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출신의 4인조 모던락 밴드 라이프하우스는, 이미 그들의 음악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느끼듯이, 꽤나 음울하고 어두운 사운드를 즐겨 찾는 친구들이다. (대다수의 LA 출신 밴드들에게서 느껴지는) 그곳 특유의 따뜻한 햇살과 낭만적인 분위기에 전혀 수헤받지 못한 채, 라이프하우스의 음악에는 유독 짙은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이유인즉슨, 밴드의 프론트맨이자 사운드메이커인 제이슨 웨이드(Jason Wade, 보컬/기타)의 개인사에서 그 까닭을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다. 라이프하우스의 모든 곡을 혼자 만들어내는 제이슨은, 어려서부터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홍콩에 살았던 유년시절, 그의 주변 이웃들은 무척이나 그들 가족을 싫어했고, 마치 온갖 저주를 몰고 다니는 불길한 마녀들 인양, 자신들을 대했다고 한다. "그들은 매일 아침 우리 대문을 향해 불붙은 폭죽을 던졌다. 그리고, 우리 고양이를 훔치고 요리한 뒤, 실제로 그것을 먹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그 이후 현실에서 도피하고만 싶었다. 나에게는 조금의 친구도 없었다."
먼 타향에서 보낸, 4년여간의 고난의 시간은, 그의 인성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리라. 하지만, 불행은 결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제이슨이 12살 되던 해에, 그의 부모는 결국 이혼하고 만다. 이후, 어머니와 단둘이 정착하게 된 곳은, (시애틀 근교의) 포틀랜드였다. 그의 소년기는 대부분, (아무런 친구도 없이) 어둡고 침침하던 자신의 빈방에서 보내졌다. 그는 그곳에서 시를 썼다. 오직 시를 쓰는 것밖에 마음을 둘 곳이 없었다. "그런 나의 고통이 곧 창조적인 재능의 출구가 되었다. 나는 스스로도 그것을 아주 재미있어 했다. 나는 결코 음악적 수업도 들은 바 없고, 라디오 또한 즐겨듣지 않은 소년이었기 때문이다. 단지 가사를 쓰고, 멜로디를 흥얼거릴 뿐이었다." 숲에서 살던 그는 종종 산책을 하곤 했는데, 거기에서 노래가 솔솔 흘러나왔다. 그에게 음악적 영향을 끼친 인물은 (포크 뮤지션 출신인) 어머니였다. 항상 주위에 기타를 두게 했던 그녀 탓에, 그는 재미로 슬슬 코드를 익히기 시작했고 음악 또한 자신의 위안이 될 수 있음을 발견한 뒤, 그것에 몰두했다.
그러나 이 왕성한 창작력의 기간은 그리 오래 이어지진 못했다. 15살 되던 해에, 제이슨은 다시 LA로 옮기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서 결국 그는 훗날 라이프하우스를 마련할 동지를 만났으니 그가 바로 이웃에 살던 서지오(Sergio Andrade, 베이스) 였다. 남미의 과테말라 출신으로서 미국으로 이주해온 서지오는, 처음으로 제이슨에게 따뜻하게 마음을 열러준 친구로서, 둘은 음악적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결국 (자신들의 보금자리인) 라이프하우스를 짓게 된 것이다. 여기에 디프(Diff)라고 불리는 드러머 릭(Rick Woolstenhulme)과 3인조 형태를 꾸몄고, (앨범을 제작하고 난 이후) 최근에는 백업 기타의 스튜어트(Stuart Mathis)까지 가세하여, 안정적인 4개의 기둥으로 라이프하우스를 떠받치게 된 것이다.
그 동안 펼쳤던 수많은 클럽 공연에 이어, 드림웍스와의 계약 체결, 그리고 2000년 10월 31일 대망의 데뷔 앨범 발매, 여기에 덧붙여, 불과 두달 뒤에 (당시 10주 이상 정상을 점령하고 있던 Fuel의 [Hemorrhage (In My Hands)]를 물리치고) 당당히 빌보드 모던락 차트 1위에 오르기까지... 드림웍스와 만난 뒤, 그들은 정말 '꿈'같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불과 20살 남짓한 청년들의 성공담 치곤, 믿기 힘든 벼락 행운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행운의 단단한 디딤돌 역할을 해준 것이 바로 제이슨의 성장과정이다. 홍콩에서의 유년기가 자신의 내면을 들춰보게 했고, 포틀랜드에서의 소년기가 그 내면에서 창조적 출구를 열었다면, LA에서의 삶은 곧 출구를 통해 본격적으로 창조물들을 쏟아내게 만들어준 셈이다.
No Name Face
라이프하우스는 데뷔 앨범의 타이틀로, 의미심장하게도 (여러 해석이 분분할 만한 이름인) No Name Face를 선정했다. 이것에 대한 암시는 Somebody Else's Song의 가사에서 찾아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I've got somebody else's thoughts in my head, I want some of my own." 제이슨은 그 불우했던 유년과 소년시절 동안, 자신 안에 담겨있는 또 하나의 자아를 발견했던가 보다. 그것은 비참한 현실과는 다른, 행복하고 아름다운 표정의 얼굴이었을 법도 하다. 제이슨은 그것을 No Name Face라 불렀으니... 이는 바로 그의 창조적 출구였던 '음악'이었음에 분명하고, 곧 데뷔 앨범의 이름으로 No Name Face가 쓰여지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하다. 만약 제이슨이 자신의 내면에서 또 하나의 자아를 봤다면, 앨범 타이틀의 의미를 유추해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 내용으로 들어가보자면, No Name Face에는 뚜렷하게 두가지 음악적 원류가 자리하고 있다. 우선, 라이프하우스의 사운드와 쉽게 비교해볼 수 있는 대상은, Live와 (데뷔앨범 시절의) Matchbox Twenty이다. 이것은 다분히 루츠락적 성향이 감지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어쿠스틱과 일렉트릭 기타의 교차 편집이나 둔탁한 질감의 사운드에서 그 양향을 느껴보게 된다. 하지만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또 다른 원류는 (제이슨이 근방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던) 시애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사운드보다는 창법에 기초한 것으로, 제이슨의 목소리가 흡사 Pearl Jam의 Eddie Vedder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분명해보인다.
하지만, 사운드나 창법 못지않게 라이프하우스의 음악에서 핵심을 이루는 부분은, 바로 가사이다. 제이슨이 전담하고 있는 가사의 내용들은, 영적이며 개인적이고 감성적이다. 때에 따라서는 사회적인 병폐를 꼬집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하룻밤의 풋사랑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제이슨은 자신의 가사가 아주 자세히 논의되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것은 해석하기에 따라 무한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음악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특히 가사란, 그것이 단지 나에 의해 확실히 굳어진 의미보다는 듣는 이에 따라 전혀 다른 각도로 비춰질 수 있다." 그는 단적인 예로 앨범의 마지막 곡인 Everything을 꼽고 있다. "공연이 끝나고 많은 아이들이 다가올 때면, 그들이 그 곡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해 느껴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정작 그 곡이 무엇에 관한 노래인지를 알지 못한다. 단지 개인적으로 관련된 부분만으로 이해한다. 이게 바로 가사에 대해 전체적인 의미를 굳이 알 필요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록 겉으로 드러나기엔 평범한 연가 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라이프하우스가 노래하는 그 간절함과 애틋함이 과연 누구를 향한 것인지는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그럼에도 (모던락 차트 정상을 차지한 첫 싱글) Hanging By A Moment가 여성 락팬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이유는 그 로맨틱한 가사 때문이기도 하다. "I'm falling even more in love with you, I'm standing here until you make me move."
이번 앨범의 프로듀서는 Ron Aniello이지만, 그보다 더 눈길을 끄는 이름은 앨범 믹싱에 참여한 Brendan O'Brien(펄잼,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 사운드가든, 스톤 템플 파일럿츠의 프로듀서)이다. 그들이 빚어낸 라이프하우스의 사운드는, 어쿠스틱과 일렉트릭이 적절한 안배를 이루어 냈고, 비올라나 탬버린, 하프, 스트링 베이스 등의 연주가 첨가되어 그것을 보다 풍성하게 살찌워 주었다. 제이슨은 라이프하우스의 성공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단지 우리는 매우 많은 사람들이 우리 노래를 듣게 되었다는 점에 매우 감사한다. 나는 정말로 그것이 어떻게 일어났느냐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 아무튼, '이름 없는 얼굴'이었던 그들은, 이제 확실한 이름으로 기억되는 유망주로 거듭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