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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 - 13집 / 사춘기+ Live
*국내 대히트 개봉영화 <왕의 남자>에 “인연” 수록!
*<왕의 남자 O.S.T>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숙함과 고귀함이 교차하는 사랑의 고백집

강헌 (대중음악평론가)

살아가며 가슴이 뛰는 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 그 끝이 아픔이라 해도 두 팔을 벌려 너를 안으리...[장미]. 한 시대를 일인제국으로 평정한 조용필의 역사적 권위에 비견할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을 지닌 여성 아티스트는 단연 이선희일 것이다. 그는 2005년 봄에 펼쳐 놓은 열세번째 노래의 향연 중의 [장미] 단 한곡으로 여제후로서의 그것을 완벽하게 증명한다. 당당하며 단호한, 그러면서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숙한 향기를 머금고 있는 이 노래가 흐르는 4분 39초 동안 우리는 마치 감전된 것처럼 이선희가 펼쳐놓는 사랑의 서사시의 흐름에 빠져들게 된다.

90년대 이후, 디스코그래피 상으로 보면 7집부터 시작된 어쩔 수 없는 대중적 반응의 퇴조에도 불구하고 이선희는 견인주의적인 자세로 자신의 음악적 내용을 집요하게 발전시켰다. `사십대에 맞이하는 봄`의 의미를 은연중에 담고 있는 `사춘기`라는 타이틀을 달고 등장한 이번 13집은 그와 같은 내적 진화의 첫 번째 비등점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10집부터 시작된 싱어-송라이터의 면모가 완숙의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하는 진정한 걸작이다.

물론 우리는 보컬리스트로 출발하여 자신의 음악의 주재자로 진화한 몇 안되는 여성 뮤지션의 목록을 알고 있다. 이상은과 한영애, 그리고 장필순 등등. 하지만 이들은 언더그라운드의 영웅들의 보이지 않은 조력을 받았거나 스스로 언더그라운드로 걸어들어간 이들이다. 거품같은 인기를 상실하고 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 비정한 주류의 경기장에서 예술가로서의 자기정체성을 연금한 이선희의 경우는 대단히 예외적인 풍경이며 그래서 더욱 소중한 성과인 것이다. 하지만 이 앨범은 이 지점에서 멈추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간다.

도탄에 빠진 지금-여기의 한국의 대중음악사는 여성의 손에 의해 한뜸한뜸 만들어진 이 정교하고도 따뜻한 이 앨범에게 겸허하게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해야 한다. 오프닝 트랙 [인연-동녘바람]부터 여덟 번째 트랙 [사랑이 깊어지고 있습니다]를 지나 이 앨범의 에필로그인 피아노 솔로곡 [피아노](이마저 이선희의 작곡으로 위대한 탄생의 최태완이 연주했다)에 이르는 동안 우리는 단 한순간도 빈틈이 없이 완벽하게 직조된 사랑의 찬가를 조우하게 될 것이다. 이 고귀한 트랙들은 그저 붕어빵 찍어내듯 공장에서 생산된 숱한 사랑타령과 구별된다. 이 노래들의 갈피마다 피상적인 매너리즘으로는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성숙한 성찰이 음악적 장치로 전환되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끼게 만든다.

이것은 불혹에 다다른 이선희가 우리에게 보내는 사랑의 천일야화이다. 그는 다양한 시각에서 다양한 음조로 너무나 비천하게 전락한 사랑이라는 주제에 거장적인 품격을 제공한다. 오프닝을 여는 [인연]은 내내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는 치밀한 발라드로 이 앨범 전체의 톤을 우리에게 예감케 한다. 그리고 이어진 이 앨범의 때이른 백미편인 [장미]는 낭송적인 웅혼함으로 아롱진 후기 이선희의 걸작으로 바로 이어지는 뭉클한 여성성으로 가득한 [알고 싶어요II]와 교묘한 대칭을 이룬다. 이 두 번째와 세 번째 트랙을 지나며 우리는 다시 눈을 씻고 이 앨범을 바라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릴랙스한 미드 템포의 수작 [사과나무 아래서]를 지나 이번 앨범의 대안적인 트랙 [왜?]에 이르면 작은 인디 씬의 무대에 선 모던 로커 이선희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는 최태완과 함춘호 그리고 강수호와 이태윤 같은 베테랑 세션들의 어이스트 아래 약간 젊게 튜닝한 보컬 톤을 앞세워 사랑의 미궁을 추적한다. 이 곡은 일곱 번째 위치한 또 하나의 개성적이고 얼터너티브한 트랙인 [자전거]와 더불어 이 앨범의 울림을 풍요롭게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속류화한 리듬앤블루스의 발라드가 어지러이 쏟아지는 현시점에서 이 앨범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사춘기]의 담백한 발성은 어쩐지 밋밋해 보일지 모르지만 이 노래야말로 수많은 격정의 표현력을 넘어 이선희가 오늘 도달한 투명성의 높이인 것이다.

[사춘기]는 오랜 불황을 넘어 권토중래를 꾀하는 2005년 봄 시즌 한국 대중음악계의 빛나는 축복이다. 이 앨범이 또 다시 시장의 천민적인 논리에 좌절하고 모욕받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앨범을 듣고 난 후 그 모든 위협도 이 앨범이 분만하는 아름다움의 한 자락을 해칠 수 없다는 확신이 스치고 지나간다. 바로 그런 성찰의 깊이를 우리의 이선희가 획득한 것이다. [자전거]의 다음과 같은 예사롭지 않은 표현처럼.

...사랑이란건 좀 타 본 자전거 같은 거 / 내가 어떻게 될진 멈춰봐야 알 뿐이죠 / 지금 난 달리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