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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 La Tengo - And Then Nothing Turned Itself Inside-Out (Deluxe E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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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영氏의 전곡 가사 해설집 내재*
깊이와 여유로 가득한 내향적인 소리의 세계
YO LA TENGO / AND THEN NOTHING TURNED ITSELF INSIDE-OUT (DELUXE EDITION)
아이러 캐플런(Ira Kaplan, 기타/보컬)과 조지아 허블리(Georgia Hubley, 드럼/보컬)를 중심으로 1984년 미국 뉴저지 주 호보켄(Hoboken)에서 결성된 욜라 텡고(Yo La Tengo)는 이제 거의 20년의 활동을 바라보는 베테랑 록 밴드가 되었지만 그 세월에 비하면 참으로 조용한 여정을 걸어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초기에는 기타와 베이스 주자가 밴드를 들락거렸지만 1992년 제임스 맥뉴(James McNew, 베이스)가 멤버로 들어오면서 라인업도 안정되었고, 1997년에는 앨범 [I Can Hear the Heart Beating as One]의 성공으로 예기치 않게 MTV에도 출연하는 등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인디 록의 자존심으로 남아있다. 그 흔한 스캔들이나 멤버들간의 불화도 없이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경외감 같은 것이 느껴질 정도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음악 또한 정체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소프트 보이스(The Soft Boys), 미션 오브 버마(Mission of Burma), 러브(Love) 등의 음악을 커버하며 밴드의 꿈을 키웠던 욜라 텡고는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와 킹크스(The Kinks)의 음악을 자양분 삼아 서서히 자신들만의 유니크한 사운드를 만들어갔던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앞으로 내딛은 그들의 행보가 모여 이제 제법 다양한 그릇이 마련되었다. 노이즈와 팝에 대한 변함 없는 애정은 여전하지만, 이들은 항상 새로운 영토를 향해 조금씩 발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
[And Then Nothing Turned Itself Inside-Out]는 정규 앨범으로서는 열 번째에 해당된다. 10이라는 숫자를 대할 때 우리의 마음은 남달라지는 것이 사실이다. 한 자리 수에서 두 자리 수로의 상승은 우리로 하여금 뭔가 다른 차원을 기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앨범 [I Can Hear the Heart Beating as One]의 성공 또한 그러한 기대감에 부채질을 한다. 그러나 욜라 텡고는 이런 성공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은 모양이다. 뭔가 욕심을 부려 일을 벌일 만도 한데 이들은 미련스러워 보일 정도로 묵묵하다. 오히려 [I Can Hear the Heart Beating as One]이 대중적으로 보일 만큼 내향적인 사운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이를 무엇보다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커버 아트다.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의 소설에나 나올 법한 미국의 작은 시골에 어둠이 깔리고, 마당 한 구석에서 누군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하늘에서는 빛이 내려와 그를 둘러싸고 있는데, 흡사 [엑스-파일]의 한 장면 같기도 하고 에피파니(epiphany)의 순간 같기도 하다. 어쨌든 알 수 없는 긴장감과 신비로운 아우라를 전해주는 이 커버는 욜라 텡고의 음악으로 안내하는 절묘한 입구에 다름 아니다.
첫 곡 "Everyday"는 기타 드론과 드럼 연주의 음산함에 반음씩 오르고 내리는 베이스 음률로 시작한다. 조지아 허블리의 목소리도 전에 없이 창백하게 들리고 가끔씩 기이한 음향이 끼어들면서 사뭇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만든다. 이와 대조적으로 "Our Way to Fall"은 가뭄 끝에 봄비를 만난 듯 무척이나 촉촉하다. 찰랑거리는 심벌과 키보드의 따뜻함 위로 아이러 캐플런의 속삭이는 목소리가 정겹게 들리는 곡이다. 이런 대조는 "Saturday"와 "Let's Save Tony Orlando's House"에서 다시 반복된? "Everyday"도 그랬지만 "Saturday"는 악기 사용이나 연주 패턴이 록 음악의 정형에서 꽤 벗어나 있는데 그로 인해 흡사 포스트 록을 듣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반면 "Let's Save Tony Orlando's House"는 오르간 소리가 따뜻하게 감싸는 업템포 넘버이다. 하지만 이 곡에서도 프로그래밍 된 드럼이 사용되는 등 부분적으로 일렉트로닉 음악의 텍스처를 보여준다. 이 곡은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정적인 무드가 지배하는 "Last Days of Disco"와 "The Crying of Lot G"(이 곡은 토마스 핀천의 소설 [제49호 품목의 경매]에서 제목을 따왔다)를 지나면 앨범 중반에는 비교적 대중적인 스타일의 곡들로 포진해있다.
"You Can Have It All"는 조지 맥크레이(George McCrae)의 곡을 커버한 것으로 “빰바라 빠--"하는 흥겨운 하모니에 오르간과 첼로가 적절히 더해진 곡이다. 이 곡에서 지난 앨범의 "One PM Again"이 생각난다면, "Cherry Chapstick"은 "Little Honda"에 비견될 만하다. 앨범에서 유일하게 노이지한 기타가 부각된 곡으로 캐치한 멜로디와 거친 기타의 파열음이 흥미롭게 만난다. "Madeline" 또한 말랑한 기타 연주와 묵직한 베이스에 예쁜 멜로디가 놓인 곡이다. 그 사이에는 다시 느린 템포의 "Tears Are in Your Eyes"와 "From Black to Blue"가 위치한다.
앨범의 마지막에 놓인 두 곡 "Tired Hippo"와 "Night Falls on Hoboken"은 관점에 따라 이 앨범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순간일 것이다. "Tired Hippo"는 서부 영화에 나오는 기타 소리와 오르간이 바탕을 이룬 기악곡으로, 이들이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덥(dub) 스타일에 흡사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자신들의 고향 호보켄을 그렸다는 "Night Falls on Hoboken"은 앨범의 지배적인 분위기를 집약해서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무겁고 내향적이면서 또 신비로운 아우라를 이 곡만큼 잘 보여주는 곡도 없기 때문이다. 어쿠스틱 반주로 시작해서 시종일관 느린 템포로 진행되는 이 곡은 중반부가 지나면서 점차 노이즈를 비롯한 거친 음향들이 가세한다. 이와 더불어 평화로웠던 무드가 불길하고 음험하게 바뀐다.
전체적으로 이 앨범은 [I Can Hear...]의 밝은 측면은 피하고 어두운 측면을 부각시켰다. 그래서 지난 앨범처럼 명료하게 귀에 들어오진 않지만 그럼에도 오랜 경륜에서 묻어나는 깊이와 무게는 압도적이다. 또한 부분적으로 로우(Low), 레드 하우스 페인터스(Red House Painters) 같은 슬로 코어나 포스트 록의 느낌도 더해 풍요로워진 사운드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화려하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항상 자신의 자리에서 스스로를 새롭게 가꾸어가는 베테랑 밴드의 미덕을 잘 보여주는 앨범이다.
보너스 CD는 [Danelectro](EP)와 [You Can Have It All](싱글)의 수록곡들을 모두 담고 있는데, 일본에서만 한정 발매되었던 편집 앨범 [Mish Moshi-Moshi]의 넘버 전부를 여기서 만날 수 있어서 보너스의 의미를 그야말로 “백푸로” 음미하게 해준다.
먼저 [Danelectro](EP)는 동일한 주제를 느슨하게 변주한 세 기악곡과 각각의 리믹스 버전을 수록하고 있다. 사실 욜라 텡고는 199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부분적으로 일렉트로닉 음악의 텍스처를 수용한 바 있으며, 1997년에는 "Autumn Sweater"의 리믹스 앨범을 발표한 적도 있다. 이 앨범 역시 다양한 스타일로 변주된 흥미로운 리믹스 작업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Danelectro 3"와 "Danelectro 2"는 둘 다 영롱한 기타 선율을 앞세운 곡들로 리듬을 약간 달리 했다. [And Then Nothing Turned Itself Inside-Out]에 수록되었어도 무방할 만큼 욜라 텡고 전형의 서정을 보여주는데, 특히 "Danelectro 3"에서 보다 저음을 강조했고 느슨한 리듬 패턴으로 되어 있다. 이어지는 곡은 힙합 그룹 아르소니스츠(Arsonists) 출신인 큐-유니크(Q-Unique)의 리믹스를 거친 "Danelectro 1"으로 스크래치와 힙합 비트, 전자 음향을 가미한 상쾌한 힙합 스타일로 변모되었다.
또한 테크노 DJ 킷 클레이튼(Kit Clayton)이 리믹스한 "Danelectro 3"는 원곡의 형체를 거의 알아볼 수 없게 해체되었다. 특히 곡의 후반부는 선율 없이 전자 소음으로만 진행된다. 일 분 남짓한 "Danelectro 1"이 지나면 노부카주 다케무라(Nobukazu Takemura)가 리믹스 작업을 한 "Danelectro 2"가 나온다. 그는 여기서 원곡의 맛을 살리면서 다양한 리듬을 입혀 다채로운 색감을 만들어낸다. 전반부는 드럼앤베이스의 특징적인 리듬과 원곡의 서정성이 묘하게 충돌하고 있으며, 후반부는 여러 악기 소리가 난무하는 실험적인 음향으로 일관한다.
나머지 두 곡 "Ready-Mades"와 "You Can Have It All"(Sonic Boom remix)은 [You Can Have It All](싱글)에서 가져온 곡들이다. "Ready-Mades"는 본조 도그 밴드(The Bonzo Dog Band)의 곡을 커버한 것인데, 내시빌 출신의 밴드 램찹(Lambchop)이 도움을 준, 3박자로 진행되는 서정적인 스타일로 관악기 연주가 듬직하게 받쳐주는 아름다운 곡이다. 스페이스맨 3(Spacemen 3) 출신의 소닉 붐이 리믹스를 맡은 "You Can Have It All"는 원곡의 느낌을 거의 그대로 살리면서 전자음을 살짝 가미하고 있다.
이렇듯 새롭게 라이선스된 욜라 텡고의 [And Then Nothing Turned Itself Inside-Out]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대단히 깊고 풍성한 만족감을 선사할 앨범이다. 지금까지 나열한 앨범에 대한 여러 설명들은 겉으로 드러난 사실일 뿐, 곳곳에 감춰진 형용할 수 없는 음의 세계는 직접 체험하기 전까지는 쉽게 전해지지 않는 무엇이 있다. 그만큼 이 앨범은 청자의 관점에 따라 달리 비춰질 수 있는 흥미로운 여지들을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