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원에서 삶의 따스함을 보다!
재즈 음악인에게 하나의 앨범이란 순수한 의미의 명함과 같다. 가끔 높은 판매고를 올리며 뜻하지 않은(?) 경제적 이득을 남긴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대체로 재즈 앨범을 발표하는 음악인은 이를 통해 ‘내가 지금 연주하는 음악은 이렇소이다’ 하며 자신을 소개하려는데 더 큰 의미를 둔다. 바꿔 말하면,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팔자를 고치려드는 음악인이 있다면, 그는 무언가 큰 착각에 빠졌거나 자신이 연주하는 음악이 사회적으로 어느 위치에 놓여 있는지 냉정하게 관찰하지 못한 것에 불과하다. 다행히도 기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면 누군들 마다하겠는가. 다만, 애초에 그걸 기대하고 만든 작품은 결국 어느 쪽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더라는 얘기. 이런 맥락에서 신작 앨범을 마주할 때 들이밀게 되는 잣대 중 하나가 ‘동기의 순수성’이다. 동기가 순수하면 성과에 관계없이 면죄부를 얻는다. 반대로 불순한 동기를 지닌 작품은 대중들을 현혹할 수 있을지언정 역사는 이를 기록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동기만 순수하다고 모두 박수 받는 것도 아니다. 지금 나는, ‘동기의 순수성’을 지닌, 참으로 따스한 앨범 한 장을 듣고 있다.
‘따스하다’는 말이 일말의 선입견을 심어줄지 모르지만, 다양한 리듬과 비트가 혼재 된 이 베이스 트리오의 박진감 넘치는 앨범에서 내가 받은 첫인상은 되레 그런 감성이었다. 전통적인 어쿠스틱 악기가 아닌 일렉트릭 베이스와 기타가 주도하는 작품이라면 흔히 테크닉을 전면에 내세운 퓨전이나 울렁이는 리듬감에 포인트를 맞춘 그루브를 떠올릴 법하지만, 그리고 이 앨범에도 그러한 시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손길이 종종 느껴지지만, 연주자들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음악을 듣는 입장에서 뽑아낸 첫 번째 매력은 바로 깊은 정이 내재된 음악인들의 교감이었다. 베이시스트 서영도와 기타리스트 정수욱. 그리고 드러머 이덕산. 밴드의 리더로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을 만든―‘Think of One'이나 ‘Round Midnight’도 우리가 알고 있는 셀로니어스 몽크의 곡이 아니다―서영도는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활약해 온 한국 재즈의 차세대 리더 중 한 사람이고, 정수욱은 미국 유학을 마친 뒤 폭넓은 연주 생활을 벌이고 있는 독창적인 기타리스트이다. 두 사람처럼 일반인들이 쉽게 기억하는 이름은 아닐지 모르지만, 이덕산 또한 풍부한 현장 경험을 쌓은 믿음직한 드러머.
재즈 팬들 사이에서 서영도 트리오가 본격적으로 입에 오르내린 것은 작년 여름부터였다. 우리나라에서 베이스 트리오가 결성됐다는 것도 (기타 트리오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의미 있었지만, 이들의 음악이 지금까지 시도되지 않은 형태, 즉 모던과 포스트 모던, 그리고 퓨전의 경계에 선 그것이라는 점은 분명 시선을 끌 만했다. 그러나 나는 서영도 트리오의 특별한 따스함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무엇보다 궁금했다. 물론 세 사람이 1년 넘게 많은 무대를 소화했으니 그 교감과 조화는 믿을 만한 수준이겠으나, 외견상 냉철함을 전면에 내세울 수밖에 없는 편성을 취하고 있음에도 앨범에서는 차가운 시선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이 하나의 수수께끼였다고나 할까. 그래서 나는 작품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에 앞서 한 주 내내 이 앨범을 반복해서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일단 첫 곡이 시작된 다음부터 끝 곡이 마무리될 때까지 여간 해서는 자리를 뜨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글쎄, 50분이 채 되지 않는 전체 곡 시간이 큰 부담을 안겨줄 정도는 아니지만, 앨범에 수록된 10곡이 하나의 일관된 흐름으로 촘촘히 짜여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면 설명이 될까. 물론 이 곡들은 모두 다른 지향과 분위기를 지녔으나, 무엇보다 앨범 전체의 구도에 큰 공을 들였다는 심증이 강했다. 첫 곡이자 타이틀곡인 ‘Circle’과 끝 곡인 ‘T.F.M (Tears for Me)’은 세 사람 이외에도 여러 벗들이 함께 했는데, 단순한 게스트의 참여가 아니라 리더인 서영도의 의도에 따라 ‘이용된’ 흔적이 강하다. (실제로 이 두 곡은 앨범의 탁월한 구성미를 구축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안쪽에 실린 나머지 8개의 트리오 곡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감성을 매우 자유롭게 풀어낸 ‘삶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철저한 음악의 메시지로 똘똘 뭉쳐 있을 법한 자리에 일상적인 감성이 더 짙게 드러나 있다니, 나는 바로 여기에서 그 따스함의 정체를 찾을 수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비로소 앨범의 구체적인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영도 트리오의 또 다른 매력이 바로 세심함에 있다는 결론을 갖게 됐다. 기타는 베이스가 만들어 주는 공간을 십분 활용하며 마음껏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고 있으며, 드럼은 결코 무리함이 없이 두 사람의 조화를 뒷받침하며 철저하게 기본의 역할에 충실했다. 서영도의 베이스가 지닌 사려 깊음을 맛보기 위해 정수욱의 어쿠스틱 기타가 빛을 발한 ‘Think of One’을 들어보라. 베이스는 기타의 길을 절대로 침해하지 않은 채 지속적으로 모티프를 던져 주며 나머지 공간을 맛깔스레 채워주고 있다. 정수욱은 연주에 임하며 더없는 자유로움을 느꼈을 법하다. 따지고 보면 연주자들 간의 이런 배려는 연이어진 ‘Sunset Friday’나 ‘Imagination’ 등 어느 곡을 예로 들어도 마찬가지인데, 다양한 효과를 동원하면서도 결코 거칠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베이스와 기타의 변화무쌍한 톤은 이들의 연주를 마주하는데 매우 중요한 기준을 제공한다. 같은 맥락에서, 흐름 상 또 하나의 포인트가 될 곡은 한복판에 위치한 ‘Wall’. 개인적으로 가장 짙은 인상을 받은 이 곡은 앨범의 음악적 지향을 한 눈에 엿보게 한다. 재즈의 역사가 새로운 톤을 찾기 위한 노력에서 발전을 거듭했다면, 서영도 트리오가 지금까지 이룬 성과를 대변하는 곡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곡이 바로 앨범의 정중앙에 자리했기에 은 완벽한 그림 한 폭으로 남게 됐다.
‘Round Midnight’이나 ‘Loop-Belt’를 듣다 보면 서영도의 베이스 연주에서 자코 패스토리어스의 향취를 느끼고 정수욱의 기타에서 웨인 크랜츠(Wayne Krantz)―재즈 팬들에게 부당하게 과소평가되고 있는―의 미적 감각을 맛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어설픈 모방의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모든 음악인은 선배나 스승이 만들어 둔 틀 안에 안주할 수도 있고 또 다른 틀을 만들어 새로운 영역을 확보할 수도 있는 바, 적어도 서영도 트리오의 음악은 우리가 평소에 익혀 온 전통의 아름다움을 절대 무시하지 않는다. 일견 이 말이 부정적인 의미를 남겨줄지도 모르지만, 나의 의도는 오히려 그 반대에 있다. 성공하는 실험은 전통의 줄기를 인지한 상태에서 가능한 일이며, 그것이 오늘날 이 연주자들을 있게 한 원동력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Club EVANS’라는 곡과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는 ‘T.F.M’은 우리로 하여금 서영도 트리오의 음악을 더욱 짙은 이미지로 간직하게 한다. 만약 이 두 곡이 없었다면 앨범은 자칫 건조한 모습을 지녔을 것이다. 혼돈의 원에서 시작한 앨범은 그렇게 담담하고 소박한 삶의 눈물로 마무리됐으며, 억지로 큰 가치와 의미를 어필하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는 게 더욱 믿음직하다. 욕심을 부려 한 발 더 내디뎠다면, 앨범을 마주하는 우리는 무척 당혹스러워 했을 게다.
세 사람은 애초에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뒷얘기를 남긴 채 의기투합했을 것이고, 풍부한 라이브 무대를 통해 서로가 원하는 음악 중에서 자연스레 공통분모를 찾아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앨범을 녹음하던 무렵에는 매우 편안한 상태에서 작업에 임한 듯 보인다. 반드시 뛰어난 앨범을 발표해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켜야 한다는 현실적인 중압감보다, 그렇게 세 사람이 한동안 어울리다보니 문득 작품이 나오더라는 식으로 말이다. 바로 그것이 이 앨범의 순수함을 얘기할 수 있는 논거이다. 만약 당신이 나와 마찬가지로 서영도 트리오의 따스함을 맛본다면, 그것은 앨범에 담긴 음악 뿐 아니라 이들이 함께 한 지난 세월을 목격한 것에 다름 아니다. 나는 평소 베이시스트 서영도와 개인적인 친분을 갖지 못했다. 오래 전 간략한 목례로 서로의 이름을 익힌 기억 뿐. 그리고 이제 앨범 해설의 집필을 마무리할 즈음 처음으로 그와 전화 통화를 했다. 10년의 활동 끝에 드디어 앨범 한 장 손에 들고 선 그가 쑥스러운 목소리로 “좋은 얘기 부탁한다”며 허허 웃었다. 좋은 얘기? 하지만 단지 상투적인 좋은 얘기만 늘어놓기엔 작품이 워낙 좋았다.
최근 들어 한국 재즈의 발전이 그 어느 때보다 시선을 끈다. 모던의 전통과 이를 바탕으로 한 포스트 모던의 실험. 그리고 그 사이에서 고심하는 연주자들의 속내가 우리를 즐겁게 한다. 서영도 트리오의 음악을 단순히 퓨전이라 칭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이들이 그 언저리 어느 곳에서 또 다른 가능성과 돌파구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모두들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하늘을 향해 하나하나 새로운 벽돌을 쌓아올리는 이 때, 서영도 트리오의 첫 앨범은 그 담 위에 던져둔 또 다른 벽돌이라기보다, 벽의 한복판을 뚫고 만든 출입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들이 이미 담 너머의 세상을 눈으로 확인했는지 알 수는 없다. 혹시라도 모두 함께 쌓아올린 벽돌담이 너무 높아져서 갑자기 그 너머를 볼 수 없게 된다면, 그저 이 출입문을 찾아 문고리를 당기면 될 일이다. 그러니까, 담 너머의 세상을 보고 싶다면 말이다.
김 현 준 (재즈비평가. BBS-FM “밤보다 아름다운 음악” 진행 / 월간 Jazz People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