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뮤직

1997년 잡지 구인광고를 보고 모여 든 숱한 스타 지망생들 가운데서 선발되어 '제2의 아바'를 꿈꾸기 시작한 영국의 5인조 혼성 팝 그룹 스텝스(Steps). 데뷔 싱글 '5, 6, 7, 8'을 발표한 1998년 초 이후 지금까지 줄곧 앞만 보고 달리며 주 활동 무대인 영국 및 유럽 시장과 아시아 지역을 초토화시키며,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한 4년 여 시간을 보낸 이들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들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돌연 팀 해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영국 팝 팬들은 패닉(panic) 상태에 빠져 몇 날이고 충격에서 헤어날 줄 몰랐다고 한다. 전혀 연예인일 것 같지 않은 평범한 외모와 그 흔한 루머는커녕 스캔들에 휩싸인 적조차 없는 '바른 생활'들까지도 그들이 사랑받기에 충분한 조건들이었다.
세 명의 여성 멤버 페이(Faye), 리사(Lisa), 클레어(Claire) 그리고 두 남성 리(Lee), H로 이루어진 스텝스는 애초 팀 결성 당시의 다짐 그대로 철저히 아바 비슷한 팝/댄스 음악에 승부수를 뒀다. 록 음악에 기반 한 일본 음악 시장에서 모닝 무스메, 미니 모니 같은 말도 안 되는 10대 댄스 가수들이 먹혀 드는 것과 마찬가지 맥락에서, 스텝스 역시 전통과 실력이 성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키 포인트인양 여겨지던 영국 팝 시장에서 먹혀들었다고 보면 이해가 빠를 지 모르겠다. 본 작에는 11트랙의 주옥같은 히트 넘버들과 4 곡의 신곡이 담겨 있다. 애초부터 철저하게 상업성만을 견지한 까닭에 음악성(진지함)과는 전혀 거리가 먼 그들이었지만, 대신 이들에게는 남달리 건강한 젊음의 이미지가 있었다. 그저 팝 아이들 그룹의 한계를 다시 한번 체감케 하는 좋은 사례라 평하고 말기에는 아쉬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