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앨범에서 스타급 객원 싱어들 만큼 주목을 끄는 것은 역시 한상원의 화려한 기타연주이다. 뛰어난 기타 테크닉을 바탕으로 감정이 폭발하는 듯한 연주를 선보이는 그의 평소 연주 패턴과는 달리 이번엔 매우 자제하고 세련되며 합리적으로 연주를 펼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전반적으로 펑크적인 요소가 짙게 묻어나면서도 우리의 감성과는 그리 동떨어지지 않게 연주했으며, 12곡의 전체 수록곡마다 각기 다른 느낌의 연주로 기타의 세계가 무한함을 다시 한 번 입증하고 있다.
우선 음악 팬들의 관심을 모으는 보컬 송을 중심으로 수록곡들을 하나씩 소개하기로 한다.
너의 욕심
앨범의 세 번째와 열 두번째 트랙에 각각 'Funk 버전'과 'Alternative 버전'으로 수록되어 있는 곡. 역시 신해철의 독특한 음색의 보컬이 돋보이며 펑크와 블루스를 오가는 한상원의 기타 연주가 곡의 전반을 아름답게 채색한다. 인간의 욕심과 착각을 신랄하게 꼬집는 노랫말은 신중현씨의 둘째 아들인 신윤철이, 고난도의 드럼 사운드는 프로그래머 강호정이, 트럼펫에 월터 플랫, 색소폰에 올레 마티슨, 그리고 트럼본을 존 휠러가 맡아 연주했다. N.EX.T의 해산 이후 신해철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 유일한 신곡이므로 넥스트 팬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듯하다. 무엇보다 신해철의 펑크/블루스적 감각이 돋보이는 곡이다.
12번 트랙에 실린 '너의 욕심'은 신해철 버전에 대한 한상원의 대체물이라는 뜻에서 'Alternative Version'이라 칭하고 있다. 이 곡은 지미 헨드릭스를 연상시키는 기타 플레잉과 화려한 드러밍, 강기영의 공격적인 베이스 연주 등이 두드러지며 한상원의 보컬이 매우 걸쭉하게 녹음되어 있다. 1번 트랙 Funky station 외에 유일하게 한상원이 직접 기타를 치며 노래한 곡이다.
KIβ(Kiss)
이소라의 끈적한 보컬이 압권인 곡. 끈기있고 열정적인 이소라의 파워 보컬에 한상원의 폭발하는듯한 기타 연주가 절묘한 배합을 이루는 일종의 발라드곡이다. 제목에서부터 야한 느낌이 드는 것이 실제 가사로 들어와서는 더욱 얼굴 뜨겁게 달아오를 정도이다. 이소라가 직접 지은 노랫말은 대체로 이렇다.
"타락하는 나를 받아줘 나 오늘 이렇게 원하고 있어/이미 꿈에서 널 안아본 날 가져주길 바래...오늘밤 이런 맘 난 주체할 수 없었어...하고 싶어 더 말은 말아줘...그 안에 니가 잠시 들어와 날 식혀주길 바래..."
진하디 진한 가사에 걸맞게도 이소라는 이 노래에 관해서만큼은지극히 흥분 상태에서 노래하고 있는 듯하다. 재즈 피아니스트 김광민의 신서사이저 하프와 정원영 교수의 스트링 신서사이저 연주가 독특하게 들려오며 조 보나디오의 드럼 & 퍼커션 연주가 일품이다. 하지만 이 곡은 가사의 선정성으로 인해 음악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매우 높다.
이탈
2인조 힙 합 그룹 듀스 출신의 이현도가 완벽히 소화해 낸 랩과 펑크의 절묘한 만남이 이루어진 곡. 이현도의 재치있는 가사와 함께 펑크 리듬 위에서 구사하는 래핑이 독특함을 자아내고 있다. 기타와 베이스 및 보코더를 연주한 한상원과 힙 합 뮤지션 이현도가 의기투합한 흔적이 곡의 전반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 뭔가 새로운 형태의 멋진 음악 장르가 새롭게 파생되어진 느낌이다. 펑크와 랩, 힙 합, 그리고 재즈 등...뭔가 장르 파괴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곡이다. 조규찬의 코러스와 5인의 외국 세션맨들의 참가가 사운드의 품질을 한층 높여주고 있다.
이밖에 가장 한상원 다운 곡 Funky station이 첫 트랙을 장식하고 있다. 이 곡은 전형적인 펑크 리듬과 퓨전 재즈 및 록이 혼합된 형태로 멜로디를 보코더(Vocoder)라는 이색 악기로 뽑아내고 있는 것이 커다란 특징이다.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은 일렉 기타를 연주하면서도 전혀 앰프를 쓰지 않고 레코딩을 한 독특한 프로듀싱 기법이 돋보이며 '광대춤'은 신예 유진하의 보컬과 스캣 등이, 그리고 Old fashioned lovers는 라틴 음악의 색깔이 짙은 기타 연주곡이 압권이다. 또한동물원의 김창기와 프로젝트 밴드 <창고>를 결성했던 '꿈의 대화'의 이범용이 노래를 부른 '너, 나, 따로...', 한상원이 모든 악기를 직접 연주한 '음깔', 한상원이 평소 아끼던 후배 그룹 <U&Me Blue>가 노래한 '뮤지션', 그리고 마이너 기타 톤의 연주곡인 Solitude가 앨범의 곳곳을 채우고 있다. 국내에는 그다지 대중적이지 못한 펑크음악을 쉽고 편안하게 접할 수 있도록 한 한상원의 세심한 배려가 앨범 곳곳에서 발견된다. 펑크 음악 방송국이라고나 할까. 펑크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다.