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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혜경 - 한국 가곡집 (My Favourite Korean So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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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탄의 보석, 세계 최정상의 프리마 돈나
홍혜경 한국 가곡집
꿈의 무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20년간 활동하고 있는 세계 최정상의 소프라노 홍혜경이 평생 가슴에 묻고 있던 보석 같은 한국의 멜로디를 노래한다.
- 한국 가곡집으로는 최초로 전 세계 동시 발매!
- 정확한 딕션, 완벽한 감정 처리와 곡 해석, 절묘한 표현력으로 누구도 도달할 수 없었던 완성도를 갖춘, 한국 가곡 미학의 새로운 차원을 선포하는 뜻 깊은 음반.
이 앨범이 있기까지
정경화를 필두로 장영주, 장한나, 안 트리오, 백혜선, 양성원 까지 기악 각 분야의 내로라 하는 국제적인 스타급 연주자들의 산실인 EMI CLASSICS. 음반 비즈니스가 불법 복제와 다운로드의 횡행으로 위축 일변도를 걷고 있는 이때 EMI CLASSICS는 오히려 적극적인 마케팅과 홍보로 전년 대비 시장 점유율이 10% 증가하는 놀라운 기록을 수립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라 브라이트만을 필두로 막심, 더 플래닛, 이지 같은 21세기형 크로스오버 연주자들의 로스터를 크게 늘리면서 공히 클래식의 전방위적 레이블로 자리를 잡고 2002년 가을부터는 본격적으로 재즈 마켓에 뛰어들어 재즈 역사의 산 증인 블루노트와 캐피톨 재즈의 보급과 시장확보에 열을 올리며 뮤직 비즈니스의 다변화를 꿈꾸고 있다.
EMI International 매출 순위 6위로 본사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던 한국 지사는 단 하나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으니 한국 출신의 소프라노를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었다. 경쟁 레이블인 워너 클래식이나 유니버설 뮤직이 조수미나 신영옥 같은 대중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소프라노의 앨범들로 손쉽게 매출고를 있을 때 EMI는 조용히 그러나 열의를 가지고 진정한 한 사람의 디바에게 러브 콜을 보내고 있었으니 바로 그녀가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소프라노 홍혜경이다. (이미 공연기획사에서 배포한 자료에 상세하게 명기되어 있으므로 그녀의 상세한 이력은 생략한다.)
1995년 플라시도 도밍고와의 올림픽 주경기장 공연, 2000년 LG Art Center개관 기념 공연으로 제니퍼 라모어와의 듀오 무대, 그리고 2001년 서울에서만 있었던 솔로 리사이틀… 그녀의 명성을 확인하고 싶은 클래식 초심자들과 매니아 팬들은 그저 조용히 그녀의 한국 공연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그 사이사이에 팬들은 간간히 발표되는 음반을 통해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홍혜경의 음악을 접할 수 밖에 없었다. 일년에도 여러 번씩 공연과 내한 프로모션을 통해서 보고 듣고 만날 수 있는 옆집 언니처럼 편한 소프라노가 아니라 아주 먼 곳에 있는 알려지지 않은 신비의 그녀였을 뿐이었다.
“아이들이 어려서 떨어져 지내기가 힘들었어요.” 자신의 영원한 모국, 한국을 자주 찾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을 슬그머니 털어 놓았더니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가 답한다. 까다로운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이하 메트)에서의 20년 롱런과 맡는 배역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비평가들의 찬사 뒷면에는 홍혜경을 든든히 지키고 있는 가정이 있었던 것이다. 매년 9월부터 그 다음해 5-6월까지 이어지는 뉴욕 메트의 바쁜 시즌 일정이지만, 홍혜경의 삶은 늘 가족을 중심으로 움직여왔다. 메트 데뷔 이후, 홍혜경에게 손짓하는 세계 무대가 많이 있었지만, 가족과 떨어져있는 시간이 너무 많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출연요청을 거절하곤 했다.
용기 있는 선택 ‘Korean Songs’
“미국에서 성인기를 보낸 한국 아티스트로서, 우리 가곡들은 너무나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으로, 나의 어린시절로, 나의 가족으로, 그리고 오늘날 나를 있게 한 삶의 초기로… 이 노래들을 부를 때, 저는 수 많은 한국인들이 느끼게 되는 똑같은 감정과 열정을 느낍니다.” 오랜 기다림에 대한 보답이라 할까. 그녀는 성악 강국 EMI로 전속사를 옮기면서 한국 가곡집이라는 용기 있는 선택을 감행했다. 지난 20년간 기회가 닿을 때마다 한국 가곡을 널리 알리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그녀의 염원이 EMI 데뷔라는 시점에 맞추어 이루어진 것이다. 홍혜경의 음반은 EMI의 또 다른 클래식 레이블 ‘Virgin Classics’와 엄격한 인터내셔널 계약으로 이루어졌고, 이의 배경에는 유럽에 비해 한국 내에서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인지도가 낮은 ‘버진 클래식’의 이름 알리기에 홍혜경이라는 빅스타를 이용하려는 음반사의 깜찍한 계산이 담겨있었다(피아니스트 백건우가 바로 Virgin Classics 출신이다). 특이한 것은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을 맺는 대다수의 연주자들이 판매에 불리한 조건을 만들지 않기 위해 첫 번째 음반은 음반사와 적절하게 타협하는 성격의 대중적 음반을 내는 것에 비해 홍혜경의 의지는 참으로 남달랐다는 것이다. 바로 제목만 들어도 친근한 16곡의 아름다운 한국 가곡집을 내기로 한 것이다. ”한국 가곡처럼 아름다운 노래가 없어요. 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홍혜경의 의지는 확고했고 EMI 본사 또한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 남은 것은 넘어야 할 많은 험한 고개들 뿐.
“지휘와 편곡, 오케스트라까지 모두 한국 사람이 맡았으면 했어요. 여건상 지휘를 김덕기씨가 맡아주는 것으로 그쳤지만 다행히 모든 것이 만족스럽습니다.” 최종 계약이 성사된 2002년 여름부터 녹음이 진행된 2003년 봄까지 이 한편의 거대한 ‘애국심 프로젝트’는 조용하게 진행이 되었다. 뉴욕의 홍혜경씨는 레코딩 리스트를 뽑고 한국의 EMI에서는 좋은 편곡자를 찾는 역할을 맡았으며 프랑스 EMI-Virgin Classics에서는 레코딩 데이터를 결정하고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를 물색하는 작업이, 아울러 한국의 매니지먼트인 영 예술기획에서는 전국적인 리사이틀 투어 스케줄이 차근차근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01년 5월의 첫 번째 목요일 Virgin Classics의 사장 알랭 랑세롱(Alain Lanceron)에게 온 “친애하는 EMI Korea 여러분, 한국 출신의 소프라노 홍혜경을 아십니까?”라고 시작되는 한 통의 이메일이 2년하고도 4개월의 작업 끝에 이렇게 제대로 한 장의 훌륭한 결과물로 나타난 것이다.
전 세계가 같이 듣는 ‘한국 가곡집’
선명회 합창단의 일원으로 세계를 돌며 여행하던 어린 시절,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 기념 음악회에서, 백악관의 가장 큰 겨울 행사인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에서도 늘 어김없이 한국 가곡을 고집했던 홍혜경의 강하고 아름다운 의지가 실로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반주를 맡았던 파리 앙상블 오케스트라 단원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홍혜경이 직접 나누어주는 영문 가사를 읽으며 마음으로 같이 호흡했고 바쁜 일정을 쪼개어 프로젝트에 마지막으로 합류한 지휘자 김덕기도 한 편의 서사시를 녹음하는 기분으로 녹음을 진행했다고 한다.
전 세계 동시 release되는 작품답게 홍혜경의 EMI 데뷔 앨범은 한국어, 영어, 불어의 3개 국어로 해설과 가사가 수록되어 있으며 홍혜경 본인이 직접 설명하는 간단한 작품 노트가 담겨있다(인터내셔널 버전은 영어, 불어, 독어로 제작된다). 지난 3월 13일부터 17일까지 서울대학교 교수인 김덕기씨가 지휘하는 파리 앙상블 오케스트라와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 센터에 있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홀에서 녹음했으며,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홀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완벽한 최첨단 시설을 보유한 녹음전용 홀이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곡자이자 지휘자인 피에르 불레즈가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이름을 따서 설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