두 거장, 냇 킹 콜의 투명한 이미지와 아트 테이텀의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한 테크닉을 받아들여 한층 진보된 음악을 선보였다. 또한 오스카 피터슨은 유럽 클래식 음악의 영향도 많이 받았는데, 이는 몬트리올에서 그를 가르친 폴 드마키와 학습한 데 기인했다. 재즈에도 큰 관심을 가졌던 그는 오스카 피터슨에게 모든 종류의 음악을 유심히 듣도록 권유했다. ‘How High the Moon’의 코드 진행은 비밥의 명곡인 ‘Ornithology’에 기초하고 있고, 결국 이 곡은 비밥의 영역에 발을 디딘 오스카 피터슨을 만나게 한다. (찰리 파커와 에롤 가너의 ‘Cool Blues’에서 인용한 부분이 스쳐 지나감을 빼놓지 말자.) 물론 자신감에 가득 찬 오스카 피터슨의 진행은 온전히 그만의 것이고, 가장 눈에 띄는 부분 또한 지칠 줄 모른 채 이어지는 스펙터클하며 리드믹한 연주에 있다. 선율의 진행은 말끔하기 그지없으며, 곡의 템포는 너무 빨라지거나 늘어지지도 않는다. 가장 중요한 사항은 그 템포가 단순히 기계적으로 정확한 게 아니라는 점. 사실 이런 경우는 의외로 자주 찾아볼 수 있는데, 다른 음악인들은 곡의 템포에 있어 마치 자동차 경주를 하는 듯한 인상을 남길 때가 많다. 같은 곡의 솔로를 진행하면서도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경우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오스카 피터슨은 가장 격렬하게 빠른 템포를 소화할 때도 진정한 고수의 면모를 보여준다.

Nuages : 다른 고수들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프랑스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그레펠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오스카 피터슨의 쿼텟에 가세하여 어느 여름 밤, 장고 라인하르크의 가슴 저미는 명곡 ‘Nuages(구름)’를 연주하며 코펜하겐의 관객들을 도취시켰다. 그는 전설적인 장고 라인하르트와 함께 1940년대 프랑스 핫 클럽 퀸텟의 일선에 서서 이 곡을 수도 없이 많이 연주했다. 오스카 피터슨과 자주 협연했던 기타리스트 조 패스가 풍성한 느낌의 코드로 구성된 아르페지오로 곡의 서두를 여는데, 장고 라인하트가 즐겨 썼던 비브라토를 동원하지 않고도 그에 대한 추억을 되살릴 정도이다. 그 다음, 금빛 찬란한 톤으로 권위 있게 등장하는 스테판 그레펠리가 두 번의 서사적인 솔로 중 첫 번째 연주를 펼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른 악기의 지원 없이 홀로 연주하는 오스카 피터슨의 명상적인 루바토가 진행되고,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가 다시 그 뒤에 자리한다. 바로 이 순간은 두 사람이 함께 한 장면 중 단연 최상의 것으로 기록될 법하다. 마치 집시를 떠올리게 하는 스테판 그레펠리의 바이올린 연주는 두 개나 세 개의 현을 함께 울리며 아주 특별한 매혹을 어필한다.

Blues Etude : 1966년 시카고의 한 스튜디오에서 처음 녹음됐던 오스카 피터슨의 창작곡 ‘Blues Etude’. 여기서 듣는 이 연주는 시카고에 위치했던 재즈 클럽 런던 하우스에서 펼쳐졌다. 1960년대 초반, 이곳은 중서부의 기지와도 같은 장소였고, 레이 브라운과 에드 틱펜이 참여해 최상의 음악성을 선보였던 오스카 피터슨의 위대한 두 번째 트리오가 여러 장의 앨범을 녹음한 현장이기도 했다. 이번에 수록된 연주는 기타리스트 조 패스와 덴마크 출신의 특별한 베이시스트 닐스-헤닝 외스테드 페더슨이 함께 했다. 현란할 만큼 뛰어난 형태를 유지하며 초고속으로 진행되는데, 그렇다고 깊은 음악성을 놓치지 않는다. 도입부에서 피아노와 기타가 함께 연주하는 대위법적인 선율도 참 좋지만, 무엇보다 오스카 피터슨이 홀로 펼치는 스트라이드 피아노 연주는 마치 밝은 햇살과 같은 인상을 준다.

Caravan : 재즈 역사상 오래도록 선봉에서 군마( +)의 역할을 했던 ‘Caravan’이 오스카 피터슨과 디지 길레스피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마력으로 무장한 채 멋진 야생마로 태어났다. 다시 한 번 그 템포가 매우 흥미로운데, 소수의 예술인들이나 소화할 수 있을 법한 차원이다. 하지만 솔로는 12마디 블루스 프레이즈로 계속해서 교차되다가 네 박자 패턴으로 일순 정리된다. 오스카 피터슨과 마찬가지로 디지 길레스피는 언제나 템포를 두 배로 빠르게 변환하는 더블 타임에 능한 연주자였다. 그는 이 곡의 솔로에서 특유의 높은 음역을 구사하며 피아니스트가 제공하는 베이스 라인을 바탕으로 눈부신 뮤트 트럼펫 연주를 선보인다. 이 연주가 녹음됐을 당시 디지 길레스피는 57세, 이렇듯 활기찬 힘을 보여주기엔 다소 늦은 나이였다. 그러나 우리가 듣게 된 것처럼 그는 누구라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탁월했고, 음정의 선택 또한 만화 속 주인공인 바트 심슨의 대사처럼 신선

I'm Getting Sentimental Over You : 조 패스와 레이 브라운이 함께 한 트리오가 다시 등장한다. 토미 도시가 즐겨 연주했던 이 곡은 그의 달콤한 트롬본 소리처럼 귀여운 면모의 스윙 필을 담고 있었다. 조 패스의 오르락내리락하는 멜로디와 그의 솔로는 탄력 있는 미디엄 템포로 그럴 듯하게 진행된다. 오스카 피터슨의 반주는 치밀하면서도 차분하고 이상적이다. 그의 순서가 되자 비로소 곡에 열기가 한층 가해지는데, 솔로가 진행될수록 그러한 느낌은 점점 더 심화되고, 원래 이 곡은 자신만의 것이었다는 듯 블루스의 느낌으로 감정을 토해내기에 이른다. 그리고 언제나 그러했듯이 레이 브라운의 연주는 톤과 시간, 그리고 풍미에서 모두 비범하게 다가온다.

Summertime : 오스카 피터슨은 오랫동안 ‘Summertime’을 즐겨 연주해 왔다. (그의 두 번째 트리오가 1935년에 발표된 포크 오페라 의 악보를 초연했던) 1959년부터 1975년에 이르기까지, 그는 적어도 여섯 번에 걸쳐 이 곡의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거쉬인 형제와 뒤보스 헤이워드의 악보를 두 번째로 들춰내면서 아예 다른 시침을 꺼내들기로 마음먹었다. 곡 전반에 걸쳐 피아노가 아닌 클라비코드를 연주하는 것. 약 1800년에 이르러 피아노는 하프시코드를 대체했던 클라비코드를 다시 밀어내고 유럽 콘서트 음악의 중추적인 건반 악기로 자리 잡았다. 물론 클라비코드는 섬세한 소리를 지니고 있었지만, 피아노처럼 풍부한 표현력과 음색, 그리고 다양한 이미지를 투영할 수 있는 힘과 음정을 길게 늘어뜨리는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1976년에 녹음된 이 곡에서 오스카 피터슨은 다시 한 번 조 패스와 함께 했는데, 그는 클래식(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했다. 두 사람의 우아하고 조화로운 선율은 이 ‘Summertime’에게 명확한 가을의 느낌을 안겨주었다.

If I Were a Bell : 프랭크 로서 원작의 를 통해 잘 알려진 ‘If I Were a Bell’은 마일즈 데이비스 퀸텟의 멋들어진 1956년 녹음 이후 모던 재즈 음악인들이 선호하는 곡이 됐다. 여기에서 듣게 되는 연주는 오스카 피터슨이 이끈 1977년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의 젬 세션이다. 그는 이 페스티벌 무대를 참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연주에는 두 명의 트럼페터가 참여했는데, 첫 번째 솔로를 펼친 이가 원기 왕성한 디지 길레스피고, 두 번째가 오스카 피터슨의 오랜 벗이기도 했던 클락 테리다. 그 역시 이 연주에서 힘이 넘친다. 그러나 역시 곡의 핵심은 늠름한 톤으로 임무를 훌륭히 소화한 테너 색소포니스트 에디 “락조” 데이비스의 연주였다.

(Back Home Again In) Indiana : 앞의 곡과 마찬가지로 몽트뢰 페스티벌에서 가진 연주지만 포인트는 오스카 피터슨의 솔로라 할 수 있겠다. 말하자면 저 밑바닥에서부터 듣는 이의 숨을 가로막을 정도로 강하게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가 바로 여기에 담겨 있는데, “피아노로 선보일 수 있는 최고의 솜씨와 요술”이라고나 할까. 물론 이 안에 비현실적인 환상이 깃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트 테이텀과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모습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I'm Confessin' (That I Love You) : 어린 시절 카운트 베이시의 음악 교육에 힘을 보탰던 팻츠 월러가 1929년에 처음 소개한 곡이다. 카운트 베이시와 오스카 피터슨은 오래도록 서로의 음악에 깊은 경의를 표한 사이였다. 솔로이스트로서 두 사람의 스타일은 헤밍웨이와 핀천처럼 달랐지만, 녹음에 임하면서 이들은 충분한 합의에 이른 상태였다. 오스카 피터슨은 보다 느긋한 그루브의 핵심을 연출하기 위해 자신의 적극적인 접근을 축소한 채 카운트 베이시의 방법론을 받아들였다.

Nigerian Marketplace : 자못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12/8박자의 촉촉하고 인상적인 멜로디로 이루어진 ‘Nigerian Marketplace’는 오스카 피터슨의 창작곡 중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아온 곡이다. 1982년 일본 동경에서 펼쳐진 이 공연 실황의 해석은 처음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지 7개월 뒤에 이루어진 것이다. 도입부의 조용한 무드는 영국 출신 드러머 마틴 드류가 가볍게 드러내는 록적인 리듬으로 이어지며, 솔로이스트들은 놀랍도록 서정적이다.

On the Trail : 페르데 그로페의 <그랜드 캐넌 모음곡>(1933)을 통해 알려진 곡이다. 오스카 피터슨의 고전적인 발 구르기가 연상되는 이 곡의 기본 페이스는 매우 상쾌한데, 곡의 마무리에 이를 즈음 한결 많은 시도를 선보이며 마치 그의 손가락이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진 리즈가 집필한 오스카 피터슨의 평전 은 캐나다 출신의 클라리넷 연주자이자 편곡가, 작곡가인 필 니먼스가 이러한 그의 음악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한 내용을 싣고 있다. “오스카 피터슨의 마음은 그의 손가락처럼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바로 그 부분이 우리를 한없이 놀라게 한다.”


DISC TWO - TELARC

Honeysuckle Rose : 1990년 오스카 피터슨은 텔락 레이블과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 첫 작품을 위해 그는 1953년에서 1958년까지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듯 기타리스트 허브 엘리스와 베이시스트 레이 브라운을 불러들였다. 드럼은 1966년부터 1971년까지 함께 했던 바비 더햄에게 맡겼다. 이 트리오는 1972년 12월 이후 함께 녹음 작업에 임한 적이 없었는데, 1990년 3월 뉴욕의 재즈 클럽 블루 노트에서 가진 공연 실황은 넉 장의 다른 앨범으로 텔락 레이블에서 발표됐다. 사실 오스카 피터슨의 첫 번째 트리오는 많은 것들을 훌륭히 해냈다. 세 사람 모두 솔로 연주에 능했고, 편곡이나 서로간의 호흡, 그리고 스윙 또한 더할 나위 없었다. 심지어 냇 킹 콜이나 아트 테이텀, 아마드 자말, 그리고 기타리스트 탈 팔로우 등이 이끌었던 피아노-기타-베이스 편성의 그 어떤 트리오보다 더 훌륭하게 말이다. 챔피언에 오른 피겨 스케이팅 선수처럼 좁은 곳에서도 턴을 감행할 수 있었고, 공중 3회전을 한 뒤에도 음악적인 호흡을 그대로 유지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속출했고, 뜻밖의 상황에서도 완벽한 균형감을 잃지 않은 채 은반 위에 꼿꼿이 서듯 너무나 쉽게 대처했다. 편곡과 그 안에 담긴 방법론은 또한 어떠했던가. 종종 복잡해 보일 때가 많았지만 결코 산만하지는 않았다. 형제 같은 이 밴드의 멤버들과 그들을 보좌한 드러머가 블루 노트의 무대를 장식했을 때, 곡의 도입부 편곡(공연 당시 즉석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과 순간적으로 돌입한 이 연주는 대부분 예상할 만한 차원의 것이었다. 오스카 피터슨은 중간보다 조금 빠른 템포로 ‘Honeysuckle Rose’를 시작하고, 그것은 두 말 할 것 없이 의기양양한 그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사실 멜로디의 장식과 테마의 변주는 오스카 피터슨의 그의 주된 특성 중 하나였다. 8분 음표가 셋잇단음표로 이어지며 (하나-둘-셋, 둘-둘-셋, 셋-둘-셋, 넷-둘-셋, 하는 패턴 속에서 엇박자와 강세가 재치 있게 가해지는) 매우 빠른 속도로 연주하기를 즐겼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놀라운 테크닉이나 여러 업적, 그리고 음악인으로서의 삶 등, 최고의 가치로 얘기될 수 있는 오스카 피터슨의 매력을 얘기하는 자리에서 왠지 탐탁치 않아 보이는 표현이지만, 그래도 “재미”를 빼놓고 그의 음악을 논할 수 있을까.

Kelly's Blues : 오스카 피터슨의 부인인 켈리를 위해 만든 이 블루스는 깜짝 놀랄 만한 곡이다. 그의 또 다른 장점 중 하나인, 위는 복잡하고 아래는 단순한 (비교적 단순한) 양상을 띠고 있다고나 할까. 그리고 허브 엘리스는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재즈에서 많은 기초를 다진 기타리스트 찰리 크리스찬처럼 블루스를 재즈 안에 엮어냈고 스윙을 통해 비밥을 연출해 냈다. 텍사스 파머스빌 출신답게 약간은 앵앵거리는 톤을 구사하기도 했다.

Wheatland : 1964년 (드러머 에드 틱펜이 함께 한) 트리오는 오스카 피터슨이 처음으로 작업한 뛰어난 대작 을 녹음했다. 이 모음곡은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거주하고 있기도 한) 모국의 다채로운 지형을 그린 찬가였는데, 기차로 캐나다를 횡단하는 여정을 묘사한 여덟 개의 곡으로 구성됐다. 메리타임즈에서 출발한 여행은 그 나라의 대도시들을 거쳐 초원을 가로지르고, 캐나다의 록키산맥에 이를 때까지 서부를 향해 진행됐다. 은총으로 가득 한 이 발라드는 초원의 풍경을 그리고 있으며 성가의 느낌으로 시작하여 가슴을 울리는 느린 블루스로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In a Mellow Tone : 1940년에 듀크 엘링턴이 발표한 곡. 당시 그의 오케스트라는 최상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쉽게 감염될 것 같이 매력적인 선율은 오스카 피터슨에게도 잘 어울릴 법했고, 듀크 엘링턴에게 한 수 배웠던 클락 테리가 플루겔혼으로 차분히 미끄러지듯 가세한다. 캐나다 출신의 기타리스트 론 로프스키와 레이 브라운이 선선한 바람 소리를 연상케 하는 음악의 대화를 엮어나간다.

Tin Tin Deo : 이 곡은 디지 길레스피가 함께 한 상황에서 작곡가이자 편곡가인 월터 풀러, 그리고 전설적인 콩가 연주자 차노 포조가 만들었다. 하지만 처음 소개된 것은 디지 길레스피가 녹음하기 3년 전인 1948년, 색소포니스트 제임스 무디(그 역시 디지 길레스피와 함께 활동했다)가 이끈 밴드 모더니스츠에 의해서였다. 여기에 실린 연주는 오스카 피터슨이 두 명의 게스트를 위해 새로 해석한 것인데, 그 두 사람은 녹음 당시 뉴욕 재즈계를 달아오르게 했던 트럼페터 로이 하그로브와 브리튼 출신의 테너 색소포니스트 랠프 무어였다. 랠프 무어는 제이 레노의 “The Tonight Show”에서 음악을 담당한 기타리스트 케빈 유뱅크스의 스튜디오 오케스트라에 꾸준히 참여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친숙한 얼굴이 되기도 했다. 오스카 피터슨이 그리움의 무드로 테마를 제시한 뒤, 로이 하그로브와 랠프 무어는 매우 인상적인 솔로를 선보인다. 연이어지는 피아노 연주에서는 비트의 흐름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난 프레이즈로 매우 효과적인 암시를 건네주는 짧지만 잘 짜여진 패턴이 눈에 띈다.

Nighttime : 세월이 흘러가면서, 그리고 작곡가로서의 자신감이 더해지면서 오스카 피터슨의 창작곡들은 마치 쇼팽의 전주곡이나 브라질 음악을 연상시키는 부드러움과 단순성, 그리고 경제성과 정신적인 면을 강조하는 경향을 띠기에 이르렀다. ‘Nighttime’의 도입부는 마치 저녁의 황혼을 마주한 듯한 느낌을 드러낸다. 닐스-헤닝 외스테드 페더슨과 마틴 드류는 풍부한 공간미의 현대적인 리듬을 낮게 깔아 놓고, 오스카 피터슨의 연주는 도시의 불빛을 하나 둘 밝혀간다. (이 곡은 빛의 도시, 파리에서 녹음됐다.)

Reunion Blues : 젊은 피아니스트들 중에서 오스카 피터슨이 가장 극찬한 인물은 베니 그린이었다. 그는 다른 여러 가지 음악 일을 병행하면서 1990년대 레이 브라운 트리오의 일원으로 활동했는데, 오스카 피터슨과 마찬가지로 포스트-밥 블루스에 대한 꾸준한 애정과 완벽한 지식을 갖춘 외향적인 연주자였다. 1996년 오스카 피터슨을 위해 뉴욕 타운 홀에서 열린 헌정 공연. 이 노장과 젊은 친구는 함께 밴드를 이끌며 밀트 잭슨 원작의 ‘Reunion Blues’를 유감없이 펼쳐보였다. 오스카 피터슨의 두 번째 트리오는 1961년에 이 곡을 녹음한 바 있으며, 당시의 연주에는 모던 재즈 비브라폰 연주의 아버지이자 모던 재즈 쿼텟의 핵심 멤버였던 밀트 잭슨이 직접 참여했다. 지금 듣는 연주에는 재치 넘치는 드러머 루이스 내쉬가 허브 엘리스, 그리고 레이 브라운과 함께 힘을 보탰다. 허브 엘리스의 짜릿하면서도 떨림이 강한 기타 톤은 그가 1950년대에 들려준 연주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이 곡의 하이라이트는 오스카 피터슨의 제시로 진행된 베니 그린과의 교환 연주이다. 두 사람이 결탁하여 엮어낸 12마디 블루스의 전개는 마치 블루스 앤 부기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린 앨버트 애몬스와 미드 럭스 루이스의 60년 전 모습을 다시 보는 듯하다.

Satin Doll : 1980년 6월, 오스카 피터슨은 피아니스트이자 라디오 진행자였던 매리언 맥파틀랜드를 방문해 그녀의 “피아노 재즈”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이야기의 주제는 ‘Satin Doll’로 이어졌고, 두 사람은 듀크 엘링턴 작곡, 자니 머서 작사의 이 곡이 그동안 너무 자주 연주됐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하지만 오스카 피터슨 자신도 1960년대 초, 중반의 상황을 떠올리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는 기분 좋게 웃었다. “그 곡은 모든 이들이 듣기 위해 기다리던 정말 유명한 노래 중 하나였어요. 실제로 그 곡을 연주하면서 아주 좋은 성과를 내곤 했죠. 열렬한 무언가를 느끼게 할 때가 많았습니다.” 여기에서 마주하는 ‘Satin Doll’도 묵직한 미디엄 템포의 리듬감을 전해주며 아주 진하게 다가온다. 스웨덴 출신의 기타리스트 울프 바케니우스와 덴마크 출신의 닐스-헤닝 외스테드 페더슨, 그리고 영국 출신의 마틴 드류가 그야말로 국제적인 밴드를 구성하며 믿음직한 보좌역을 수행해냈다.

Ja-da : 앨범에 실린 곡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Ja-da’는 1918년에 작곡됐으며 빅터 축음기 시대의 스타였던 아서 필즈에 의해 그 다음 해에 히트됐다. 원래 전통적인 밴드나 스윙 콤보가 자주 연주했지만 어느새 모던 재즈 음악인들도 즐겨 다루는 곡으로 자리 잡았다. 오스카 피터슨은 이 곡을 1971년에 독주로 녹음했는데, 여기에서는 “The Very Tall Band”(1961년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와 밀트 잭슨의 앨범 에서 따온 이름)의 일원으로 연주했다. 블루 노트의 공연 무대를 통해 ‘Ja-da’는 밝고 푸른 느낌의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Morning in Newfoundland : 1964년 앨범 의 후계자라 할 수 있는 에 실려 있는 곡이다. 미셸 르그랑의 절묘한 현악 편곡이 돋보이며 피아노와 기타의 선율을 이상적으로 보완하고 결합했다. 의 완벽한 대미를 장식한다.


1993년 5월, 뉴욕의 블루 노트에서 모임을 갖던 오스카 피터슨은 뇌졸중 증상을 보였고, 결국 왼손을 쓰는데 큰 어려움을 겪게 됐다. 그러나 집중적인 치료를 받고 난 뒤 건강은 놀랍도록 회복됐으며, 11달이 지난 뒤에는 다시 스튜디오에서 녹음에 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연주는 바로 바이올리니스트 이작 펄만과 함께 한 정상들의 만남이었다. 이 앨범의 두 번째 CD에 담긴 마지막 여섯 곡은 오스카 피터슨이 뇌졸중을 앓고 난 뒤에 녹음된 것들. 그의 오른손이 보여주는 훌륭한 연주력과 그랜드 피아노의 세 페달을 다루는 솜씨는 기념비적인 재능을 알려주는 단 하나의 작은 증거에 불과하다. 꾸준히 연주에 몰두하는 오스카 피터슨의 모습은 음악이 그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존재인지 드러내는 마지막 고백과도 같다.

허브 엘리스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내 말이 맞죠? 대부분의 피아니스트는 연주를 시작할 때 이미 모든 것을 보여준다오.”


- 2006년 10월, 마크 피니에게 감사하며, 제임스 아이삭스 (번역/김현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