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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a Stansfield - Biography / The Greatest Hits
블루 아이드 소울 싱어송라이터 리사 스탠스필드 (Lisa Stansfield)
BIOGRAPHY - THE GREATEST HITS

푸른 눈빛을 가진 (파랗지 않아도 상관 없기는 하겠지만) 백인이 소울 창법을 구사한다 하여 붙여진 음악 용어가 바로 블루 아이드 소울(blue-eyed soul)이다. 지금에야 그런 구별이 무슨 필요일까 싶지만, 불과 40여 년 전인 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꽤 중요한 사안이었다. 라이처스 브러더스(The Righteous Brothers)가 무대에 올라 부르는 'You Lost That Loving Feeling'은 박수갈채 못지 않게 야유와 비난 세례도 감수해야 했다. 이들이 뿌린 씨는 70년대에 이르러 데이빗 보위(David Bowie)라는 아티스트로 인해 보다 예술적인 경지에 이르고, 조 카커(Joe Cocker)의 탁월한 가창력으로 꽃 피우기 시작했다. 홀 앤 오츠(Hall & Oates), 로버트 팔머(Robert Palmer) 등이 그 결실이었고, 보이 밴드 왬!(Wham!)을 떠나 솔로로 독립한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이 대중화에 앞장 선 친선대사였다.

허나 아쉽게도 명망 높은 블루 아이드 소울 뮤지션의 절대 다수가 남성이었던 점만은 부인하기 힘들다, 'The Look Of Love', 'You Don't Have To Say You Love Me', 'Only Wanna Be With You'와 같은 히트 곡을 가지고 있었으나, 지난 1999년 지병으로 요절한 더스티 스프링필드(Dusty Springfield) 정도가 각별히 기억되는 인물이다.
풍부한 성량과 화려한 가창력을 지닌 점은 한결 같지만, 각각 주 활동 무대가 80년대 초반 영국과 후반 미국이라는 점이 다르고, 댄스 그룹과 록 밴드 출신이라는 점 역시 변별 작용을 했던 알리슨 모이예(Alison Moyet)과 테일러 데인(Taylor Dayne) 역시 이 반열에 포함될 수 있을 듯싶다. 물론 평가의 잣대가 자칫 지나치게 싱글 차트와 앨범 판매고 수치로만 가늠된 것이 아닌가 싶기는 하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 먼저 양해를 구해두기로 하자. 현실은 현실이니.

하지만 90년대 초, 영국 클럽 씬의 정서에 입각한 소울 댄스 음악을 선보이며, 미국 대중음악 계에 흑인 음악 붐이 조성되는데 일조한 한 여가수가 있다. 2년 뒤 불어 닥친 얼터너티브(Alternative) 열풍에도 쓸려가지 않고 살아남아 변함 없는 인기를 누렸던 그녀가 바로 1965년 4월 11일 영국 맨체스터(Manchester) 태생으로 본명이 리사 제인 스탠스필드(Lisa Jane Stansfield)다. 우리에게는 리사 스탠스필드라는 예명이 더 친숙할 테지만. 90년대 이후 등장한 그 어떤 블루 아이드 소울 여성 아티스트와의 비교를 불허하는 독특한 매력이 그녀에게는 있었다. 외양적으로 유로 댄스와 테크노 사운드를 결합했지만 흡사 [모타운(Motown)] 여성 소울 싱어 특히 걸 그룹(girl group)의 음악에서나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은 상큼함과 그루브(groove)를 겸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루스와 재즈의 필도 느껴볼 수 있고.

그리고 그것은 그녀의 성장 배경을 거슬러 추적해 올라가볼 때, 보다 타당성 있는 설명이 가능하다. 6살 되던 해에 헤이우드(Heywood)로 이사했으나, 5년 뒤 로치데일(Rochdale)로 거처를 옮겨 정착한 리사는 언니 캐런(Karen) 그리고 여동생 수잔(Suzanne)과 TV 속 팝 스타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일을 일상사로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집안 일을 돌보며 즐겨 들었던 다이애나 로스(Diana Ross) 그리고 슈프림스(The Supremes)의 노래는 그녀에게 큰 음악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녀 개인적으로는 배리 화이트(Barry White) 그리고 마빈 게이(Marvin Gaye)의 음악을 즐겼다. 14살 되던 해, [The Manchester Evening News]가 주최한 탤런트 경연 대회에 출전한 일이 그녀의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전환점을 마련했다. [The Talk Of The Town]이라는 이름의 클럽에서 치러진 이 대회에서 당당히 입상했고, 이어 TV 스타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후 그녀는 15살의 나이로 [ITV]의 인기 어린이 쇼 프로그램 [Razzmatazz] 사회자로 발탁되어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1983년에 그녀는 예전 고교 동창들인 앤디(Andy Morris) 그리고 이언(Ian Devaney)과 의기 투합해, 댄스 그룹 블루 존(Blue Zone UK)를 결성해, 본격적으로 뮤지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 팀에서 가수로서만이 아니라 작곡가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이때의 인연으로 이언과 리사는 20년 지기 작곡 파트너 겸 부부 사이로 발전하기도 했다. 인디 레이블 [로킹 호스(Rockin' Horse)]과 녹음 계약 체결하게 되었으나. 이후 바로 [아리스타(Arista)] 휘하로 편입되면서, 이들은 졸지에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을 체결한 셈이 되었다. 첫 싱글 'On Fire'로 근근이 인기를 모았고, 1986년에 'Thinking About His Baby'의 B 사이드 곡으로 수록된 'Big Thing'이 [KISS-FM] 라디오 방송국을 통해 소개되면서 언더와 오버 씬에서 동시에 빅 히트를 기록해, 1만 장 이상의 싱글 판매고를 기록했다. 평범한 팝 사운드를 원한 팬들을 위해 만든 곡이지만, 정작 완성된 곡은 소울 댄스 곡에 가까워, 이들 역시 자신들에게 잠재된 음악성에 심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앤디와 이언이 전부터 잘 알고 지냈던 프로듀싱 듀오 매트(Matt Black)와 조나단(Jonathan Moore)이 결성한 프로젝트 댄스 팀 콜드컷(Coldcut)이 리사에게 자신들의 곡 'Stop This Crazy Thing'에 보컬 피처링(featuring) 해 줄 것을 부탁해 왔다. 결과물에 만족감을 표명한 양측은 이 참에 아예 종종 조인트 프로젝트를 진행할 것을 합의했다. 1989년 발표한 파워 댄스 곡 'People Hold On'이 클럽 신에서의 인기에 힘 입어 급기야 UK 싱글 차트 11위에 올랐다. 이에 [아리스타] 측에서는 그녀에게 솔로 아티스트로 독립할 것을 권유해 왔다. 자신으로 인해 블루존의 앞날이 불투명해 질 것을 우려해 망설임을 보인 그녀를 위해, 음반사 측에서는 나머지 두 남성 멤버를 [아리스타] 소속 작곡가 겸 프로듀서로 들이겠노라 했다. 솔로 계약이 성사되었다. 콜드컷 멤버들이 선사한 우정 어린 싱글 'This Is The Right Time'가 같은 해 9월 싱글 차트 21위에 올라 솔로 싱어로 그녀가 펼쳐 갈 앞 길에 청신호를 보낸 전형적인 클럽 댄스 넘버.

전 세계 팝 팬들에게 그녀를 알린 'All Around The World'이 11월 11일자 UK 싱글 차트 1위에 올라 2주 간 자리를 지키는 사건이 뒤이었다. 이후 발표된 데뷔 앨범 [Affection]이 앨범 차트 1위에 오르고 전 세계적으로 450만장 이상 팔려나가는 견인차가 되었다. 1989년 말 밴드 에이드 더 세컨드(Band Aid II)의 이름으로 발표된 리메이크 자선 싱글 'Do They Know It's Christmas' 작업에 참여한 쟁쟁한 아티스트들 가운데 가장 짧은 경력을 가진 아티스트이기도 했다. 이듬해 2월 개최된 [브릿 시상식(Brit Awards)]에서 '신인상' 부문 트로피를 거머쥐게 되었다. [아이버 노벨로 시상식(Ivor Novello Awards)] 역시 그녀의 'All Around The World'에 '최우수 팝 히트 곡'의 영예를 선사했다. 영국 및 유럽 시장에서는 이후 심플하면서 감각적인 발라드 'Live Together'를 위시해 'What Did I Do To You?' 그리고 'You Can't Deny It'이 연속 히트 해, '한 앨범에서 모두 다섯 곡의 히트 싱글을 낳은 신인 여가수'라는 특이한 기록을 자랑하게 되었다.

이처럼 90년대를 화려하게 시작한 리사는 AIDS 치료 및 홍보 기금 마련을 위한 자선 앨범 [Red Hot + Blue]에 참여해, 콜 폴터(Cole Porter)의 'Down In The Depths'를 다시 부른 일은 보컬리스트로써 그녀의 위상을 한층 더 높인 쾌거였다. 그녀 특유의 소울풀 한 가창이 스탠더드 발라드 풍의 곡에도 참으로 잘 맞아떨어졌다. 1991년 2월 거행된 [브릿 시상식]에서 '최우수 영국 출신 여성 보컬리스트' 부문을 수상하던 당시, 영국의 걸프전 참전 무드에 일침을 놓는 정치적인 발언을 해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영국 현지에서 1991년 말 출시된 정규 2집 앨범 [Real Love]는 데뷔 앨범이 견지한 클럽 댄스와 소울 그리고 재즈 풍의 사운드를 보다 심화시킨 수작으로 평가 받았다. [롤링 스톤(Rolling Stone)]지 전문 필진이 수여한 '최우수 신인 아티스트' 왕관이 거저 굴러들어 온 것이 아님을 새삼 증명한 것이다.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And Fire) 아니 꼭 집어 말하자면 배리 화이트 풍에 가까운 소울-디스코 사운드에 충실한 한편, 보다 풍성하고 깊어 진 편곡의 묘미를 선사했다. 리드 싱글 'Change'에 이어, 부드러운 현악 편곡과 매력적인 중 저음 창법이 빛을 발한 소울 발라드 'All Women', 감각적인 소울 넘버 'Time To Make You Mine', 복고풍 디스코 트랙 'Set Your Loving Free' 등이 연이어 크고 작은 히트를 기록했고, 92년 초 거행된 [브릿 시상식]에서도 '최우수 영국 출신 여성 보컬리스트'로 지목되어, 3년 연속 수상의 위업을 달성했다. [암네스티(Amnesty)]를 비롯한 각종 인권 단체가 주최하는 행사에 참여해 노래한 일도 빼 놓을 수 없다.

그녀에게 1992년, 1993년, 두 해는 그야말로 월드 스타다운 면모를 만방에 과시한 시금석이 된 시기였다. 우선 웸블리(Wembley) 구장에서 거행된 프레디 머큐리(Freddie Murcury) 추모 공연 [Concert For Life]에 출연해 퀸(Queen) 멤버들의 반주로 'I Want To Break Free'를 열창했고, 이어 조지 마이클과의 듀엣으로 'Those Were The Days Of Our Lives'를 불러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 곡은 후일 [Five Live EP]라는 제목으로 출시된 조지 마이클의 비정규 앨범에 수록되었다. 그 다음 이벤트가 바로 팝 역사 상 가장 많이 팔린 사운드트랙 앨범이자 여성 아티스트의 앨범이기도 한 다이아몬드 앨범 [The Bodyguard] 작업에 참여해 메인 아티스트인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과 어깨를 나란히 한 일이다. 늘 그래 왔듯 싱어송라이터로의 자질을 십분 발휘한 'Someday (I'm Coming Back)'를 통해 그녀는 영국 소울의 진수를 만방에 선보였다. 동시에 신작 앨범을 기다리는 팬들을 위해 스튜디오 작업에 병행하고 있었다.

1993년 하반기 선보인 정규 3집 앨범 [So Natural]이 바로 그것이다. 기존의 앨범 두 장을 탄생시킨 그녀의 고향 로스데일 대신 더블린(Dublin)을 아지트로 택한 본 작품집에서는 굵은 선의 베이스 라인과 리듬 트랙 위로 흐르는 스트링(string) 세션과 브라스(brass) 파트 그리고 유연한 보컬이 돋보이는 디스코 넘버 'Little Bit Of Heaven' 그리고 007 테마 음악을 작곡한 본 배리(John Berry)가 공동 작곡가로 나선 팝 발라드 'In All The Right Places'가 히트를 기록했다.

이후 근 3년여를 이렇다 할 대외적인 활동 없이 보낸 탓에 은퇴설까지 나돌게 된 그녀는 일체의 해명대신 한층 더 숙성해 진 음악적 원숙미를 한껏 뽐낸 신보 [Lisa Stansfield]를 통해 당당하게 팝 신의 전면에 복귀했다. 간만의 Top 10 싱글 'The Real Thing'을 통해 근사하게 신고식을 마친 그녀는 이후 비장의 리메이크 곡을 선보였다. 그녀의 오랜 영웅이기도 한 배리 화이트에 바치는 경외심 만큼이나 찬란하게 빛나는 'Never, Never Gonna Give You Up'이 그 첫 번째다. 원전이 발표된 1974년으로부터 무려 25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녀의 보컬에는 시대의 간극을 메우고도 남음이 있을 흑진주 같은 윤택함이 넘쳤다. 덕분에 모처럼만에 미국 팝 싱글 차트 나들이에 나서기도 했다. 필리스 히먼(Phyllis Hyman)의 고전을 재해석한 'You Know How To Love Me' 역시 그녀다운 선곡이다. 이듬 해에는 기존에 발표되었던 톱 히트 곡들을 보다 현대적인 감각으로 리믹스 한 [#1 Remix EP]을 선보였다.

다시 또 3년여의 시간이 흘러 지난 2001년 출시한 정규 5집 앨범 [Face Up] 역시 여전한 그녀의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다만 보다 더 깊고 굵어진 음색과 감성 표현력을 구사해, 어느덧 그녀도 보컬리스트로 그 정점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경탄을 자아냈다. 느긋하고 편안하게 노래한 싱글 커트 곡 'Let's Just Call It Love'을 통해 그 단면을 맛볼 수 있다. 한편 이렇게 팝 뮤지션으로 정상에 오른 그녀는 이후 오래 전에 발 들일 뻔했으나 내내 가슴속에 묻어두고 지냈던 배우의 길에 도전했다. 이미 지난 1999년에 출연했던 로맨틱 코미디 영화 [Swing]을 통해 배우로써의 자질을 인정 받아 온 터였다. 영국 연극 신의 메카 웨스트 엔드(West End)에 투신한 그녀는 이미 국내에도 번안되어 소개된 바 있는 화제의 연극 [Vagina Monologues]에 캐스팅 되어 호연을 펼쳤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음악 활동을 접은 것이라 생각하면 그것은 너무나 큰 오산이다. 이미 작년 가을 영국 런던 소호(Soho)에 위치한 재즈 카페들에 출몰하며 작은 공연을 가져 충분한 워밍업을 마친 그녀는, 지난 10여 년 음악 생활을 정리하는 베스트 앨범 [Biography]를 출시함과 동시에 올 4월부터 전국 투어를 펼칠 예정이란다. 아울러 그 출발지는 로열 알버트 홀(Royal Albert Hall). 그렇다. 이 베스트 앨범 혹은 최고 히트 싱글 모음집은 그 타이틀 '약력'이 시사하듯, 한 시기를 정리하는 동시에 앞으로 펼쳐질 또 다른 '약력'을 준비하는 출발점이다. 그간 쉽사리 만나보기 힘들었던 트랙들이 대거 포함된 점에 유념해, 그녀만의 매력에 빠져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