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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sailor - Silence Is Easy
보다 진보된 야망이 엿보인다!
첫 싱글 'Silence Is Easy' 를 비롯, 사랑스런 느낌의 'White Dove' 오케스트레이션이 매혹적인 'Four To The Floor' 등 총 11곡 수록!!

지난 2001년 [Love Is Here]라는 데뷔 앨범 단 한 장으로 삽시간에 '브릿팝의 희망'으로 떠올랐던 영국 4인조 밴드 스타세일러가 2년 만에 새 앨범과 함께 돌아왔다. 출시 몇 달 전부터 전설적인 프로듀서 필 스펙터(Phil Spector)가 제작에 참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찌감치 기대를 불러모았던 그들의 신보 [Silence Is Easy]는 레코딩 측면에서나 작곡 측면에서 밴드의 위상을 확고히 다져줄 만한 멋진 작품이다.
스타세일러가 [Love Is Here]에서 보여줬던 복합적이고 복고적인 사운드는 그야말로 놀라웠다. 팀 버클리(Tim Buckley), 제프 버클리(Jeff Buckley) 부자의 포크 멜로디와 몽환적 사운드를 바탕으로 브릿팝 특유의 아름답고 우울한 멜로디, 그리고 때론 격정에 찬 피아노 연주가 흘러나오는 그들의 음악은 제2의 오아시스, 라디오헤드에 목말라 있던 영국인들의 갈증을 말끔히 씻어주었다.
또 보노와 밴 모리슨을 섞어놓은 듯한 싱어 제임스 월시(James Walsh)의 시니컬하면서도 호소력 짙은(그래서 종종 리처드 애시크로프트와도 비교됐던) 목소리는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누군가와 닮았다는 걸 알면서도 거부하기 힘들었다. 선배 음악인들의 잔영이 어느 정도 드리워져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극적이고 풍부한 보컬 연기, 절제된 연주 등 스타세일러만의 분명한 상표가 더욱 빛을 발했다. 결국 완전 무명에 불과했던 이 신인 밴드는 데뷔작의 성공에 힘입어 일약 라디오헤드, 트래비스, 콜드플레이 등 거대 브릿팝 밴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가 되었다.

그로부터 2년의 시간이 흘렀고 스타세일러는 한층 더 소울풀해진 두 번째 음반을 들고 대중들 앞에 섰다. 밴드는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라이브 공연을 해나갔고, 데뷔 당시 스무 살 약관의 나이로 팀을 이끌었던 싱어 제임스 월시(1980년생)는 그새 아기 아빠가 되었다. 스타세일러의 신보 [Silence Is Easy]은 그 두 경험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작품이다. 제임스는 "1집 때 같이 모여 매주 같은 퍼브에 갔던 우리들 넷 중 셋이 가정을 가졌고, 나는 아이가 생겼으며, 우리 모두는 전세계를 순회했다. 신곡들은 바로 그 경험들을 토대로 탄생됐다."라고 말하고 있다. 말하자면 보다 편안해졌고,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
허나 1집 때와 가장 중요한 차이라면 앞서 말했던 베테랑 프로듀서가 제작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그 주인공 필 스펙터는 '월 오브 사운드(Wall Of Sound, 주- 모노 시절 멀티 트랙 녹음기를 이용해 깊은 울림의 에코와 두툼한 팀파니 사운드, 혼, 스트링 등 다양한 악기의 어울림을 하나의 지속적인 음의 흐름 속에 배치함으로써 생기는 거대한 소리의 벽)라는 획기적인 음향효과를 창시해낸 인물이다. 1960년대부터 로네츠, 비틀즈, 존 레논 등과 주로 작업했던 스펙터는 그러나 라몬스와의 레코딩 이후 일체의 음악 활동을 중단한 채 20년이 넘게 은둔생활을 해오고 있었다. 그 오랜 은둔이 바로 스타세일러에 의해 처음으로 깨진 것이다.
그들의 만남은 놀랍게도 필 스펙터의 제의에 의해 이루어졌다. 스타세일러의 노래 'Lullaby'를 아주 좋아한다는 스펙터는 딸을 통해 LA에서 공연을 마친 밴드를 초대했고 그 자리에서 그들의 신곡을 함께 녹음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스타세일러 멤버들은 깜짝 놀라 그 제의를 실감할 수 없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스펙터가 밴드와 함께 런던 스튜디오에서 1주간 레코딩 작업을 했다. 그 결과물이 이번 앨범에 실린 2곡, 'Silence Is Easy'와 'White Dove'다.
타이틀 트랙이자 첫 싱글로 내정된 소울 넘버 'Silence Is Easy'는 대형 와이드 스크린을 보는 듯한 크고 두툼한 사운드로 꽉 차있으며, 각종 코러스와 팀파니 사운드에서 풍기는 묘한 최면성의 분위기는 로네츠의 'Be My Baby' 같은 ’60년대 '월 오브 사운드' 대표곡을 여지없이 환기시킨다. 말로만 듣던 그 고전적인 녹음방식이 부활하는 순간이다. 과연 필 스펙터는 필 스펙터였다! 제임스 월시는 이 곡에서 "당신은 날 알지조차 못한다. 그런데 왜 그렇게 나를 미워하는가?"라며 1집 성공에 따른 외부의 갑작스러운 관심과 기대에 대한 부담을 묘사하고 있다. 뮤직 비디오에서는 제임스가 끊임없이 주문 혹은 야유를 던지는 사람들 사이를 뚫고 지나간다.
필 스펙터가 참여한 또 하나의 곡 'White Dove'는 어쿠스틱 기타가 연주되는 아름다운 발라드인데, 그 위에 더한 약간의 현악 파트만으로 완벽하게 '소리의 벽'을 만들어낸다. 2곡 다 아무나 해낼 수 없는 녹음 실력을 감상할 수 있는 베스트 트랙들이다. 그렇다고 모든 곡을 필 스펙터에게 맡길 수만은 없기 때문에 2곡을 제외한 나머지는 스타세일러의 방식대로 갔다. 자장가처럼 부드러운, 그러나 그들의 냉소적인 면을 알 수 있는 'Some Of Us'에서는 예의 소박한 어쿠스틱 기타와 담담한 피아노 연주를 들을 수 있으며, 펑키한 그루브와 디스코 스타일의 현악 세션이 돋보이는 'Four To The Floor'는 가장 스타세일러다운 노래 중 하나다.
밴드의 사운드는 전보다 훨씬 유연해졌고, 제임스 월시는 훨씬 더 편안하게 노래하고 있다. 멜로디도 1집 때보다 나아 보인다. 스타세일러는 더 이상 '제2의 콜드플레이'가 아니며 누구누구의 아류도 아니다. 필 스펙터가 필 스펙터였던 것처럼 스타세일러는 이제 스타세일러다. 그들은 한 걸음만큼 앞으로 나아갔다. [Love Is Here]만큼 영국 언론의 호들갑은 없겠지만 [Silence Is Easy]는 100점 만점의 훌륭한 '두 번째'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