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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ipper's Guitar (플리퍼스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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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야계, 그 전설의 시작을 알린 소심한 첫 걸음 Flipper's Guitar의 데뷔앨범
#1. Flipper’s Guitar의 재발매, Shibuya-Kei 리바이벌
- 한동안 유효하지 못했던 시부야계라는 단어가 2006을 기점으로 다시 한 번 대두되고 있다. 음악과 패션이 새로이 조명되고 있는 분위기는 대형 음악 매장의 캠페인과 매체들의 특집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절판됐던(혹은 추억 속에 묻혀 있던) 명반들의 재발매 러쉬 또한 이루어지고 있다. 동경 발 맨체스터 사운드를 구사했던 비너스 피터(Venus Peter)의 재 결성과 13년만의 새 앨범, 시부야 소울의 핵이었던 러브 탬버린스(Love Tambourines)의 부활, 코넬리우스(Cornelius)의 획기적인 새 앨범, 솔로로 흩어졌던 형제 듀오 기린지(Kirinji)의 재결합, 다큐멘터리 영화로 회고되는 피쉬만스(Fishmans)의 연대기 등 시부야계 전반을 둘러싼 엄청난 사건들이 2006년에 파노라마처럼 모두 펼쳐 졌다.
-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번 리바이벌의 하이라이트는 시부야계의 알파에서 오메가에 이르는 모든 것을 제시했던 플립퍼스 기타(Flipper’s Guitar)의 회고였을 것이다. 1991년 10월 공식적인 해체가 결정된 후 무려 15년이 지난 2006년 가을, 팬들의 염원을 한껏 담아 1, 2집의 재발매가 이루어졌다. 지금껏 수 차례의 라이센스 요청에도 아랑곳 하지 않던 일본 내 권리자 폴리스타(Polystar)도 흐름에 동참하기로 결정, 재발매반의 한국 발매를 수락한 것이다.
- 이번 재발매 작업을 위한 1차적인 과정은 일본 최고의 명엔지니어로 불리는 타카야마 토루(코넬리우스, 스핏츠, 쿠루리 등의 앨범의 믹싱과 마스터링을 담당)의 손을 거쳤다. 그의 리마스터링 작업을 통해 다소 먹먹하던 과거의 사운드는 다이나믹하면서도 밸런스가 잘 맞는 소리들로 거듭났다. 또한, 오리지널 앨범에 수록되어 있지 않던 데뷔 싱글 ‘Friends Again(Single Version)’이 첫 번째 앨범에, ‘Camera! Camera! Camera!(Guitar Pop Version)’, ‘Love And Dreams Are Back’, ‘Cloudy(Is My Sunny Mood)’가 두 번째 앨범에 각각 보너스 트랙으로서 추가 수록됐다. 또 일본을 대표하는 아트디렉터 신도 미츠오(콘템포러리 프로덕션/미스터 칠드런, 유밍 등의 앨범 작업에 참여)가 담당했던 아트웍은 오리지널 디자인을 최대한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새로이 변모됐다.
- 음반 발매를 기념하는 일본 평론가의 글 중 이런 글귀가 있다. “과거 파릇하던 청취자가 기성의 록을 즐기는 세대가 되었거나, 최근 음악 업계에서 얘기되고 있는 ‘Early 90’s Revival’와 ‘네오 시부야계’를 통해 형성된 새로운 세대의 출현이 있을지라도, 플립퍼스 기타의 초기 두 작품이 품고 있는 ‘젊음’은 충분히 불후의 걸작으로 한 치의 티 없이 항상 푸르게 남아 있다. 하지만, 음악을 들을수록 왠지 모르게 아프다. (중략) 그렇다고 수심에 잠길 수만은 없다. 그러한 인생의 빛과 그림자를 아는 것만으로도 플립퍼스 기타의 음악은 보다 절실하게 들려올 것이다. 계속 잃게 되는 ‘젊음’을 부추기면서...”
#2. 일본 문화의 매니아적 신경향 Shibuya-Kei
- 이젠 많은 이가 알고 있듯이 시부야계는 80년대 말 일본 가요 시장의 비주류권에서 시작된 일종의 무브먼트였다. 수많은 음반 매장과 다양한 장르가 혼재하는 동경 내 시부야를 중심으로 오가던 매니아(혹은 젊은 음반 콜렉터)들이 기성 음악에 반기를 품고 자신들이 생각해 온 음악들을 직접 만들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붐이다. 그렇기에 시부야계 음악에는 레트로(Retro)부터 대안(Alternative)에 이르는 동서고금의 폭넓은 요소가 동시에 잠입하게 됐고, 태도적으로는 펑크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자주와 반항의 이미지가 강했다. 음악 뿐 아니라 서구의 패션, 영화, 영상 등 대중 문화 전반이 관심사였던 까닭에 시부야계는 새로운 문화를 소구하는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30여 년 만에 부활한 컬리지 뮤직 혹은 청년 문화로도 평가 받았다.
- 이러한 시부야계의 탄생을 선도한 양대 산맥은 다름 아닌 플립퍼스 기타(Flipper's Guitar)와 피치카토 파이브(Pizzicato Five). 피치카토 파이브가 패셔너블한 경향을 선도했다면 플립퍼스 기타는 청년 문화의 스피릿을 고취시킨 공이 크다. 과거의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플립퍼스 기타는 비틀즈가 되고 싶었다. 초기 팝스러운 음악에서 시작한 플립퍼스 기타는 마지막 3집에 이르면 음악 이상의 실험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특히, 3집에서는 기타 팝에 샘플링과 테크노의 요소를 차용했을 뿐만 아니라 현실과 환상의 복합적인 구조를 그리고 있다.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해보자던 3집 레코딩의 애초 바램은 엉뚱하게도 해체의 계기가 되고 말았다). 20세 안팎의 어린 나이에 엄청난 음악을 만들어 낸 무서운 센스, 영민한 두뇌는 그 다양하고 전문적이라는 일본의 매체에서도 따라 잡지 못할 진보적인 것이었다.
- 플립퍼스 기타는 데뷔 때부터 늘 ‘안녕히 계세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마치 해체를 눈앞에 두고 만든 팀처럼. 유약한 외모와는 달리 태도에서는 의도적으로 공격적이었고, 기성에 대해 서슴없이 독설(심지어 폭언과 욕설까지도)을 내뱉었다. ‘소멸되는 것 보다 한 순간에 불타 없어지는 것이 낫다’라 얘기한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플립퍼스 기타는 그렇게 20대 초반의 젊음을 찬란하게 연소했던 것이다. 그 누구는 그들에 대해 ‘가슴에 예리한 나이프를 숨긴 똑똑한 불량배’라는 표현을 하지 않았던가.
- 이들이 철저히 시부야계로 지칭되며 매니아와 콜렉터들을 단숨에 흡수할 수밖에 없게 만든 주요 사건은 너무나 많다. 음반 가게와 옷 가게의 폐점 시간을 너무 신경 쓴 나머지 인터뷰를 흐지부지 마치고 급히 롯뽕기로 행했던 사건이나, 지방 순회 캠페인이라는 타이틀을 정해 변두리 레코드 가게를 탐방하며 숨겨진 보석들을 찾아내는 짓을 일삼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또한, 부족한 라이브 실력이었지만, 너무도 절실하게 기타를 쳤고, 결국 자기만의 색깔을 뽐내며 기타 전문지를 통해 일본의 주요 기타리스트로 선정된 바도 있다(훗날 오야마다 게이고(코넬리우스)는 그만의 연주 기법을 인정받아 사카모토 류이치의 앨범과 라이브에 기타리스트로 초빙됐다).
#3. Neo Aco, Shibuya-kei, College Music의 완벽한매뉴얼이담긴 Debut Album
- 오야마다 게이고(리드 보컬, 기타)는 오키노 슌타로(훗날 Venus Peter 결성)와 Velludo라는 팀으로 활동했고, 오자와 겐지(리드 기타, 보컬) 역시 몇몇 인디밴드를 통해 뛰어난 송라이팅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중학교 동창이었던 이들은 각자의 팀 해체 후 세계 시장을 겨냥한 음악을 해보자는 취지에서 롤리팝 소닉(Lollipop Sonic)을 결성했고, 이들의 음악은 인디씬을 석권했음은 물론 해외에도 알려져 큰 호평을 받았다. 철저히 네오 아코(Neo Aco/네오 아코는 80년대 맨체스터 사운드와 더불어 형성된 하나의 경향으로 포스트 펑크와 포크가 결합된 형태. 에드윈 콜린스가 몸담았던 Orange Juice, 로디 프레임의 Aztec Camera가 대표적인 팀으로 시부야계 초기 등장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계열의 팀이었던 롤리팝 소닉은 메이져 레이블인 폴리스타에 급거 픽업됐고, 플립퍼스 기타로 팀명을 변경함과 동시에 이노우에 유키코(키보드), 아라카와 야스노부(드럼), 요시다 수사쿠(베이스)를 포함한 5명 구성으로 1989년 8월 25일 데뷔 앨범인 본 작 “Three Cheers For Our Side ~ 바다에 갈 생각이 아니었다”를 발표한다.
- 이렇듯 롤리팝 소닉의 연장선에서 탄생한 플립퍼스 기타의 데뷔 앨범은 지금까지도 일본 네오 아코의 금자탑으로 평가 받는 작품이다. 발매 인터뷰에서 심지어 ‘우리 활동의 최대 목적은, Orange Juice의 일본반을 재발매 시키는 것’이라는 농담(혹은 진담일 수도)을 했을 정도로 이들의 네오 아코에 대한 편애는 극도로 대단했다. 일본 시장을 염두 하지 않고 철저히 세계 시장에 포커스를 겨냥하고 만든 앨범이기에 전곡 영어 가사로 채워졌지만, (당시 전곡 영어 가사는 일본 음악씬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 놀랍게도 앨범은 30만장의 엄청난 판매고를 달성하며 현재까지도 필청되는 롱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 당시 약관 20, 21살에 불과했던 오야마다 게이고와 오자와 겐지였기에 음반사는 풍부한 경험을 갖고 앨범 전반을 지휘해 줄 프로듀서가 필요했다. 여기에 이전부터 멤버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온 80년대의 명밴드 살롱 뮤직(Salon Music)의 멤버인 요시다 진, 다케나카 히토미가 투입되면서, 완벽한 호흡을 갖춘 데뷔 앨범에 날개를 달아 주게 됐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여름을 얘기한 본 작은 전체적으로 구성 템포가 빠르다. 곡 사이의 블랭크가 거의 없이 컨셉트 앨범처럼 전편이 하나의 테마와 흐름을 가지고 이어진 것이다. 나름의 역할 분담 또한 이루어졌는데, 오자와 겐지는 전곡의 작사를, 오야마다 게이고는 주요 곡들의 작곡과 편곡을 책임졌다.
- 앨범 전편에 걸쳐 느껴 지는 심상은 ‘스킬 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유니크한 감각’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오자와 겐지, 코넬리우스에 비해, 그도 아니면 이후 발표되는 2, 3집에 비해 설익은 티가 물씬 나고, 영어 발음도 무척이나 일본스러우며, 심하게 얘기해서 아마추어적이기까지 하지만 본 작은 무엇 하나 버릴 수 없이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90년대 프리미엄급 천재 듀오의 무모한 혈기와 놀라운 감각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명반인 것이다. Style Counsil을 떠올리게 하는 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돋보이는 ‘Coffee-milk Crazy’, 앨범의 테마가 가장 잘 묻어난 ‘Happy Like a Honeybee’는 본 작 중 가장 널리 사랑 받은 트랙들이다. 복고풍 고고 리듬을 차용한 ‘Samba Parade’에서 웨스턴풍의 ‘The Chime will Ring’, 스웨디쉬 팝적인 어프로치를 들려주는 ‘Goodbye, our Pastels Badges’로 이어지는 후반부는 마치 과거와 미래를 이어 주는 끈처럼 들린다. 예상치 못한 대 히트에 힘입어 플립퍼스 기타는 앨범 공개 5개월만인 1990년 1월 25일 급작스레 싱글을 발표하게 되는데, 그 곡이 재발매반인 본 작에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된 ‘Friends Again(당시 ‘Happy Like a Honeybee’를 함께 수록했었음)’이다. ‘Friends Again’은 지금까지도 많은 가수들로부터 리메이크(그 중에는 태국의 힙합 가수 Joey Boy의 버전도 있다)되고 있는 플립퍼스 기타의 초기 대표 곡으로 재발매반의 가치를 더욱 크게 만드는 선물인 셈이다.
- “오래된 것들에 대해 침을 뱉자.”라는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플립퍼스 기타의 태동과 성공은 기성에 대한 철저한 부정과 유토피아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에서 시작됐다. 이렇듯 데뷔 앨범을 관통하는 하나의 테마는 ‘젊음’이다. 누구나 젊음을 만끽하고 맞이하지만, 의식이 거세된 젊음은 일순간의 추억으로만 남겨 지고, 이상향이 더해진 젊음은 역사의 흐름을 움직이는 촉매제가 된다. 플립퍼스 기타의 야심 찬 도전이 담긴 “Three Cheers For Our Side ~ 바다에 갈 생각이 아니었다”은 90년대 새로운 컬리지 문화에 대한 예언이자 현재와 미래를 이끌어 갈 자극제로 계속하여 재해석될 것이다.
[글 : sombr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