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보다 진지하고 무게 실린 해피 래게 사운드를 주무기로!
월드 팝 스타 Shaggy의 6집 앨범 [Lucky Day]
올 여름 할리우드를 강타한 영화의 주인공기기도 하며 본디 인기 만화의 캐릭터로 더 유명한 스쿠비 두(Scooby Doo)의 익살스러운 이미지를 빌어 온 예명 섀기(Shaggy)를 빌어 쓰는, 1968년 10월 22일 자메이카의 수도 킹스턴 타운(Kingston Town) 태생의 오빌 리처드 버렐(Orville Richard Burrell)이 18살의 나이에 어머니가 살고 있는 뉴욕에 정착한 지 십 수년 만에 6번째 정규 앨범을 출시했다. 그네들의 한과 슬픔 그리고 저항의 메시지를 담은 곡을 노래해 토속 음악 레개(Raggae)를 당당히 월드 뮤직의 한 갈래로 정착케 한 이가 밥 말리(Bob Marley)라 한다면, 섀기에게는 그러한 레개의 변형인 댄스홀(Dancehall)에 힙 합과 R&B 그리고 유로 댄스의 요소까지를 결합해 세계인 누구나 편히 듣고 즐길 수 있는 유행 음악의 한 갈래로 승화시킨 혁혁한 공로가 돌아가 마땅하다. 그래서 늘 즐겁고 유쾌하며 행복한 나날의 연속을 구가할 것 같은 그이지만, 그의 지나온 나날들을 차근차근 짚어가다 보면 정작 그리 평탄한 인생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80년대 후반, 싱글 'Mample' 그리고 'Big Up'이 뉴욕 언더 클럽 씬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아, 지역 레개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프로 뮤지션으로 전향하느냐의 갈림길에 섰을 때, 해군에 자원 입대해, 1992년에는 [걸프 전] 와중인 이라크(Iraq)에 파병 되어 [사막의 폭풍(Desert Storm)] 작전에서 한 몫 하기도 했던 특이한 전력을 가진 뮤지션이기도 하다. 하지만 젊은 날 죽음의 기로에 선 전장에서 선전수전 다 겪기까지 했던 그에게 찾아온 20대 중반기 역시 그리 순탄하지는 못했다.
1993년, [버진(Virgin)] 레코드 휘하에서 발표한 데뷔 앨범 [Pure Pleasure]에 담긴 'Oh Carolina'가 유럽 시장에서 선전해, 앞날에 서광이 비추려는가 싶더니, 이듬 해 발표한 2집 앨범 [Original Doberman]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그런가 하면 1995년 작 3집 앨범 [Boombastic]은 타이틀 트랙의 빅 히트에 힘 입어 [그래미] '최우수 래게 앨범 상'을 이끌어 내었다. 1996년에는 맥시 프리스트(Maxi Priest)의 [Man With The Fun] 앨범에 피쳐링 해 'That Girl'을 히트 시켜, 전성기를 예감케 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대중을 의식해 중심이 흔들린 4집 [Midnite Lover]는 그에게 다시 고배를 선사했다. 하지만 현재 그의 소속사이기도 한 [MCA]와의 인연을 맺어 준 1999년 작 영화 [How Stella Got Her Groove Back] 사운드트랙 앨범에 동참해 재닛 잭슨(Janet Jackson)과의 듀엣 곡 'Luv Me, Luv Me'를 완성한 일이 있고는 내내 '행운의 나날' 만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00년 여름 발표한 5집 [Hot Shot] 앨범은 그야말로 화끈한 '한 방'을 날렸다. 6백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고, [빌보드] 앨범 팝 앨범 차트에서 6주간 정상 자리를 지킨 것을 필두로, 두 곡의 No. 1 히트 싱글 'It Wasn't Me' 그리고 'Angel'를 배출했다. [2002 브릿 시상식(Brit Award)]은 그를 비 영국 출신 뮤지션 가운데 '최다 판매 남성 아티스트'로 인증해 주었다. 토니 브랙스턴의 캐럴 앨범에 참여해 'Christmas In Jamaica'를 완성하는 한편, 백스트리트 보이스 그리고 노 다웃과 같은 정상급 스타의 월드 투어에 동참하고, 아울러 자신만의 독자적인 순회공연을 개최해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렇다고 특유한흥겨운 래게 리듬과 랩 보컬에 실려 부르는 섀기 스타일의 사랑 노래에 진작부터 불만 아닌 불만을 품고 있던 이들도 적지 않았다. 작년에 구태여 [Hot ShotUltra Mix] 앨범을 발표한 당위성에 의구심을 가진 이도 있었다. 흥행만을 노린 처사라는 시선이 많았다. 그런 그에게 이제 '행운의 나날'은 진정 끝이란 말인가? 아니다. 그의 통산 6집 앨범 [Lucky Day]는 (부러움 탓이기도 할) 세인의 불신과 비아냥거림을 반박에 날려 버릴 멋진 변신이 가득 하다. 이제껏 발표했던 곡에 비하면 되려 다소 무겁고 어둡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사운드의 측면에서 진일보 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갑자기 혁명을 부르짖는다던가 아니면 전통 래게의 텍스트에 충실해 우울한 곡조를 노래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의 음악사를 관통하는 한결 같은 주제, 즉, '아름다운 여성 들을 찬미하라!'는 여전하다. 하지만 그 '여성'의 폭이 좀 더 넓어진 것도 음악이 진지해 진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어느새 30대 중반의 나이에 들어선 그인 만큼 지난 삶을 돌아보게 되나 보다. 스쳐 지나가는 만남보다는 어머니, 아내 그리고 함께 작업한 파트너들이나 은사들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여성'들에 대한 찬가로 그 범위가 확대된 것이다.
녹음 과정도 전과는 달리 소박하고 심도 있게 진행되었다. 이제는 그의 활동 주 무대가 된 뉴욕에 꾸린 홈 스튜디오를 주로 활용하는 한편, 자신이 설립한 레코딩 레이블 소속 아티스트들을 위한 전용 작업 공간이기도 한 [Big Yard Studio]도 즐겨 찾았다. 오랜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프로듀서 겸 매니저 로버트 리빙스턴(Robert Livingston) 외에, '댄스홀의 제왕'이라 불리는 데이브 켈리(Dave Kelly) 그리고 크리스토퍼 버치(Christopher Birch)도 변함 없는 우정을 과시한다. 찰떡 궁합의 게스트 뮤지션 가운데 래게 아티스트 배링턴 레비(Barrington Levy), 뛰어난 가창력의 소울 디바 샤카 칸(Chaka Khan) 그리고 그를 월드 스타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한 일등공신 릭 록(Ricardo “Rik Rok” Ducent) 등의 이름이 발견된다. 수록 곡 14트랙 전부가 그에 의해 작곡되거나 혹은 공동 작곡되었다. 프로듀싱 파트에 참여하여 진정한 뮤지션으로 거듭나려는 몸짓을 보인 점에도 주목해 두자. 인종과 성별, 종교를 초월한 희망과 이해의 메시지를 설파한 'Walking In My Shoes'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Lost', 여성의 자유와 해방에 대해 진지하게 노래한 'Full Control', 분위기 만점의 'Leave Me Alone' 그리고 의외로 진지하고 감미로운 발라드 넘버 'Give Thanks' 등이 특히 인상적이다.
혹시 지난 앨범이 거둔 성공이 부담스러웠냐고? 그는 매우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다. 유명세 덕에 함께 작업할 엄두도 못 내었던 이들과의 만남이 보다 쉽게 연결되어 좋았다는 식이다. 펑키 댄스 넘버 'Shake Shake Shake', 트렌디 R&B의 요소가 강화되고 야릇한 신음소리가 자극적으로 들리는 업 템포 트랙 'Hooky Jookie' 그리고 미드 템포의 타이틀 트랙 정도는 사실 전과 그리 다르지 않은 주제를 노래하고 있다. 지독하리 만큼 노골적이지 않고 되려 실소를 자아내는 유머 감각으로 포장된 점 또한 여전하다. 플라맹코 기타 사운드와 트럼펫 연주가 근사하게 조화 이루는 첫 싱글 'Hey Sexy Lady'는 당연히 히트 예감 만점이다. 음악적 욕심과 대중성에 대한 배려를 적절히 조화시켜 놓았다. 자신의 히트 곡 'Angel'에서 윤기 넘치고 듣기 좋은 보컬을 선사했던 레이본(Rayvon)의 데뷔 앨범 작업에 깊이 관여한 일도 음악 비즈니스 계에서 거물로 거듭나고자 하는 그의 열정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는 일도 가능할 듯 보인다. 기분 좋은 발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